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소련 불가침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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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이오시프 스탈린요하임 폰 리벤트로프크렘린에서 조약을 서명한 후 악수하는 모습
서명일1939년 8월 23일
서명장소모스크바 크렘린
서명자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실효일1949년 7월 30일 (원래 계획)
1941년 6월 22일 (실효)
서명국나치 독일의 기 나치 독일
소련의 기 소련
언어독일어, 러시아어
조약문에 서명하고 있는 소련 외무부 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서 있는 사람 중 왼쪽에서 셋째가 독일 외무부 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넷째가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가는 길
베르사유 조약1919년
생제르맹 조약1919년
소련-폴란드 전쟁1919-1920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1919-1920년
트리아농 조약1920년
라팔로 조약1920년
프랑스-폴란드 동맹1921년
로마 진군1922년
코르푸섬 사건1923년
루르 점령1923-1925년
나의 투쟁1925년
제2차 이탈리아-사누시 전쟁1923-1932년
도스 플랜1924년
로카르노 조약1925년
영 플랜1929년
대공황1929년
만주 사변1931년
만주국 대분란전1931-1942년
제1차 상하이 사변1932년
제네바 회담1932-1934년
제1차 허베이성 전쟁1933년
러허 사변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장악1933년
탕구 협정1933년
이탈리아-소련 협정1933년
내몽골 작전1933-1936년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1934년
프랑스-소련 상호원조조약1935년
소련-체코슬로바키아 상호원조조약1935년
허메이 협정1935년
영독 해군협정1935년
12월 9일 운동1935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935-1936년
라인란트 진주1936년
팔레스타인 아랍 봉기1936-1939년
스페인 내전1936-1939년
독이 협정1936년
방공 협정1936년
쑤이위안 작전1936년
시안 사건1936년
루거우차오 사건1937년
중일 전쟁1937-1945년
USS 파나이 사건1937년
안슐루스1938년 3월
1938년 폴란드의 리투아니아 최후통첩1938년 3월
5월 위기1938년 5월
하산호 전투1938년 7-8월
블레트 협정1938년 8월
비선전포고 독일-체코슬로바키아 전쟁1938년 9월
뮌헨 협정1938년 9월
제1차 빈 중재1938년 11월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1939년 3월
헝가리의 카르파티아 우크라이나 침공1939년 3월
1939년 독일의 리투아니아 최후통첩1939년 3월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1939년 3월
스페인 내전의 최후 공세1939년 3-4월
단치히 위기1939년 3-8월
영국-폴란드 군사 동맹1939년 3월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1939년 4월
소련-프랑스-영국 협상1939년 4-8월
강철 조약1939년 5월
할힌골 전투1939년 5월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독일어: Deutsch-sowjetischer Nichtangriffspakt 도이치-소비에티셔 니흐탄기프스파크트[*], 러시아어: Договор о ненападении между Германией и Советским Союзом 도고보르 오 네나파데니 메시두 게르마니예이 이 소베츠킴 소유좀[*], 영어: Treaty of Non-Aggression between Germany and the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Hitler–Stalin Pact, Nazi–Soviet Pact, Nazi–Soviet Alliance, 문화어: 쏘도 불가침 조약)은 1939년 8월 23일에 나치 독일소련이 상호 불가침을 목적으로 조인한 조약이다. 조약에 서명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영어: Molotov–Ribbentrop Pact)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2년 뒤인 1941년에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 전쟁이 벌어져 이 조약은 파기되었다.

이 조약의 체결은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를 증오한 나치 독일히틀러는 독일에서 집권하자마자 독일 국회 의사당 방화 사건독일 공산당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독일 공산당을 불법화하여 강제로 해산시키고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불태우는 등 자국 내 좌익공산주의 세력들을 탄압했고 소비에트 연방나치 독일을 소비에트 연방을 크게 위협하는 세력으로 생각하여 서로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조약 체결국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다.
  2. 조약 체결국의 한 쪽이 제 3국의 공격을 받으면 상대방 조약 체결국은 조약을 체결한 나라를 공격한 제3국을 일절 원조하지 않는다.
  3. 조약 체결국 쌍방은 상대를 적대하는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
  4. 조약 체결국 사이에 생긴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독일과 소련의 협력[편집]

위의 지도는 조약 체결 내용(지도1)과 실제 결과(지도2)를 비교한 것이다. 조약 체결 당시에는 리투아니아가 독일의 영향권으로 설정되어 있고 루마니아의 분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서방 연합국은 소련과 연합하여 히틀러나치 독일[1] 을 제지하려 했고 히틀러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처럼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에서 전쟁하는 사태를 두려워하여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를 소련으로 보내 1939년 8월 23일에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소련이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이유는 스탈린이 믿을 수 없는 서방 연합국과 동맹을 맺기보다는 히틀러와 손을 잡는 게 소련에 더 이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 조약에서 중앙 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다.[1][2] 폴란드 동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루마니아 북부의 베사라비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2] 1939년 9월 두 번째 밀약에서 리투아니아도 소련의 몫으로 추가되었다.[3]

1939년 9월 1일에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여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후에 독일의 요청으로 1939년 9월 17일에 폴란드를 침공[4]:43[5] 한 소련군은 폴란드의 동부 지역을 점령하고 1940년 6월에 발트해의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세 나라와 루마니아부코비나베사라비아를 점령하여 소련의 영토로 만들었다.

그러나 독소 불가침 조약은 1941년 6월 22일에 독일이 이를 위반하고 소련을 침공해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시작하며 파기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Encyclopedia Britanica》〈German-Soviet Nonaggression Pact〉, 2008
  2. Text of the Nazi-Soviet Non-Aggression Pact Archived 2014년 11월 14일 - 웨이백 머신, executed August 23, 1939
  3. Christie, Kenneth, 《Historical Injustice and Democratic Transition in Eastern Asia and Northern Europe: Ghosts at the Table of Democracy》, RoutledgeCurzon, 2002, ISBN 0-7007-1599-1
  4. Roberts, Geoffrey (2006). 《Stalin's Wars: From World War to Cold War, 1939–1953》. Yale University Press. ISBN 0-300-11204-1. 
  5. Sanford, George (2005). 《Katyn and the Soviet Massacre Of 1940: Truth, Justice And Memory》. London, New York: Routledge. ISBN 0-415-33873-5.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