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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담긴 불국사의 다보탑도 종교적인 목적(불교)으로 건축된 것이다.

(塔) 또는 타워(영어: tower)는 뾰족하게 높이 세운 건축물을 뜻하며 단층 또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다.

어원[편집]

한국어에서 탑은 산스크리트어 (범어) 의 स्तूप (stūpa,스투파) 에서 기원한다. 이는 고대 인도에서 온 말로 돔 형태로 만든 흙 무덤을 지칭했던 말이었으며, 불교가 중국을 거쳐오면서 卒塔婆(졸탑파)로 음차되었고 이것이 줄어 오늘날에 쓰이는 탑파(塔婆), 탑(塔)이 되었다.

영어의 Tower는 고대 영어에서는 torr 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고대 프랑스어 tor 에서 온 것이며 , tor는 라틴어인 turris에서 기초한 것이다.

역사[편집]

동양에서 탑은 불교의 건축물로 원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었다. 이후 부처님의 사리가 여러 지방으로 옮겨지면서 여러 형태의 탑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네모난 기단을 다지고 그 위에 봉분에 해당하는 둥근 구조물을 얹고 다시 그 위에 우산 모양의 상륜부를 얹은 당시 인도의 무덤 형태를 따랐다. 이 구조는 탑이 중국으로 전파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중국의 목조건축양식 혹은 벽돌건축양식과 만나 둥근 구조물과 상륜부는 축소되어 탑의 지붕 위에 장식처럼 얹히게 되었다. 이들을 각각 목탑양식, 전탑양식이라 부른다. 이러한 방식의 탑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고 이 두 양식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양식이 석탑이다.

서양에서 처음에는 바빌론의 탑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지구라트피라미드처럼 종교와 관련된 목적으로 지었다. 그러나 로마시대로 접어들면서 방어 목적으로 각탑을 설치하였고, 중세에는 고딕 건축의 영향을 받아 높고 뾰족하게 지은 교회 건축물이 많았다. 또한, 중세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세운 탑이 많아졌다. 그리고 현대에는 송전탑과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과 전화를 목적으로 한 통신용 탑[1] 등이 등장하였다.

분류[편집]

기능[편집]

1. 인도의 산치 대탑
2.파리의 에펠 탑
3. 캐나다의 CN 타워
4. 이스라엘의 웨스트 뱅크의 감시탑
1.신앙의 매개체로서의 기능

앞서 말했듯이 동양에서 세워진 탑들은 기본적으로 탑의 내부에 사리를 봉안하며 스투파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는데, 이는 석가모니를 기념하고 그를 따르고자하는 사상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 만큼 탑을 건축한다는 것은 불교의 사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불교 이외의 종교에서도 탑이 나타나는데 이슬람교의 건축물인 모스크의 옆에 지어지는 미나렛은 이슬람 율법에서 정한 하루 다섯 번의 기도의 시각을 알려주는(아잔이라고 한다.)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서양의 교회 건축에 쓰인 탑 또한 천상과 지상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서 작용하였다.

2.기념물로서의 기능

종교의 색체가 희미해지는 근대에 들어서게 되면 에펠 탑과 같이 , 건국 등 다양한 이유에서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탑을 짓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에 들어서는 랜드마크로서 건축되기도 했다.

3.정보전달로서의 기능

1번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미나렛이나 서양의 탑 에서는 사람의 목소리, 종과 같은 것 등으로 시각을 알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는 빅 벤과 같은 시계탑 또한 만들어졌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CN 타워와 같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전파를 중계하기 위한 전파탑이 만들어졌다.

4.감시,전망으로서의 기능

성과 같은 군사목적의 건물 옆에 지어진 탑들은 적이 성에 접근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졌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망을 위해서 높은 탑을 짓는 경우도 생겨났다. 공항의 관제탑 역시 이와 같은 목적으로 지어졌다 할 수 있다.

재료[편집]

탑의 건립 시기와 목적, 장소 설립 주체가 다양한 만큼 탑을 구성하는 재료 또한 다양하다. 고대에는 나무, 구운 벽돌, 돌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돌로 건축할 때 대부분은 화강암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때로는 안산암이나 점판암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주로 철이나 콘크리트 따위를 이용한다.

나라별 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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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편집]

한국의 탑은 주로 불교의 영향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목탑형식과 전탑형식의 탑이 중국에서 전래 되었는데 이 두 양식은 한국에서 각각 황룡사 구층목탑, 분황사 모전석탑의 형식으로 현지화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인들은 새로운 탑의 건립 형식인 석탑을 만들었고 그 예가 바로 미륵사지 석탑이다. 이후에 통일신라 시기에는 삼국의 문화가 융합되며 그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기 되는데 이시기에 한국 고유의 석탑양식이 완성되게 되며. 그 대표적인 예가 그 대표적인 예가 불국사 삼층석탑의 탑이다. 석탑양식은 고려까지 계속 이어졌고 고려 중기 이후 의 영향으로 경천사지 십층석탑 등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사찰의 건축물로서 지어졌던 탑도 있지만 민간에서 단순하게 주변에 있던 돌을 쌓아 올려 만든 돌탑도 있다. 소박하게 만들어진 이런 돌탑들은 토속신앙과 관련이 깊어 서낭신을 모시는 서낭당과 가까이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기복의 용도로 이용되었다.

중국[편집]

应县木塔, 응현목탑

중국에서 불탑의 건립은 삼국시대(3세기 경)에 시작된다. 비단길을 통해서 서역으로부터 불교를 전래받은 중국은 기존의 누각 건축으로 인도의 스투파를 재현하였으며 인도와 다른 방식으로 탑을 건립하였다. 이와 같은 탑의 양식은 이후 불교의 전래와 함께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그러나 인도의 스투파와 같이 사리를 봉납하는 기능은 지속되었다. 남북조시대에는 윈강 석굴, 둔황 석굴과 같은 곳에서 불교가 융성했으며 탑 역시 이 지역에서 건립되었다. 이후 수나라 때 불교가 국교화 되고 당나라시기에 널리 퍼지게 되면서 불탑의 건립이 중국 전역에 걸처서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불탑의 건립은 오대 십국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지속되었다. 이후 송나라가 세워지고 중국의 경제력이 강화되었다. 특히 금나라에게 중국 북부를 뺏기면서 강남지역의 개발이 이루어지는데 이와 같이 절의 건립도 크게 일어나 탑 역시 많이 건축되엇다. 이후 몽골에 의해 정복당한 후 세워진 원나라시기에는 불교가 그리 성행하지 못해 탑의 건립도 부진했다. 명나라가 세워지면서 탑의 건립이 다시 일어나나 명,청시기에는 이전의 송보다 미진했다.

일본[편집]

호류사의 오층목탑 , 일본 최고(最古)의 목탑

일본은 나무가 많은 산지지형이었으며 외세의 침략이 드믐 등 여러요인에 의해서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형식이 지속해서 유지되었다. 대게 탑은 삼층과 오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의 형태는 사각형의 누각형태였다. 탑의 가운데에는 나무기둥인 심주가 있고 심주의 아래에 사리를 묻었다. 이러한 탑의 건립은 불교를 받아들인 6세기부터 시작하여 절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감에 따라서 점차 융성해져 센고쿠 시대와 같은 후세에도 계속해서 탑의 건립이 시도되었다. 목탑의 특성상 화마와 전쟁,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데 계속적으로 증축과 복원을 통해서 탑을 유지시켰다. 이러한 삼층, 오층목탑 이외에도 돌로만든 오륜탑, 각이 없는 무봉탑 등 다양한 형태의 탑이 건립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방송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