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터니 휴이시
앤터니 휴이시 (Anthony Hewish, 1924년 5월 11일 -) 은 1974년에 구경 합성 기술을 개발하고 펄서를 발견한 공로로 마틴 라일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전파 천문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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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기 [편집]
그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 재학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니면서 논문을 쓰고 있을 때, 영국 왕립 비행단(영국 공군)과 영국 원격 통신 연구 회사에서의 전쟁 지원을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구성원들이 징집되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 원격 통신 회사에서 마틴 라일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1946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온 그는 학위를 수여받은 후 바로 캐번디시 연구소 내의 마틴 라일의 연구팀에 들어갔고, 1952년에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항성원에서 방사된 빛이 플라즈마와 충돌하여 확연한 신틸레이션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아내 항성원 탐색의 실지적이고 이론적인 분야 모두에 공헌했다.
노벨상 수상 [편집]
그가 천문대에서 조사를 하던 중에 그의 제자였던 조슬린 벨이 최초로 펄서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을 발표한 논문의 지은이 명단에서는 휴이시는 첫 번째, 벨은 두 번째로 올라갔다. 그 결과로 1974년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마틴 라일과 휴이시로 결정되었다. 그 일은 이후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동료 천문학자이던 프레드 호일은 이 점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전파 천문학에 대한 그들의 공로 자체를 생각하면 그들이 수상하는 것이 맞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1].
기타 경력 [편집]
그는 1971년부터 1989년까지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전파 천문학과 교수로 있었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는 뮐러드 전파 천문대 대장으로 있었다. 1968년에는 영국 학술원의 특별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로런스 브래그 경이 영국 왕립 과학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연구소와 제휴를 맺은 이후 크리스마스에 특별 강의를 했고, 이후 가끔 금요일 저녁에 강의를 하기도 하다가[2] 1977년에 정교수로 임명되었다[3][4].
수상, 가입 단체 [편집]
그는 맨체스터 대학교, 엑세터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 여섯 개의 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고,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인도 국립 과학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었다. 그가 받은 상들은 다음과 같다[3].
- 에딩턴 메달 (1969)
- 델린저 메달 (1972)
- 앨버트 A. 마이클슨 메달 (1973)
- 노벨 물리학상 (1974)
- 휴스 메달 (1977)
종교적 견해 [편집]
그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가 저술한 책 진실에 대한 질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희미하게 존재하는 가상 입자는 이성적인 상식을 벗어나고 물리학에 생소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신에 대한 종교적 믿음은 (중략)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기초 물리학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들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숙한 측면이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5] | ” |
주석 [편집]
- ↑ 노벨상 홈페이지
- ↑ 노벨상 홈페이지에 있는 자서전 내용
- ↑ 가 나 2009년 마르퀴즈 후즈 후 p1072
- ↑ 영국 왕립 과학 연구소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천문학과 교수였다.
- ↑ 진실에 대한 질문(Questions of Truth)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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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1-1925 |
1901: 뢴트겐 | 1902: 로런츠 / 제이만 | 1903: 베크렐 / P. 퀴리 / M. 퀴리 | 1904: 레일리 | 1905: 레나르트 | 1906: 톰슨 | 1907: 마이컬슨 | 1908: 리프만 | 1909: 마르코니 / 브라운 | 1910: 판데르 발스 | 1911: 빈 | 1912: 달렌 | 1913: 카메를링 오너스 | 1914: 라우에 | 1916: W. L. 브래그 / W. H. 브래그 | 1917: 바클라 | 1918: 플랑크 | 1919: 슈타르크 | 1920: 기욤 | 1921: 아인슈타인 | 1922: N. 보어 | 1923: 밀리컨 | 1924: M. 시그반 | 1925: 프랑크 / 헤르츠 |
| 1926-1950 | |
| 1951-1975 |
1951: 콕크로프트 / 월턴 | 1952: 블로흐 / 퍼셀 | 1953: 제르니커 | 1954: 보른 / 보테 | 1955: 램 / 쿠시 | 1956: 쇼클리 / 바딘 / 브래튼 | 1957: 양전닝 / 리정다오 | 1958: 체렌코프 / 프란크 / 탐 | 1959: 세그레 / 체임벌린 | 1960: 글레이저 | 1961: 호프스태터 / 뫼스바워 | 1962: 란다우 | 1963: 위그너 / 괴퍼트메이어 / 옌젠 | 1964: 타운스 / 바소프 / 프로호로프 | 1965: 도모나가 / 슈윙거 / 파인먼 | 1966: 카스틀레르 | 1967: 베테 | 1968: 앨버레즈 | 1969: 겔만 | 1970: 알벤 / 네엘 | 1971: 가보르 | 1972: 바딘 / 쿠퍼 / 슈리퍼 | 1973: 에사키 / 예베르 / 조지프슨 | 1974: 라일 / 휴이시 | 1975: A. 보어 / 모텔손 / 레인워터 |
| 1976-2000 |
1976: 릭터 / 팅 | 1977: P. W. 앤더슨 / 모트 / 밴블렉 | 1978: 카피차 / 펜지어스 / R. 윌슨 | 1979: 글래쇼 / 살람 / 와인버그 | 1980: 크로닌 / 피치 | 1981: 블룸베르헌 / 숄로 / K. 시그반 | 1982: K. 윌슨 | 1983: 찬드라세카르 / 파울러 | 1984: 루비아 / 반데르 메르 | 1985: 폰 클리칭 | 1986: 루스카 / 비니히 / 로러 | 1987: 베드노르츠 / 뮐러 | 1988: 레이더먼 / 슈바르츠 / 스타인버거 | 1989: 램지 / 데멜트 / 파울 | 1990: 프리드먼 / 켄들 / R. 테일러 | 1991: 드젠 | 1992: 샤르파크 | 1993: 헐스 / J. 테일러 | 1994: 브록하우스 / 슐 | 1995: 펄 / 라이네스 | 1996: D. 리 / 오셔로프 / R. 리처드슨 | 1997: 추 / 코엔타누지 / 필립스 | 1998: 로플린 / 슈퇴르머 / 츄이 | 1999: 엇호프트 / 펠트만 | 2000: 알표로프 / 크뢰머 / 킬비 |
| 2001-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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