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메리카 식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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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초기 아메리카 정복

유럽아메리카 정복은 149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캐나다의 일부 지역은 기원후 1,000년 경에 이미 바이킹의 발길이 닿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탐험과 정복에 나선 것은 스페인포르투갈인들이었다. 1492년 레콩키스타를 끝낸 직후, 토르데시야스 조약 통해 두 왕국은 유럽 외의 모든 영토를 둘로 쪼개는 권리를 교황에게서 인정받게 되었다. 경도선을 따라 대서양과 현대의 브라질 동부를 가른 이 조약과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의 태평양 발견(1513)으로 스페인은 아메리카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성립하게 된다. 스페인 정복자(콩키스타도르) 에르난 코르테스아스텍을, 프란시스코 피사로잉카 제국을 정복했다. 그 결과, 16세기 중반, 스페인 왕국은 남아메리카 서부의 광대한 영토, 중앙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남부와 일찍이 확보했던 카리브 해를 경영하게 되었다. 같은 때에 포르투갈은 동부 남아메리카를 차지하며 이를 브라질이라 이름붙였다.

스페인 제국 및 포르투갈 제국(16세기)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곧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거부하며 아메리카 정복에 나섰다. 잉글랜드프랑스는 16세기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잉글랜드, 프랑스는 물론 네덜란드 역시 영속적인 식민지를 건설하게 된다. 이러한 식민지는 스페인에 이미 정복되었거나 질병으로 인구가 몰살된 카리브 해, 플로리다 북쪽의 스페인에 정복되지 않은 북아메리카 일부에 자리했다.

북아메리카의 초기 유럽 식민지는 스페인령 플로리다, 스페인령 뉴멕시코, 잉글랜드령 버지니아(북대서양의 소머스 제도를 포함)와 뉴잉글랜드, 프랑스령 아카디아캐나다, 스웨덴령 뉴스웨덴, 네덜란드령 뉴네덜란드 등을 아우른다. 18세기에는 덴마크-노르웨이 제국이 그린란드의 식민지를 회복했고 러시아 제국알래스카를 획득했다.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아메리카 식민화로 이익을 얻게 되자 영토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식민지 거주자들은 이웃 식민지, 원주민, 해적 등의 공격 위협에 시달렸다.

초기 국가 지원 식민지 개척자[편집]

유럽인의 아메리카 활동의 효시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였다. 그의 원 계획은 인도중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지만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를 뒤이은 자들로는 잉글랜드의 후원을 받아 뉴펀들랜드에 닿은 존 캐벗, 브라질을 발견하고 포르투갈의 영유권을 주장한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역시 포르투갈을 위해 일했으며 아메리카를 이제까지 발견된 바 없는 새로운 대륙으로 확정지은 아메리고 베스푸치 등이 있었다. 지리학자들은 여전히 베스푸치의 라틴어 이름을 두 대륙을 합쳐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프랑스의 후원을 받은 조반니 다 베라차노, 포르투갈의 후원을 받아 뉴펀들랜드를 탐험한 조앙 바스 코르테-헤알과 캐나다의 사뮈엘 드 샹플랭(1567-1635) 역시 유럽인의 지리 인식을 크게 넓혔다. 1513년,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태평양 서안을 따라 파나마 지협을 건넜고, 발보아는 태평양과 그 해안이 닿는 모든 땅을 스페인 왕실령으로 선포했다. 쿠바의 선단 역시 유카탄을 발견했다.

이민자[편집]

초기 이민자들은 주로 개척자들로 이루어졌다.

종교적 이민자[편집]
강제 이민자[편집]
경제적 이민자[편집]

원주민에의 영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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