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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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
南日
Nam il sg28917.jpg
생애 1913년 6월 5일 ~ 1976년 3월 7일 (64세)
출생지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청진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복무 소련군
조선인민군 육군
복무 기간 1940년 ~ 1948년 8월 (소련군)
1948년 ~ 1953년 (조선인민군 육군)
최종 계급 소련군 대위
조선인민군 육군 대장
근무 소련군
조선인민군 육군
지휘 조선인민군 참모장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조선인민군 육군사령관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베를린 공방전
한국 전쟁

남일(南日, 1913년 6월 5일 ~ 1976년 3월 7일)은 소련의 군인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겸 정치가이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요직에 앉아 수많은 활동을 했으나 1960년대 한국 전쟁의 책임을 물어 숙청되었다.

생애[편집]

일제 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향리를 떠난 이후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사회주의 공화국 극동 대자치주 프리모르스키 지방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성장하였지만 그의 어렸을 때 일화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군으로 참전하여 스탈린그라드 전투베를린 공방전에서 소련군으로 크게 활약하여 훈장을 받았다. 이 때 남일의 계급과 보직이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계급은 소련군 대위이면서 이 계급으로 담당한 보직이 사단장이였다.

또한 남일은 굉장한 미남으로 알려졌으며 한국휴전협정을 할 때 북측 인사들 중에서 혼자만 눈에 띄게 잘생긴 외모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종전 이후[편집]

종전 후 소련군을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때 소련군과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하자 여기에 참여하여 조선인민군 참모장을 거쳤으며 한국 전쟁 때에는 조선인민군 육군사령관, 그리고 전쟁 후반에는 외무상까지 맡았으며 한국전쟁 중 휴전 협상 때는 항상 참여하여 외교 능력도 어느 정도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다.(이 때 백선엽을 만났다) 그러나 소련파와 연안파의 반란 모의 이후 그의 능력과 출신 때문에 그를 두려워 한 김일성이 그를 숙청하였다.

1976년 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같이 보기[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문교성 부상
? ~ 1953년 4월
전임
박헌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외무상
1953년 4월 ~ 1967년
후임
이상조
전임
강건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1950년 - 1953년
후임
김광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