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서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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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라울(Raoul, Raoul, 880년/890년경 - 936년 1월 죽음) 또는 루돌프(Rudolph)는 프랑크 왕국의 귀족이자 부르고뉴의 공작으로 923년부터 프랑스 왕이었다. 그는 로베르 1세의 사위였다. 평생 왕위를 놓고 투쟁했으며 죽기 직전 왕위를 확립했다. 라둘프(Radulf) 또는 랄프(Ralph)로도 부른다. 프로방스의 보소의 조카손자였다.

생애[편집]

라울

라울은 고르즈의 비빈(Bivin of Gorze)의 손자로, 아버지 리처드 정의공은 부르고뉴의 공작이었다. 또한 그의 백부는 프로방스의 보소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의 사위였으며, 고모 리첼다카를 2세의 후처였다.

라울은 아버지 리처드 정의공로부터 부르고뉴의 공작의 지위를 물려받았고 파리백작 로베르 1세의 딸 엠마와 결혼하였다. 프로방스의 보소의 조카손자였던 그는 922년 장인과 함께 프랑스의 샤를 3세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샤를을 왕위에서 쫓아내고 로베르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 수아송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로베르가 죽자 네우스트리아의 귀족들에 의해 프랑스의 왕으로 정해졌다.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동생 위그에게 부르고뉴 공작위를 물려주었다. 당시 단순왕 샤를은 아직 죽지 않고 계속 자신의 왕위를 주장했는데 라울의 동서인 베르망두아의 헤르베르트 2세는 계략을 써서 샤를을 만나 그를 감금시켜버렸다.

라울은 왕위에 오르자 마자 로타링기아을 병합하려는 독일 왕 하인리히 1세와 맞써 싸웠고 평화협상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925년 다시 라울의 서프랑크 군을 공격하여 결국 로타링기아는 완전히 독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당시 왕국은 바이킹족의 새로운 침공이 있었는데 라울은 처음에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바이킹족이 왕위를 위협하자 부르고뉴에서 거병하였다. 또한 라울은 노르만족마자르족의 침입을 막아야 했다.

928년에는 베르망두아 백작 에르베르에게 랑을 양도해야 했는데 카롤링거 왕조 출신인 에르베르는 처음에는 라울을 지지하는 귀족이었지만 단순왕 샤를을 자신의 수중에 두고 그를 이용해 라울을 협박했다. 그러나 929년 샤를이 죽고 에르베르에게 라울을 반대할 도구가 없어지자 라울은 반격에 나섰고 여러 귀족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933년934년에 걸쳐 그는 에르베르의 세력을 꺾기 위해 랭스로 쳐들어가 에르베르가 샤를을 감금했던 요새를 불태우고 935년 에르베르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라울은 갑자기 병에 걸렸고 곧 죽고 말았다. 이에 한때 그가 카롤링거 왕가 지지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관련 항목[편집]

전 임
로베르 1세
서 프랑크의 왕
923년 - 936년
후 임
루이 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