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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이 도카이 지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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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단층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73년 안도 마사타카로 [[판 구조론]] 성립 이후 1972년 [[가나모리 히로]]가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이 난카이 해곡의 판 경계를 따라 일어난 [[충상단층|낮은 각도의 역단층]]의 거대지진이라는 추정<ref>{{저널 인용 |url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0031920172900829 |제목 = Tectonic implications of the 1944 Tonankai and the 1946 Nankaido earthquakes |저자 = Hiroo Kanamori |저널 = Physics of the Earth and Planetary Interiors |권 = 5 |날짜 = 1972년 |쪽 = 129-139 |doi = 10.1016/0031-9201(72)90082-9}}</ref>을 기반으로 해일의 높이 변동 및 쓰나미와 지진 진동 분포의 차이를 분석하여 가나모리의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의 단층 모델에서 해곡 축을 평행하게 이동시켜 엔슈나다에서부터 세로 100km, 가로 230km 길이의 단층 모델을 제시하였다.<ref name ="Ando1975" /><ref name="Sato et al. (1989)" />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단층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73년 안도 마사타카로 [[판 구조론]] 성립 이후 1972년 [[가나모리 히로]]가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이 난카이 해곡의 판 경계를 따라 일어난 [[충상단층|낮은 각도의 역단층]]의 거대지진이라는 추정<ref>{{저널 인용 |url =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0031920172900829 |제목 = Tectonic implications of the 1944 Tonankai and the 1946 Nankaido earthquakes |저자 = Hiroo Kanamori |저널 = Physics of the Earth and Planetary Interiors |권 = 5 |날짜 = 1972년 |쪽 = 129-139 |doi = 10.1016/0031-9201(72)90082-9}}</ref>을 기반으로 해일의 높이 변동 및 쓰나미와 지진 진동 분포의 차이를 분석하여 가나모리의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의 단층 모델에서 해곡 축을 평행하게 이동시켜 엔슈나다에서부터 세로 100km, 가로 230km 길이의 단층 모델을 제시하였다.<ref name ="Ando1975" /><ref name="Sato et al. (1989)" />


하지만 1976년 이시바시 가쓰히코는 지금까지 지진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던 판 경계간 지점인 [[스루가 해곡]]을 같은 해 하토리 도쿠타로가 수집한 시즈오카현 문서<ref name="Hatori1976" />의 지진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해안 지역 융기, 메이지 시기 이후의 지각변동, 진도 분포도 분석, 고지대에서 스루가만에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걸 목격했다는 기록<ref name="Ishibashi1994-18">{{서적 인용 |제목 = 大地動乱の時代 -地震学者は警告する- |저자 = 石橋克彦 |출판사 = 岩波新書 |언어 = ja |날짜 = 1994년 8월 |쪽 = 18-27 |isbn = 4-00-430350-8}}</ref>을 통해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스루가만도 진원역에 속한다고 결론내리고 스루가 해곡도 판 [[섭입대]] 영역으로 거대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ref name="Ishibashi1977" /><ref>{{저널 인용 |url = historical.seismology.jp/ishibashi/archive/1976SurugaBayEq.pdf |제목 = 東海地方に予想される大地震の再検討−駿河湾大地震について− |저자 = 石橋克彦 |저널 = 歴史地震のページ |출판사 = 和51年度地震学会秋季大会講演予稿集 |권 = 2 |호 = 20-34 |언어 = ja |쪽 = 1-5 |날짜 = 1976년 |확인날짜 = 2019년 3월 26일}}</ref> 또한 간바라 지진산 형성 기록에서 진원역이 해안 안쪽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마노나다-엔슈나다의 진원 단층에 스루가만 안쪽 스루가 해곡 축선에 평행한 단층을 더한 모델을 제시했다.<ref name="Ishibashi1981" /><ref name="Aida1" />
하지만 1976년 이시바시 가쓰히코는 지금까지 지진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던 판 경계간 지점인 [[스루가 해곡]]을 같은 해 하토리 도쿠타로가 수집한 시즈오카현 문서<ref name="Hatori1976" />의 지진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해안 지역 융기, 메이지 시기 이후의 지각변동, 진도 분포도 분석, 고지대에서 스루가만에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걸 목격했다는 기록<ref name="Ishibashi1994-18">{{서적 인용 |제목 = 大地動乱の時代 -地震学者は警告する- |저자 = 石橋克彦 |출판사 = 岩波新書 |언어 = ja |날짜 = 1994년 8월 |쪽 = 18-27 |isbn = 4-00-430350-8}}</ref>을 통해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스루가만도 진원역에 속한다고 결론내리고 스루가 해곡도 판 [[섭입대]] 영역으로 거대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ref name="Ishibashi1977" /><ref>{{저널 인용 |url = http://historical.seismology.jp/ishibashi/archive/1976SurugaBayEq.pdf |제목 = 東海地方に予想される大地震の再検討−駿河湾大地震について− |저자 = 石橋克彦 |저널 = 歴史地震のページ |출판사 = 和51年度地震学会秋季大会講演予稿集 |권 = 2 |호 = 20-34 |언어 = ja |쪽 = 1-5 |날짜 = 1976년 |확인날짜 = 2019년 3월 26일}}</ref> 또한 간바라 지진산 형성 기록에서 진원역이 해안 안쪽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마노나다-엔슈나다의 진원 단층에 스루가만 안쪽 스루가 해곡 축선에 평행한 단층을 더한 모델을 제시했다.<ref name="Ishibashi1981" /><ref name="Aida1" />

한편 2011년 세노 데쓰조는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의 진원역을 A(도사만), B(기이수도), C(구마노나다), D(엔슈나다), E(스루가만) 5개 영역으로 나눈 후 도카이 쪽 구마노나다는 진원역에 속해 있으나 스루가만은 속하지 않은 '호에이형'과 안세이 도카이 지진처럼 구마노나다는 진원역에 속해지 있지 않으나 스루가만은 속해 있는 '안세이형' 2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두 지진은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주장했다.<ref>{{저널 인용 |url = https://www.jstage.jst.go.jp/article/zisin/64/2/64_2_97/_article/-char/ja/ |제목 = 南海トラフ巨大地震 -その破壊の様態とシリーズについての新たな考え |저자 = 瀬野徹三 |저널 = 地震 第2輯 |언어 = ja |권 = 64 |호 = 2 |쪽 = 97-116 |날짜 = 2012년 |확인날짜 = 2019년 3월 26일 |doi = 10.4294/zisin.64.97}}</ref> 이에 이시바시는 세노 교수가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구마노나다 연안의 진도가 비교적 낮다는 주장에 대해 '호에이형'이라고 가정한 1944년 도난카이 지진에서도 구마노나다 서쪽 지역의 진도는 별로 높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안세이 도카이 지진에서 기나이 지역이 느낀 지진 강도나 [[유노미네온천]]의 온천수 용출 정지 현상 가능성, 호에이 지진과 안세이 지진 시기 지진 정보 및 문헌 기록의 양, 질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루가만 지역의 진원역 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구마노나다를 진원역에 포함하지 않은 '안세이형' 등의 구분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ref>{{서적 인용 |제목 = 南海トラフ巨大地震 -歴史・科学・社会- |저자 = 石橋克彦 |출판사 = 岩波書店 |언어 = ja |날짜 = 2014년 3월 |쪽 = 168-173 |isbn = 978-4-00-028531-5}}</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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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6일 (화) 15:06 판

안세이 도카이 지진
전진
최대 전진1854년 7월 9일 M7.6 이가우에노 지진
본진
UTC 시각??
ISC 지진번호
USGS-ANSS
발생일 *1854년 12월 23일
발생시간 *9시 15분 경 (JST)
현지일
현지시간
규모   M 8.4
Mw8.4-8.6
최대 진도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 진도 7 : 가이 고사이마치, 스루가 사가라, 도토미 후쿠로이
진앙일본 난카이도 해역
북위 34° 0′ 0″ 동경 137.8° 0′ 0″ / 북위 34.00000° 동경 137.80000°  / 34.00000; 137.80000[주해 1]
종류해구형지진, 역단층형 지진
여진
횟수1년간 유감지진 817회 이상
최대여진1855년 11월 7일 엔슈나다 해역 M7-7.5 지진
피해
지진해일태평양 연안, 구마노나다에서 최대 높이 22.7m
사상자사망자 2-3천명 이상

안세이 도카이 지진(일본어: 安政東海地震 あんせいとうかいじしん[*])은 에도 시대 1854년 12월 23일(가에이 7년 음력 11월 4일)에 일어난 도카이 지진이다. 여기서 '도카이 지진'이라 함은 난카이 해곡의 동쪽 절반 도카이도 해역을 진원으로 하는 지진을 말하는 것으로, 이른바 도난카이 지진의 진원역도 안세이 도카이 지진 진원역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2]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일부로 도카이 지진이 있기 32시간 후에 일어난 안세이 난카이 지진과 묶어서 안세이 지진[3](일본어: 安政地震) 또는 안세이 대지진(일본어: 安政大地震)이라 통칭하여 부른다.[4] 이들 지진은 가에이 연간에 일어난 지진이나[5] 천재지변 및 궁궐 화재, 페리 원정 사건 등의 이유로 연호를 개원하여 1854년을 원년으로 안세이로 바꿨기 때문에 '안세이 지진'이라 불린다.[6] 지진이 일어난 당시엔 도라 대변(일본어: 寅の大変)라 불리기도 했다.[7]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하루 뒤 일어난 안세이 난카이 지진과 함께 기록이 많이 남은 역사지진 중 하나로, 여러 고서에 지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8][9][10][11] 또한 안세이 시기 무렵부턴 고서 및 일기 외에도 편지 등 여러 종류의 기록에도 지진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재해 시 사람들의 상세한 행동 기록도 남게 되었다.[12]

에도 시대의 관련 지진

에도 시대엔 난카이 해곡을 잇는 지역을 진원으로 하는 지역에 일어난 지진으로 1707년(호에이 4년)에 일어난 호에이 지진이 있었다.[13] 또한 안세이 지진은 '호에이 지진의 여파로 일어난 지진'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어 호에이 지진 147년 후 일어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은 지진 발생 간격이 짧은 편에 속하는 것이다는 주장도 있다.[14]

1605년(게이초 9년)에 일어난 게이초 지진도 한때 진원역이 난카이도 해역에서 도카이도 해역에 걸친[15] 난카이 해곡의 해일지진이라는 견해도 있었다.[16] 하지만 게이초 지진의 진원역에는 여러 설이 존재하여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이 맞는지에 대해서 의문점이 남아 있으며 이즈-오가사와라 해구에서 일어난 지진이라는 설[17]에서 먼 지역에서 온 쓰나미라는 설도 존재한다.[14]

안세이 난카이 지진 이틀 후엔 호요 해협에서 규모 M7.0의 호요 해협 지진이 일어났다.[18] 이듬해인 1855년엔 간토 지방에서 규모 M6.9-7.4의 안세이 에도 지진이 일어났다..[19] 안세이 도카이 지진, 난카이 지진, 에도 지진을 묶어 안세이 3대 지진(일본어: 安政三大地震)이라 하며[20] 1854년 이가우에노 지진, 1858년 히에쓰 지진 등 안세이 연간 연달아 일어난 대지진을 묶어 안세이 대지진이라 일컫는다.[21]

지진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일본 지역별 추정 진도 분포 지도.[22][23]

지진동

1854년 12월 23일, 일본 표준시(JST)로 9시가 막 넘어갈 무렵 구마노나다, 엔슈나다 해상에서 스루가만 까지를 진원으로 하는 영역에서 거대지진이 일어났다. 필리핀해판유라시아판 아래로 섭입하여 침강하는 난카이 해곡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해구형지진인 것으로 추정된다.[24] 러시아 프리깃 다이아나호 기록에선 9시 15분 경 해저지진으로 보이는 진동이 2-3분 정도 계속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25]

스루가만 연안 지역의 피해가 매우 극심했고 스루가만 서부 및 고후 분지 지역이 진도7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진원역은 호에이 지진 때보다 스루가만 안쪽에 들어가 있거나 내륙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26][27] 진도4 이상의 진동을 느낀 영역은 도호쿠 지방 남부에서 주고쿠, 시고쿠 지역까지 광범위했으며 진원역 길이는 300km 이상으로 추정된다.[28][29]

누마즈 번사들에 따르면 처음 흔들림이 시작될 땐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곧 강진이 닥쳐 땅에 엎드려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흔들림이 왔다고 한다. 여러 기록에선 흔들림이 시작된 때부터 강진이 올 때 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담배 4-5모금을 빨 정도의 시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30]

도사 고치에서도 흔들림이 매우 강하게 느껴져 "이전까지 없었던 드문 지진"으로 토장의 벽이 금이 갈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31][32] 또한 규슈에서도 지진 진동을 느낄 정도였는데, 분고국 사에키 번에서는 땅이 약간 흔들리는 지진을 느꼈다고 기록되어 있다. [33]

아래는 우사미(宇佐美, 1983, 2003)의 두 연구에 따른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추정 진도 분포이다.

가도 추정 진도[22][23]
기나이 교토(4-5), 오사카(5-6), 사카이(5-6), 기시와다(4-5), 나라(5), 고리야마(6), 오이우다(4-5), 요시노(4-5), 고조(4-5), 아마가사키(5-6), 진도(E)
도카이도
(슈쿠바)
에도(5) - 시가나와 - 가와사키(5-6) - 가나가와(5-6) - 호도가야(5-6) - 도쓰카(5-6) - 후지사와(4-5) - 히라쓰카(5) - 오이소(5) - 오다와라(5) - 하코네(6) - 미시마(6-7) - 누마즈(6) - 하라(5) - 요시와라(6-7) - 간바라(7) - 유이(5) - 오키쓰(6-7) - 에지리(6) - 후추(6) - 마리코(6) - 오카베(6) - 후지에다(5-6) - 시마다(6) - 가나야(5-6) - 닛사카(5-6) - 가케가와(6-7) - 후쿠로이(7) - 미쓰케(6-7) - 하마마쓰(5-6) - 마이사카(5-6) - 아라이(5-6) - 시라스카(5-6) - 후타가와(5-6) - 요시다(6) - 고유슈쿠(5) - 아카사카슈쿠(5) - 후지카와(5) - 오카자키(5) - 지류(5-6) - 나루미(5-6) - 미야(5-6) - 구와나(5) - 욧카이치(5-6) - 이시야쿠시 - 요노(5) - 가메야마(5) - 세키슈쿠(5) - 사카시카 - 쓰치야마 - 미나쿠치(5) - 이시베(5) - 구사쓰(5) - 오쓰(5) - 교토(4-5)
도카이도 시모쓰마(E), 초시(e), 사와라(4), 구주구(E), 가쓰우라(e), 나라시노(E), 후나바시(E), 소카(5), 이와쓰키(4), 하치오지(E), 오쓰키(5-6), 고슈(4-5), 고후(6), 고사이(7), 가지카자와(6-7), 우라가(5), 니지마섬(5), 아타미(5), 시모다(5), 도이긴잔(5-6), 마쓰오카(7), 사가라(7), 이케신덴(6), 요코스카(5-6), 신시로(5-6), 니시로(5-6), 다하라(5-6), 오와리(5-6), 고모노(5-6), (5-6), 마쓰사카(5-6), 히사이(6), 후타미가(5-6), 도바(5-6), 우에노(5)
나카센도
(슈쿠바)
에도(5) - 이타바시 - 와라비(5) - 우라와 - 오미야(5) - 아게오 - 오케가와(5) - 고노스 - 구마가이(E) - 후카야 - 혼조 - 신마치 - 구라가노 - 다카사키슈쿠(4-5) - 이타하나 - 안나카 - 마쓰이다 - 사카모토 - 가루이사와 - 구쓰카케 - 오이와케(4) - 오타이 - 이와무라다(5-6) - 시오나다 - 야와타 - 모치즈키 - 아시다 - 나가쿠보 - 와다 - 시모스와(6) - 시오지리 - 세바 - 모토야마 - 니에카와 - 나라이 - 야부하라 - 미야노코시 - 후쿠시마(5) - 아게마쓰(4) - 스하라 - 노지리슈쿠 - 미도노 - 쓰마고 - 마고메(4-5) - 오치아이 - 나카쓰가와(5) - 오이(5) - 오쿠테(5) - 호소쿠테 - 미타케 - 후시미 - 오타 - 우누마 - 가노 - 고도 - 미에지 - 아카사카 - 다루이(5-6) - 세키가하라(5-6) - 이마스 - 가시와바라 - 사메가이 - 반다 - 도리이모토 - 다카미야 - 에치가와 - 무사 - 모리야마(5) - 구사쓰 - 오쓰 - 교토(4-5)
도산도 오이시다(e), 요네자와(4), 아이즈(4), 시라카와(4), 다지마(e), 닛코(4), 다테바야시(5), 모카(E), 누마타(E), 이세사키(4), 다카사키(4-5), 시모니타(4), 이이야마(5), 젠코지(4), 마쓰시로(5-6), 우에다(5), 고모로(4-5), 마쓰모토(6), 스와(5-6), 다카토(5), 이이다(5), 이나다(5), 다카야마 진야(E), 시로토리(E), 이와무라(5), 오가키(5-6), 다루이(5-6), 가미이시즈(5), 나가하마(5), 히코네(5)
호쿠리쿠도 분수(e), 산조(e), 가시와자키(4), 다카오카(4-5), 히미(5), 가나자와(4-5), 고마쓰(4), 야마나카(4-5), 다이쇼지(5-6), 마루오카(5), 오노(4-5), 후쿠이(5-6), 사바에(E), 쓰루가(5-6), 오바마(4-5)
산인도 가메야마(4), 소노베(5), 미야즈(E), 이즈시(S), 이쿠노(e), 하마사카(E), 돗토리(S), 사카이미나토(e), 히로세(S), 마쓰에(S), 하기(S)
산요도 아카시(S), 가코가와(4-5), 히메지(4), 다쓰노(e), 아코(E), 쓰야마(e), 오카야마(e), 구라시키(E), 미요시(E), 후쿠야마(e), 오노미치(e), 구레(S), 히로시마(4), 이와쿠니(e), 오고리(e)
난카이도 오와세(5), 신구(5-6), 가쓰우라(5), 구시모토(E), 다나베(5), 시라하마(5), 와카야마(5), 스모토(E), 도쿠시마(5), 유키(4-5), 다카마쓰(4-5), 마루가메(E), 다도쓰(e), 젠쓰지(e), 고토히라(e), 다키와마(E), 고마쓰(M), 이마바리(e), 마쓰야마(e), 오즈(e), 요시다(e), 무로토(e), 고치(4), 스사키(e), 가미노카에(e), 구보카와(E), 나카무라(e), 스쿠모(e)
사이카이도 구루메(E), 사가(e), 구마모토(e), 나카쓰(e), 기쓰키(e), 히지(e), 벳푸(e), 오이타(e), 우스키(e), 사이키(e)
S: 강한 지진(≧4),   E: 대지진(≧4),   M: 중지진(2-3),   e: 소지진(≦3)

피해

지진 피해는 간토 지방에서 긴키 지방에 달하여 누마즈에서 이세만 사이 지역, 특히 하코네슈쿠미쓰케슈쿠 사이의 도카이도 지역 및 고후 분지 지역에 주택 붕괴 피해가 극심했다. 가이국, 시나노국, 오미국, 셋쓰국, 에치젠국, 가가국에서 주택 붕괴 피해가 보고되었다.

호에이 지진때보단 화재가 적었으나 안세이 도카이 지진으로 인해 도카이도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화재가 일어나[23] 시나노국 마쓰모토 번에선 성 아래 집들이 거의 대부분 붕괴되고 대화재가 일어나 350칸의 주택이 불에 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34] 특히 도카이도의 슈쿠차 피해를 종합하면 미시마슈쿠에서 시라스카슈쿠 근처까지 일제히 "완전히 붕괴"되었거나 "완전히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으나 고유슈쿠 서쪽은 피해가 비교적 약했다.[35]

에도에서도 고대의 히비야 강 어귀였던 곳은 진도 5강 정도의 심한 흔들림을 느꼈으며 다음 날 난카이 지진이 일어난 날 밤엔 아사쿠사를 중심으로 큰 화재가 일어났다.[36] 에도의 무사 주택 및 여러 상가들이 붕괴되었으며 옛 강이 요동치거나 수면의 큰 요동으로 배가 전복되는 등 장주기 지진동이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현상도 관측되었다.[11]

도카이 지방을 중심으로 토양액상화 현상이 일어나 고문서 여럿에 '땅 위로 진흙이 분출했다'는 등의 기록이 자주 나왔다. 예를 들어, 도쿄 대학 지진연구소에 소장된 스루가의 "갑인년 11월 스루가국의 거대지진으로 진흙이 분출하는 그림"(甲寅の十一月駿河の国大地震により泥水をふき出す図)이 있으며 누마즈 메이지 기록관에 소장된 "안세이 견문록"(安政見聞録)에서는 논이 호수처럼 되버린 광경을 그린 그림이 존재한다.[37]

미시마슈쿠에선 슈쿠가 한채도 남지 않고 모조리 무너졌으며 마을 하나가 화재로 소실되고 땅엔 물을 뿜어내는 곳도 있었다. 누마즈슈쿠에서도 집이 대부분 무너졌으며 누마즈 성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시와라슈쿠에선 흙탕물이 3m 정도 밀려올라오고 슈쿠가 반 정도 불에 타 소실되었으며, 후지강 나룻배 운행이 중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바라슈쿠와 에지리슈쿠도 대부분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38]

시라토리야마산이 무너져 후지강을 막아 일시적으로 강을 그냥 건널 수 있게 되었지만 폐색호가 얼마 있지 않아 무너져 고칸지마와 미야지마 지역에 홍수가 일어나 집이 떠내려가고 2-3일 지나서야 물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갔다.[39][40]

지각 변동

지진에 의한 지각 변동 결과 오마에자키곶 지역은 0.8-1m 융기하였다. 하마나호 북부와 아쓰미만 연안 지역은 침강하였다. 전체적으로 동남쪽으로는 융기, 서북 내륙 지역은 침강하는 변동이 일어났다. 또한 단층 활동면은 해저에서 내륙까지 이어져 엔슈 사가라항은 1m 융기하였고 시미즈항은 융기로 항구가 사용 불가능해졌다. 사가라 지역은 연안 100m 지역이 물이 빠져 겟벌이 펼쳐졌다. 스루가만 서쪽은 연안 지역 요코스카에서 미나토 지역까지 1m 남짓 융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41]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볼 정도"라고 할 정도로 험하다고 부르던 사타 고개(薩埵峠) 바로 아래 해안은 융기로 새로운 육지가 생겼으며, 이 지역에 현재의 국도 제1호선, 도메이 고속도로, 도카이도 본선이 지나가게 되었다.[42][43]

후지카와강 하구 부근에선 이와부치 지진산(岩淵, 간바라 지진산으로도 불림)과 마쓰오카 지진산(松岡) 서쪽에 약 3m 가까이 되는 거대한 단층이 생겨 물길이 바뀌고 이 결과 간바라 지역은 경작지가 늘어났으나 역으로 동쪽 지역은 상습적인 홍수 피해를 입는 곳이 되었다. 이 때문에 간바라 지역에선 경작지 증가를 환영하면서 "지진 씨, 지진 씨, 다시 와 다오. 내 대에 한번, 손자 대에 두번 세번" 등의 노래가 유행하였다.[44]

반면 하마나호 북쪽 지역은 침강하여 약 2,800의 토지가 호수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45]

이렇듯이 진원 동남쪽 지역이 융기하는 지각 변동은 호에이 지진쇼와 도난카이, 난카이 지진 시기에서도 똑같이 보이는데, 이는 난카이 해곡 동쪽의 유라시아판과 만나는 지역의 충상단층(낮은 각도의 역단층)의 판 경계형 지진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24] 하지만 호에이나 쇼와 도난카이 지진과는 달리 안세이 도카이 지진 당시 융기했던 스루가만 서쪽의 시미즈, 미호 지역은 반대로 침강하였다.

화산 활동에 미친 영향

안세이 도카이 지진 시기에는 호에이 지진 이후 일어난 호에이 대분화와 달리 후지산에서 대규모 폭발은 없었다고 하나 소규모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슨푸에서 지진 재해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죽을 나눠주는 그림인 "大地震御救粥並町方施米差出、其外諸向地震に付聞書一件・駿府士太夫町町頭、萩原四郎兵衛筆記" 그림에서는 안세이 도카이 지진이 일어난 시각과 거의 같은 때에 후지산 정상에 삿갓 모양의 검은 구름이 드리웠고, 당일 소 한마리만한 크기의 물체가 공중으로 날라가 튀었으며 팔합목 부근에 다수의 산불을 관측했다고 기록했다. 17일 후인 11월 21일 경에는 호에이산에서 완전히 시꺼먼 연기가 올라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지진이 일어난 해의 겨울 후지산의 적설량은 봄철처럼 매우 적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다.[46]

안세이 도카이 지진 직전에는 1852년 니가타야게야마산, 1853년 우스산, 1854년 아소산이 분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진 이후인 1855년엔 다루마에산이, 1856년엔 홋카이도 고마가다케산과 아소산이 분화 활동을 하였다.[47]

지진 규모

가와스미 히로시(河角廣, 1951)의 연구에서는 Mk7로 두고[48] 규모를 대략 M8.4로 추산하였다. 우사미 타쓰오(宇佐美龍夫, 1970)는 추산 규모와 일본 기상청 규모 사이 관계를 통해 역시 규모 M8.4에 가까울 것이라 추론하였으나 이 때에는 모멘트 규모가 존재하지 않았고 1960년 발다비아 지진도 규모를 M8.5로 추산하고 있었다.[49] 수치실험에선 크게 2가지 단층이 파열된 모델로 나왔다. 각 단층파괴의 개별 규모는 모멘트 규모로 Mw8.3, Mw8.1(총 합 Mw8.4)로 추정되었다.[50]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단층 모델은 1944년 쇼와 도난카이 지진의 단층 모델의 길이와 폭을 연장시키고 스루가만 안쪽 서안 지역에 지각변동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와 스루가만 안에 쓰나미를 목격했다는 기록 등을 통해 스루가만 안쪽에 또 다른 단층을 두어 설계했다.[51][52][53][54]

일본 내각부의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 모델검토회"에서 출간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장주기 지진동 보고서"에서는 안세이 난카이 지진을 포함한 안세이 대지진은 전체적인 단층 모델에서 모멘트 규모 Mw8.84로 추정했는데[55] 같은 모델을 이용한 건축연구소에서는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단층 모델에서 지진 모멘트 M0 = 9.02 × 1021N・m, 즉 모멘트 규모 Mw8.6으로 추정하였다.[56]

진원역 문제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안도(安藤, 1975)[24], 이시바시(石橋, 1981)[51] 교수의 단층 모델을 이용해 구한 진원역(각 단층은 사각형 모양)을 그린 지도. 이 외에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 모델 위원회가 검토한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의 진원역도 그려져 있다.[55]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단층모델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973년 안도 마사타카로 판 구조론 성립 이후 1972년 가나모리 히로가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이 난카이 해곡의 판 경계를 따라 일어난 낮은 각도의 역단층의 거대지진이라는 추정[57]을 기반으로 해일의 높이 변동 및 쓰나미와 지진 진동 분포의 차이를 분석하여 가나모리의 1944년 도난카이 지진의 단층 모델에서 해곡 축을 평행하게 이동시켜 엔슈나다에서부터 세로 100km, 가로 230km 길이의 단층 모델을 제시하였다.[24][54]

하지만 1976년 이시바시 가쓰히코는 지금까지 지진을 일으킬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던 판 경계간 지점인 스루가 해곡을 같은 해 하토리 도쿠타로가 수집한 시즈오카현 문서[41]의 지진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안세이 도카이 지진의 해안 지역 융기, 메이지 시기 이후의 지각변동, 진도 분포도 분석, 고지대에서 스루가만에 쓰나미가 들이닥치는 걸 목격했다는 기록[58]을 통해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스루가만도 진원역에 속한다고 결론내리고 스루가 해곡도 판 섭입대 영역으로 거대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53][59] 또한 간바라 지진산 형성 기록에서 진원역이 해안 안쪽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구마노나다-엔슈나다의 진원 단층에 스루가만 안쪽 스루가 해곡 축선에 평행한 단층을 더한 모델을 제시했다.[51][52]

한편 2011년 세노 데쓰조는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의 진원역을 A(도사만), B(기이수도), C(구마노나다), D(엔슈나다), E(스루가만) 5개 영역으로 나눈 후 도카이 쪽 구마노나다는 진원역에 속해 있으나 스루가만은 속하지 않은 '호에이형'과 안세이 도카이 지진처럼 구마노나다는 진원역에 속해지 있지 않으나 스루가만은 속해 있는 '안세이형' 2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두 지진은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주장했다.[60] 이에 이시바시는 세노 교수가 안세이 도카이 지진은 구마노나다 연안의 진도가 비교적 낮다는 주장에 대해 '호에이형'이라고 가정한 1944년 도난카이 지진에서도 구마노나다 서쪽 지역의 진도는 별로 높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며, 안세이 도카이 지진에서 기나이 지역이 느낀 지진 강도나 유노미네온천의 온천수 용출 정지 현상 가능성, 호에이 지진과 안세이 지진 시기 지진 정보 및 문헌 기록의 양, 질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루가만 지역의 진원역 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구마노나다를 진원역에 포함하지 않은 '안세이형' 등의 구분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61]

더 보기

각주

내용주
  1. 진도 분포도를 통한 추정 진앙 좌표로, 이 좌표는 진앙의 원래 정의에 따른 단층 파괴 시작점인 본래의 진원의 진앙이 아니다.
출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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