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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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도(李敏道, 1336년~1395년 4월 6일(음력 3월 9일)[1])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상산 이씨의 시조다.[2]
본래 중국 하간(河間) 사람으로 이공야(李公埜)의 아들이다.[1] 명주(明州)에 내려와 살던 중 고려 사신 성준득(成準得)이 고려로 돌아가는 길에 따라가서 고려로 들어왔는데, 의술과 점술에 재능이 있어 서운부정(書雲副正)과 전의정(典醫正)을 잇따라 지냈다.[1] 1390년(공양왕 2년)에는 중국의 제도를 본따 새로운 의장을 만들었다.[3] 1392년 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해 이등공신(二等功臣)이 되었다.[4] 공조·예조·호조전서를 지내면서 다양한 정책을 건의했으며[5],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졌다. 1395년(태조 4년)에 죽으니 직헌(直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아들은 이진(李蓁: 1379년[6]~1448년 10월 14일(음력 9월 17일)[7])이다.
- 아버지: 이공야(李公埜) - 경원로 총관(慶元路摠官)
- 어머니: 무성군부인 욱씨(鄮城郡夫人 郁氏)
- 아내: 영성택주(寧城宅主) 전씨(田氏)[9]
- 아들: 이진(李蓁)
- 첫번째 며느리: 김선치(金先致)의 딸
- 두번째 며느리: 최안해(崔安海)의 딸
- 손자: 이창윤(李昌胤)
- 손녀 사위: 원구(元矩)
- 아내: 영성택주(寧城宅主) 전씨(田氏)[9]
전기 자료
[편집]- 이복원, 《쌍계유고》 권6, 상산군 이공 묘갈명
- 《태조실록》 권7, 태조 4년(1395년) 3월 9일(임인) 2번째 기사, 이민도의 졸기
각주
[편집]- ↑ 가 나 다 《태조실록》 권7, 태조 4년(1395년) 3월 9일(임인) 2번째 기사, 이민도의 졸기
- ↑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李敏道, 河間府人, 元季避兵東國, 以有功於開國, 封商山君, 命以商州爲本貫。”
- ↑ 《고려사》 권72, 〈여복지〉, 의위, 조회 때의 의장, 공양왕 2년(1390년) 정월
- ↑ 《태조실록》 권1, 태조 1년(1392년) 8월 20일(기사) 2번째 기사
- ↑ 《태조실록》 권2, 태조 1년(1392년) 11월 17일(갑오); 권3, 태조 2년(1393년) 6월 28일(임인); 권6, 태조 3년(1394년) 7월 18일(을묘) 2번째 기사
- ↑ 《세종실록》 권117, 세종 29년(1447년) 9월 7일(병신) 1번째 기사 중 "臣年甫十七, 先臣辭世"을 근거로 함.
- ↑ 《세종실록》 권121, 세종 30년(1448년) 9월 17일(경자) 3번째 기사
- ↑ 이 가계도는 《태조실록》, 《세종실록》 및 이복원, 《쌍계유고》 권6, 商山君李公墓碣銘을 근거로 정리한 것이다.
- ↑ 《태조실록》 권7, 태조 4년(1395년) 3월 9일(임인) 2번째 기사에는 아내의 고향이 상주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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