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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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
南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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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국가원수 겸 국무원 수상 예하
현역 인민군 계급 국방참모교육비서관 직무대리
임기 1948년 10월 16일 ~ 1950년 8월 18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북조선 문교성 부상 직무대행 서리
임기 1953년 2월 1일 ~ 1953년 3월 14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북조선 국가원수 겸 국무원 수상 예하
현역 인민군 계급 국방보좌관 직무대리
임기 1953년 3월 14일 ~ 1953년 3월 31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북조선 외무장관
임기 1953년 3월 31일 ~ 1953년 4월 11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김두봉
수상 김일성
북조선 내각 외무상
임기 1953년 4월 11일 ~ 1967년 4월 30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김두봉
김원봉
최용건
수상 김일성
북조선 국가원수 겸 국무원 수상 예하
국방보좌관 직무대리
임기 1967년 4월 30일 ~ 1968년 11월 30일
주석 김일성
부주석 최용건
수상 김일성
신상정보
출생일 1913년 6월 5일
출생지 러시아 제국 극동지구 우수리스크주 이바노브스키면 카자케비체보(Казакевичево) 리[1]
사망일 1976년 3월 7일(1976-03-07) (62세)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비명횡사
경력 조선로동당 대표최고전임위원
정당 조선로동당
신체정보
신장 182cm
군사 경력
군복무 소련군
조선인민군 륙군
복무기간 1940년 1월 31일 ~ 1948년 8월 20일 (소련군 육군)
1948년 9월 9일 ~ 1953년 9월 9일 (조선인민군 륙군)
최종계급 소련군 지상군 대위
조선인민군 륙군 상장
지휘 조선인민군 참모장(1948.9.9~1948.10.16)
조선인민군 총참모장(1950.8.18~1953.2.1)
조선인민군 총합참모본부 예하 지상군사령관(1953.3.14~1953.4.11)
근무 조선인민군 지상군 총본부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베를린 공방전
한국 전쟁

남일(南日, 1913년 6월 5일 ~ 1976년 3월 7일)은 소련 육군 장교 군인을 지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상군 장군 군인 겸 정치가이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요직에 앉아 수많은 활동을 했으나 1960년대 한국 전쟁의 책임을 물어 숙청되었다.

생애[편집]

청년 시절[편집]

러시아 제국 극동지구 우수리스크주 이바노브스키면 카자케비체보(Казакевичево) 리에서[2]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일가족과 함께 러시아 제국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만 3세 시절(1916년)에 일가족과 함께 일제 강점기 조선국으로 잠시 입국하여 한때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경원과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대동과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강진과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양과 일제 강점기 함경북도 청진을 떠돌아다니며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아직 6세 시절을 전후한 시기에 일가족과 함께 함경북도 청진을 떠나 출국하였으며 소비에트 우즈베키스탄에 재이주하여 아직 소련 땅이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 사범대학교 인민초등교육학과를 나온 그는 소련군에 입대해 스탈린그라드 전투베를린 공방전 등 독일전에도 참전했으며 대위로까지 승진했다. 이 때 남일의 계급과 보직이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소련군 시절 최종 계급은 소련 육군 대위이면서 이 계급으로 담당한 보직이 사단 참모장 대리 직책이었다. 스탈린이 1946년 김일성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한반도인 후손 출신자의 한 명으로 북한에 들어왔다.

2차 대전 종전 이후[편집]

2차 대전 종전 후 1948년 소련군을 제대하고 북조선 땅의 친가 조상들 고향이었던 평안남도 대동군 향리로 돌아갔다. 이때 소련군과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하자 여기에 참여하여 조선인민군 참모장을 거쳤으며 한국 전쟁 때에는 조선인민군 예하 육군사령관, 그리고 전쟁 후반에는 외무상까지 맡았으며 한국전쟁 중 휴전 관련 협상 때는 항상 참여하여 외교 능력도 어느 정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다(1952년 이 때 당시 백선엽 장군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러나 소련파와 연안파의 반란 모의 이후 그의 능력과 출신 때문에 그를 두려워 한 김일성이 그를 숙청하였다.

1953년 당시에도 신장은 182cm이고 굉장한 미남이라 알려진 남일은 1953년 한국휴전협정을 할 때 북측 인사들 중에서 혼자만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직후 그는 1953년 9월 9일 조선인민군 지상군 상장 예편하였다.

최후와 사망[편집]

1976년 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 위키미디어 공용에 남일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각주[편집]

전임
강건
제2대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1950년 8월 18일 ~ 1953년 2월 1일
후임
김광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문교성 부상 직무대행 서리
1953년 2월 1일 ~ 1953년 3월 14일
전임
박헌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외무상
1953년 4월 11일 ~ 1967년 4월 30일
후임
이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