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토 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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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토 후국
Principato di Taranto

1088년1465년
수도 타란토
정치
정부 형태 군주국
역사
역사  
 • 설립 1088년
 • 이사벨라 디 타란토의 사망 1465년 3월 30일

기타
국교 로마 가톨릭교회

타란토 후국(이탈리아어: Principato di Taranto)은 풀리아 공국 계승 문제 후, 로베르 기스카르의 아들 로제 보르사보에몽 1세 사이에 평화 조약의 일부로서, 보에몽 1세가 1088년 이탈리아 남부에 세운 국가이다.

타란토가 후국의 수도가 되면서, 풀리아 지역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후국은 377년간 역사속에 존재했으며, 가끔은 강력하던 때도 있었고 시칠리아 왕국(시간이 흘러서는 나폴리 왕국)의 거의 독립적인 봉건 영주국일때도 있었지만, 어쩔 때는 작위만이 남아서 자주 왕위의 후계자나 여왕의 남편에게 주기도 하였다. 앙주 가문 시기에는 분리되어, 타란토가 두라초 가문(Durazzo) 에게 있었을 때도 있었다(1394–1463).

페르디난도 1세 디 나폴리는 그의 아내 이사벨라 디 타란토가 사망하자, 타란토 후국을 나폴리 왕국에 통합시켰다. 타란토 후국의 역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나폴리 군주는 계속해서 그들의 아들들에게 타란토 후작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었으며, 그 첫 번째는 이사벨라의 장자이자 미래의 왕이 되는 알폰소 2세 디 나폴리이다.

백작[편집]

공작[편집]

오트빌 (알타빌라) 가문[편집]

  • 1088 - 보에몽 1세 (1054–1111) : 이후 안티오크십자군 국가의 대공
  • 1111 - 보에몽 2세 (1108, 1130) : 안티오크의 대공
  • 1128 - 로제 2세 (1093–1154) : 풀리아 공작이자 이탈리아 남부의 통일한 시칠리아의 군주
  • 1132 - 탄크레드 : 로제 2세의 아들이며, 아버지에게서 임명받은 바리의 대공
  • 1138 - 기욤 1세 : 로제 2세의 아들로, 시간이 흘러 시칠리아의 군주이며, 그의 형제인 탄크레드가 사망하면서 타란토 대공이 된다
  • 1144 - 시몽 : 로제 2세의 아들로, 그의 형제 기욤이 카푸아의 대공이자 풀리아의 공작이 되면서, 타란토 대공이 되었다
  • 1157 - 기욤 2세 : 이후 시칠리아의 군주
  • 1189 - 시칠리아 군주 탄크레드
  • 1194 - 기욤 3세 : 시칠리아의 군주(폐위됨)이자 레체의 백작

호엔슈타우펜 (스베비아) 가문[편집]

안조가[편집]

  • 1266 - 카를로 1세 (1227–1285) : 만프레디를 몰아내고 교황에 의해 시칠리아의 군주가 되었다
  • 1285 - 카를 2세 (1248–1309) : 카를로 1세의 아들이며, 나폴리의 군주이다.
  • 1294 - 필리포 1세 (1278–1332) : 카를로 2세의 아들이며, 명목상 라틴 제국 황제
  • 1332 - 로베르토 당주 (1299–1364) : 필리포 1세의 아들
  • 1346 - 루이지 당주 (1308–1362) : 필리포 1세의 아들이며, 동시에 나폴리의 군주
  • 1364 - 필리포 2세 (1329–1374) : 필리포 1세의 아들이며, 명목상 라틴 제국 황제
    • 1356 - 필리포 3세 : 필리포 2세의 아들이며,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고 작위는 그의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보 (델 발초) 가문[편집]

  • 1374 - 자크 데 보 : 필리프 2세의 조카, 명목상 라틴 제국의 황제;

벨프 또는 브라운슈바이크k (에스테 델 구엘포) 가문[편집]

오르시니 가문[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