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군부인 송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상산군부인 송씨(君夫人宋氏, 1753년 10월 15일 ~ 1801년 4월 4일)은 조선후기의 왕족이자 천주교 순교자로,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이인(恩彦君 李姻)의 정실 부인이다.[1] 천주교에 귀의하여[2] 마리아 라는 영세명을 얻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천이다.

생애[편집]

진천송씨 참봉 송낙휴의 딸이다.

그때그때 환란을 당하여서도 한번도 근심스러운 빛을 보이지 않았고 탄식하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집안일을 보살펴 마땅하게 처리했다. 뒤에 그의 묘비명에는 은언군이 어려운 일을 당하여서도 항상 바로 처할 수 있었음에는 부인의 공이 컸다고 평가했다.[1] 맏며느리 군부인 신씨와 함께 천주교에 귀의하여[2] 나라 신부 주문모로부터 마리아 라는 영세명을 얻기도 하였다. 한성에 남아있던 그는 천주교의 여성회장이던 강완숙(姜完淑)의 인도로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접하고 그로부터 영세를 받고, 며느리와 함께 각각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따라서 그를 송마리아라고도 부른다.

후일 은언군이 사사된 뒤, 경기도 양주군 신혈면(神穴面) 진관리(津寬里, 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 산 78-1번지인 북한산의 지산 이말산(莉茉山) 유좌(酉坐) 언덕, 은언군의 묘소 오른쪽에 합장되었다.[3] 그러나 은언군과 본부인 송씨의 묘는 6.25 전쟁 중 실전되었다. 한편 그의 묘비석은 후일 1989년 9월26일 후손 우용이 천주교에 기증, 절두산으로 이송되었다.

1801년 천주교를 신봉한다는 것이 밝혀져 사사당했다. 1849년 은언군의 손자 철종(元範)이 즉위하자 신원되었다.[1]

사후[편집]

1914년에 와서 은언군 묘소 주변에 개인의 묘소들이 많이 설치되었는데, 1914년 4월 1일 은언군의 후손인 이완용은 은언군 묘소 주변의 땅을 타인에게 매각하였다.

은언군과 본부인인 상산군부인 송씨의 묘소는 6.25 전쟁 중 실전되었다. 은언군 묘소 홍살문과 사당은 1951년 1.4 후퇴 당시 영국군이 숙영하면서 묘소 홍살문과 사당을 뜯어서 땔감으로 써 사라지게 되었다. 묘소 근처 서울시 은평구 진관외동 145번지 주변에 세워진 신도비각 역시 실전되었다. 비석은 1989년 9월 7대손 이우용이 기증, 절두산 천주교 성지로 옮겨졌다.

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 맛있는 정보! 신선한 뉴스! - 서울신문
  3. 은언군 신도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