요코하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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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시
요코하마 시의 위치
한자 표기 横浜市
가나 표기 よこはまし
나라 일본 일본
지방 간토 지방
도도부현 가나가와 현
분류코드 14100-3
면적 437.38 km²
인구 3,703,998명
(2013년 11월 1일)

요코하마 시(橫濱市, 일본어: 横浜市 (よこはまし), 횡빈시)는 일본 가나가와 현 동부에 있는 현청 소재지이다.

에도 시대 말기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항만 도시로서 발전해 왔고, 또 교외 지역은 도쿄 도시권위성 도시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으며, 도쿄도 다음으로 일본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1956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부산광역시보다 인구가 조금 많다.

지리[편집]

요코하마의 위성 사진

시역은 가나가와 현의 동부에 해당하고 동쪽은 도쿄 만에 접하고 북쪽은 가와사키 시, 서쪽은 야마토 시, 후지사와 시, 도쿄 도 마치다 시, 남쪽은 가마쿠라 시, 즈시 시, 요코스카 시와 접한다. 시역의 면적은 가나가와 현의 약 18%를 차지해 현내의 시정촌 중 가장 넓다.

지형[편집]

시역의 지형은 구릉, 대지, 단구, 저지, 매립지로 나눌 수 있다.

구릉지는 시역 중앙부보다 약간 서쪽에 분포하고 시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이 구릉지는 호도가야 구, 아사히 구 등을 흐르는 가타비라 강을 경계로 남북이 성질을 달리한다. 북쪽의 구릉지는, 다마 구릉의 남단에 위치하고 표고는 60~100m로 북쪽으로 가면서 높아진다. 남쪽의 구릉지는 미우라 반도에서 이어지는 미우라 구릉의 북단부를 차지하고 표고는 80~160m로 남쪽으로 가면서 높아진다. 남쪽의 구릉지가 기복도 심하고 표고도 높다. 시내 최고봉인 다이마루 산(가나자와 구 가마리야 정, 표고 156.8m)과 엔카이 산(이소고 구 미네 정, 표고 153.3m)은 모두 남쪽의 구릉지에 위치한다.

대지, 단구는 구릉지의 동서에 있다. 동쪽의 대지는 쓰루미 구의 지명을 취해 시모스에요시 대지로 불리고 표고는 40~60m로 쓰루미 강까지 계속 된다. 서쪽의 대지는 사가미노 대지의 동단에 해당하고 표고는 30~70m로 남쪽으로 가면서 낮아지고 있다. 혼모쿠 부근에서 대지가 바다를 향해 뻗어있고 그 남쪽은 네기시 만으로 불린다. 요코하마 역 주변도 에도 막부 말기까지 소데가우라로 불리던 후미였다.

저지에는 구릉지와 대지를 구분짓는 하천의 곡저저지와 연안부의 해안저지가 있다. 곡저저지는 쓰루미 강을 따라서 퍼져 평탄한 삼각주성저지를 형성한다. 또 해안부에는 매립지가 조성되어 해안선은 대부분이 인공화되었다. 가나자와 구의 작은 후미 히라카타 만은 가마쿠라 막부가 바다의 관문으로 삼은 천연의 좋은 항구이다. 섬으로는 가나자와 구의 노시마(핫케이지마는 인공섬)가 있고 노시마 해안은 요코하마에서 유일한 자연 해변이다.

기후[편집]

혼슈의 거의 중앙, 태평양 기슭에 위치하고 기후구분으로는 온대온난습윤기후에 속한다. 기온의 연교차는 크고, 사계절이 뚜렷하다. 일교차는 작고,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이다. 요코하마는 장마철과 가을비, 태풍의 시기에 강수량이 많다. 겨울은 맑은 날이 많고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요코하마의 연평균 강수량은 1622.5mm이고 월평균 최고 강수량은 9월의 232.4mm이며 최저는 12월의 43.2mm이다. 연평균 기온은 15.5℃이고 월평균 최고 기온은 8월의 26.4℃이며 최저는 1월의 5.6℃이다. 연평균 상대습도는 68%이고 월평균 최고 상대습도는 7월의 80%, 최저는 1월의 54%이다.연평균 풍속은 3.4m/s이고 최대는 3월의 3.8m/s이며, 최소는 7월의 3.2m/s이다. 풍향은 7월이 남서쪽, 8월이 남남서쪽인 것 외에는 연중 북쪽이 가장 많다. 연평균의 합계 일조 시간은 1920.6시간이고 8월에 203.4시간으로 최다이고 9월이 125.3시간으로 최소이다. 대기 현상의 연평균 일수는 눈이 내리는 날이 9.8일, 안개가 끼는 날이 12.1일, 번개가 치는 날이 11.2일이다.

요코하마 지방 기상대의 관측 사상 최고기온은 1962년 8월 4일의 37.0℃이고, 최저 기온은 1927년 1월 24일의 ―8.2℃이다. 하루 강수량이 가장 많았던 것은 1958년 9월 26일의 287.2mm이고 한해 강수량이 가장 많았던 것은 1941년의 2535.2mm이다.

역사[편집]

시역에는, 대략 25곳의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쓰즈키 구의 하나미산 유적 등의 조몬 시대의 유적을 많이 볼 수 있다. 야요이 시대 중기까지의 유적은 적고, 중기 후반 이후의 것으로는 쓰즈키 구의 오쓰카·사이카치도이 유적 등, 방형주구묘를 수반하는 환호 집락이 나타난다. 고분의 출현한 것은 4 세기 중반 이후로 여겨지며 아오바 구의 이나리마에 고분군 등이 이 시대의 유적이다.

시역의 지명에 관한 문헌상의 첫 기록은 일본서기안칸 천황 원년(534년)의 것으로 여겨진다. 무사시 국에 사는 호족이 다치바나(橘花), 구라스(倉樔) 외 4곳을 미야케(屯倉, 천황의 직할지)로서 헌상했다는 기록이다. 7세기 후반까지 시역에는, 무사시 국 다치바나 군, 히사요시기 군, 쓰츠키 군, 사가미 국 가마쿠라 군이 놓였다.

시역은 나라 시대 이후 인구가 증가하고 생산력이 높아졌다. 헤이안 시대에는 각처에 개발도 진행되어, 반도 하치헤이씨나 무사시 칠당(무사단) 등, 간토 무사들이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시역에는 히라코 씨, 한가야 씨, 이나게 씨, 철당(기도)등의 무사단이 세력을 떨쳤다. 구묘지, 호쇼지 등, 헤이안 시대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지는 사원들은 유력 무사단의 지원을 받고 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역은, 가마쿠라에 가마쿠라 막부가 개설된 12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쓰루미 강이나 가시오 강등의 하천 유역에서는 농업이 발달하였고 13세기 전반에는, 현재의 신요코하마 주변 지역에 해당하는 고즈쿠에 향 도리야마부터 다마가와, 쓰루미 강 주변 지역이 막부에 의해서 대규모로 개발되었다. 또, 도쿄 만에 접하는 무추라미나토가 가마쿠라로 들어가는 입구로써 문화·교역·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중국 대륙(남송)과의 무역과 만내의 교역이 두드러져 무사나 상인·직인·종교인 등의 모임이 성황을 이루었고 도카이도에 접해 가나가와미나토와 함께 어업과 해운업이 발달하였다.

페리 제독의 요코하마 상륙

요코하마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무로마치 시대 중기의 1442년의 문헌이다. 이 해 히라코 씨의 가신이라고 생각되는 이치카와계 씨와 비류간범수의 두 명이, 이시카와의 보물을 금강원에, 요코하마 촌의 약사당 멘다전을 기부한다는 문서가 남아 있다. 요코하마 촌은 무사시 국 히사요시기 군에 속하였고 현재는 시정의 중심가가 되어 있는 간나이 지구(나카 구)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었다.

에도 막부가 세워진 17세기 이후에는, 도카이도의 슈쿠바인 가나가와주쿠, 호도가야주쿠, 도쓰카주쿠를 중심으로 발전한다. 에도시대 말기까지 요코하마 촌은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호수가 100호 밖에 안되는 사주상에 형성된 반농반어촌이었다.

요코하마 촌의 운명을 변화시킨 것은 당시에는 국교를 하지 않았던 미국의 매슈 페리가 지휘하는 외국 함선의 내항이었다. 태평양 항로의 거점이자 포경을 위한 공급 기지로서 일본의 항구를 이용하는 것을 바랐던 미국 해군의 외국 함선 일행은 무추라 번 고시바촌에 2개월 동안 정박하며 막부의 대응을 기다린 후에 요코하마 해로 들어갔으며 그 후 막부는 요코하마 촌의 응접소에서 외교교섭을 실시했다. 교섭의 결과 1854년에 요코하마 촌에서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되었고 1858년에는 가나가와 오키·고시바에서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통상조약에 가나가와를 개항하도록 정한 것이 요코하마의 도시 개발의 발단이 되었다.

요코하마 항의 외국 선박

막부는 도카이도에 접해 당시 이미 발전해있던 가나가와미나토를 피해 외국인 거류지를 멀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요코하마 촌을 "가나가와의 요코하마"로 칭하고 개항지로 했다. 요코하마 촌은 단기간에 거류지, 부두, 공물을 상납한 세관 등 국제항으로써의 체재가 정돈되어 1859년 7월 1일에 요코하마 항으로써 개항했다. 요코하마는 일본의 관문의 하나가 되어 여러가지 문물이 빠르게 도입되는 국제색이 뚜렷한 도시로써 발전하기 시작했다.

요코하마 촌은 막부가 설치한 공물을 상납한 세관을 경계로, 이남을 외국인 거류지(요코하마 거류지), 이북을 일본인 거주구로 하였다. 경계에는 관문이 놓여 관문으로부터 외국인 거류지 측을 간나이(関内), 이외를 간가이(関外)라고 불렀다. 외국인 거류지에는,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이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각국의 외국 상관이 줄지어 서있었다. 현재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외국인 거류지안에 형성된 중국인 상관을 기원으로 한다. 한편 일본인 거주지는 요코하마 정이라고 이름 붙였고 1889년 4월 1일 시 제도가 시행되는 것과 동시에 시가 되어 요코하마 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의 시역 면적은 요코하마항 주변의 5.4km내였다. 면적이 좁기는 했지만 시 제도 시행 당시 벌써 호수가 27,209호 인구 121,985명(1889년말 시점)에 이르렀다. 그 후, 간나이 지구는 시정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발전한다.

요코하마의 외국인 교역소

개항 초의 요코하마 항에는 동쪽 부두(영국 부두)와 서쪽 부두(세관 부두)가 설치되었고 동서 부두는 그 모양 때문에 "코끼리의 코"로 불렸다. 여기서의 무역은, 생사, 차, 해산물이 수출되었고 견직물, 모직물이 수입되었다. 1872년 10월 14일에는, 신바시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가 개통하였다. 동년에 가나가와 역(현재의 요코하마 역 근방)과 쓰루미 역도 개설되었다. 당시 생사 무역의 주도권은 외국 상관에 있었다. 그 때문에 요코하마 상인으로 불린 일본인 무역상은, 1873년에 생사개회사를 설립하고 경쟁력을 높였고 1881년에는 생사하예소를 설립해 생사 무역의 주도권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또 요코하마 상인들은, 현영 수도의 설치(1887), 요코하마 공동 전등 회사 설립(1890), 만전 병원의 설립(1891), 생사 검사소, 상업 회의소의 설립(1895) 등 도시 기반의 정비와 상업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다이쇼 시대에 쓰루미 강 하구의 매립이 시작되었고 게이힌 공업지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요코하마 항은 공업항으로써의 성격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관동 대지진 때 요코하마 항, 간나이를 포함해 시내 전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 재해 부흥 사업에 의해, 니혼 대로의 폭 확장, 야마시타 공원의 조성, 요코하마 3탑으로 꼽히는 가나가와 현 청사나 요코하마 세관 청사의 건설 등이 행해져 1929년에 거의 옛 모습을 회복했다.

관동 대지진 후 요코하마를 시찰하는 섭정궁(훗날 쇼와 천황)

쇼와 시대인 1926년 4월에 제3차 시역 확장을 하였고 동년 10월에는 구제가 시행되어 쓰루미 구, 가나가와 구, 나카 구, 호도가야 구, 이소고 구의 5개 구가 설치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의 1945년 5월 29일의 요코하마 대공습 때 이소고 구에서 쓰루미구에 이르는 연안부가 불타버렸고 나카 구, 니시 구의 중심 시가지는 파괴되었다. 동년 8월의 종전에 의해 영국군이나 미군, 중화민국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진주하였고 요코하마의 중심 시가지와 요코하마 항은 연합군에 접수되어 도시 기능은 마비되었다. 연합군은 요코하마 세관 빌딩에 연합군 최고사령부(GHQ, 후에 도쿄의 제일생명 빌딩에 이전)와 태평양 육군 총사령부(AFPAC)를 두어, 군사거점으로 삼았다. 공습과 뒤이은 연합군의 접수에 의해, 요코하마의 부흥은 크게 늦어졌다.

1950년, 요코하마 국제항도건설법이 제정되어 부흥을 위한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1951년에는, 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의 연합국에 의한 점령 체제가 끝났다. 또 이 해에는 요코하마 항의 관리가 나라에서 시로 이관되었다. 조약이 발효된 다음인 1952년 이후 대부두나 야마시타 공원 등이 차례로 접수 해제되었다.

미나토미라이21

1956년 9월 1일 제도의 시행과 함께 정령 지정 도시로 지정되었다. 1964년 5월에는 네기시 선이 개통하였고 동년 10월에는 도카이도 신칸센의 개통과 함께 요코하마 선과의 만나는 지점에 신요코하마 역이 개설되었다. 1985년에는 인구가 300만 명을 넘어섰다. 1989년에는 시 설립 100주년과 개항 130주년을 기념해 요코하마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1990년 도심부 정비 계획의 일환으로 요코하마 역 주변 지구와 간나이 지구를 잇는 미나토미라이21 지구의 정비가 본격화되었다. 1998년에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닛산 스타디움)이 건설되었고 2002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이 이곳에서 열렸다.

지역[편집]

요코하마의 구

경제[편집]

도시의 강력한 경제 기반은 조선업, 생명공학 산업, 반도체 산업이다. 닛산 자동차는 2010년까지 본사를 도쿄 도 주오 구에서 요코하마로 이전할 계획이다.

교통[편집]

요코하마 역

도로[편집]

철도[편집]

시설·건축물[편집]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교육[편집]

언론[편집]

자매 도시[편집]

주요 인물[편집]

픽션[편집]

소설[편집]

만화·애니메이션[편집]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