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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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관계(영어: Sino-American relations, 중국어: 中美关系)는 미국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관계를 부르는 말이다.

외교사[편집]

청나라[편집]

1784년 2월에 이미, 미국상인의 중국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즉, 1784년 2월 뉴욕항을 출항한 중국황제호가 성조기를 달고 8월에 광동항에 입항하였다. 그 후 미국상인들은 모피, 인삼 등을 수출하고 중국산 차, 견직물,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하여 많은 이익을 보는 등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미국상인들의 대(對)중국무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1]

광동항에 도착한 미국인들은, 양행(洋行), 즉, 외국상인들에게 황제가 독점권을 부여한 상관(商館)을 통해서 교역을 행하고자 하는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대우받았다. 교역은 수익성이 좋았지만, 외국 상인들은 생명, 재산이나, 교역권, 주거권에 대해서 보장이 없었던 만큼,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여 있었다. 영국인, 미국인 등은 이로서 고통받았지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역 봉쇄를 야기할 것이 두려워, 누구도 이를 참견하려 하지 않았다. 선장 존 헨레이가 이끄는 콘그레스 호(號)가 1819년 11월 3일, 네이링딩 섬에 도착함으로써, 이 배는 미국 해군 선박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이 되었다. 전함의 도착에 중국 관원들이 놀라자, 선장은 주강에 진입하지 말 것을 명했다. 그렇지만 미국 공사(公使)가 아무런 제지도 없을 것이라는 조언에 따라, 헨레이 선장은 대담하게도 그 배에 보급품을 채우기 위해서 진입하였다. 1830년 1월, 윌리엄 핀치(William B. Finch) 중령이 이끄는 슬로프형(型) 포함(砲艦) 빈센 호(號)는 미국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선박이었는데, 광동에 2주를 넘게 정박했었다. 그곳에서 미국 상인들은 핀치 중령에게 매년 해군이 방문하여 중국 세관을 향해 경의를 표하는 행동을 보여고 유화적인 성향을 나타내 줄 것을 조언하였다. 핀치 중령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해군성에 보고하였다.

중화민국[편집]

1911년 건국된 중화민국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양국은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연합국 진영으로 참가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강력한 우방이 되었다. 국공 내전 기간에는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 및 불간섭 원칙을 고수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중국 국민당을 지원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며, 연이어 터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불안해진 미국타이완으로 건너간 중화민국중국 국민당을 전폭적으로 원조했다. 1971년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 찬반 투표에서 중화민국 축출에 반대했으나, 1979년 1월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같이 보기[편집]

  1. 박일훈(朴日勳), 〈조미수호통상조약연결까지의 대미관연구(朝美修好通商條約練結까지의 對美觀硏究)〉 《부산여자전문대학 논문집 제3집》(1981년) 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