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크라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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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4617925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8월 19일 (수) 16:26 판
요한 크루이프
개인 정보
본명 Hendrik Johannes Cruijff
출생일 1947년 4월 25일(1947-04-25)(77세)
출생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80cm
포지션 은퇴 (과거 공격수)
구단 정보
현 소속팀 아약스 (기술 고문)
청소년 구단 기록
1959-1964 아약스
구단 기록*
연도 구단 출전 (득점)
1964-1973
1973-1978
1979-1980
1980-1981
1981
1981-1983
1983-1984
아약스
바르셀로나
로스앤젤레스 아즈텍스
워싱턴 디플로매츠
레반테
아약스
페예노르트
2400(190)
1430(48)
270(14)
320(12)
130(3)
360(14)
330(11)
국가대표팀 기록
1967-1978 네덜란드 480(33)
지도자 기록
1985-1988
1988-1996
2009-2013
아약스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03년 1월 1일 기준임.

헨드릭 요하네스 크루이프 (네덜란드어: Hendrik Johannes Cruijff 이 소리의 정보듣기 , 1947년 4월 25일 ~ )는 네덜란드의 축구인이다. 스페인의 축구 클럽 FC 바르셀로나의 명예 의장직도 맡고 있다. 선수로서는 1971년, 1973년, 1974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하였고,[1] 감독으로서는 토털 사커 전술을 도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FIFA 100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의 아들은 전직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 선수인 요르디 크루이프 (Jordi Cruijff)이다.

선수 생활

크루이프는 그가 10살이 되던 해에 AFC 아약스의 유소년 클럽에 들어갔다. 1959년 그는 FC 흐로닝언을 상대로 에레디비시 데뷔전을 가졌는데, 3:1로 패한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였다. 그 해에 아약스는 창단 이래 최하기록인 13위를 기록하였다. 크루이프는 1965~66 시즌부터 진가를 발휘하였는데, 10월 24일 AFC DWS전에서 2골을 넣은 이후로 주전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 시즌에 그는 23경기에서 25골을 넣었고, 팀은 리그 우승을 이루었다.

1966~67 시즌에, 아약스는 다시 리그 우승을 하였고, KNVB컵을 우승함으로써 더블을 이루었다. 크루이프는 그 시즌에 33골을 넣어 득점왕이 되었다. 1967~68 시즌 역시 아약스가 우승하였고, 크루이프는 ‘올해의 네덜란드 축구 선수’에 뽑혔다. 1969년 5월 28일, 그는 유러피언컵 결승에도 출전하였으나, AC 밀란에게 4:1로 패하고 말았다.

1969~70 시즌 아약스는 다시 더블을 이루었다. 그러나 1970~71 시즌 초반, 크루이프는 부상에 걸렸고, 오랜 시간 동안 결장하였다. 그는 10월 30일 다시 경기를 뛰었는데, 이때의 등번호는 9번이 아닌 14번이었다. 선발 출전 선수가 11번 이상의 등번호를 다는 것은 그당시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그는 이 등번호를 고수하여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14번을 달게 되었다.

아약스는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유러피언컵을 연달아 우승하였다. 그러나 아약스는 크루이프를 FC 바르셀로나로 팔았는데, 당시 이적료는 600만 길더(약 200만 달러)였다. 그 액수가 엄청나서 스페인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하였는데, 결국 바르셀로나는 그를 농기계의 일부로 등록해 데려왔다. 그는 1973년 8월 19일 아약스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뛰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다.

그는 곧 바르셀로나의 팬들에게 사랑받았는데, 그의 아들에게 카탈루냐 이름인 요르디(Jordi)란 이름을 붙여줌으로서 더 사랑받았다.(요르디 크루이프는 현재 몰타의 발레타 F.C.에서 뛰고 있다.) 크루이프는 이적한 바로 그 해에 우승을 맛보았는데, 팀은 1960년 이후 첫 리그 우승이었다. 그리고 크루이프는 동시에 발롱도르도 수상하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는데, 1973년과 1974년에 다시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 그는 은퇴하였다. 후에 크루이프는 사기를 당해 막대한 양의 돈을 잃고 말았는데, 그 후 1979년 그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아즈텍스에서 현역으로 복귀하였다. 그 해에 그는 북미 축구 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한시즌 뒤 그는 워싱턴 디플로매츠로 이적하였는데, 모든 경기를 소화하고 1981년 팀을 떠났다.

1981년 그는 잠시 레반테 UD와 계약하였고, 다시 아약스로 돌아왔다. 그는 아약스에서 리그 우승을 2번 더 경험하였고, 36세가 되던 해 페예노르트로 이적하였다. 그는 그 시즌을 마친 후 은퇴하였다.

그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기도 하였는데, 48경기에 나와 33골을 넣었다. 그는 1974년 월드컵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크루이프 턴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결승전에서 프란츠 베켄바워, 볼프강 오베라트, 울리 회네스 등이 있는 서독을 만났는데, 크루이프가 반칙을 당해 얻은 페널티 킥을 요한 네이스컨스가 넣어 1:0으로 앞서나가다 2골을 먹혀 2:1로 아쉽게 패하였다.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에는 가족이 납치당하는 일을 당하는 바람에 가족을 남겨두고 네덜란드를 떠날 수 없어서 참가하지 못하였으나, 세간에는 크루이프가 군부 독재 정권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불참한 것으로 와전되었다. 크루이프는 이 사실을 그 동안 숨겨왔다가 2008년이 되어서야 카탈루냐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밝혔다.[2]

감독 생활

크루이프는 은퇴후 1985년 아약스의 감독이 되었다. 그는 토털 사커 전술을 사용하였는데, 두명의 윙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 전술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1987년 유러피언컵 위너스컵에서 우승하기도 하였다. 아약스는 이 전술을 계속 사용해 1995년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고, 이 전술의 지지자였던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 감독 테리 버나블스는 UEFA 유로 1996 준결승전에서 이 전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1988년 그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이 되었는데, 그는 주제프 과르디올라, 호마리우, 게오르게 하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로날트 쿠만과 같은 선수들을 영입하였다. 크루이프의 지도 하에,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리가 4번 우승, 1990년 코파 델 레이 우승, 1992년 유로피언 슈퍼컵 우승과 3번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등을 이루어냈다. 그는 총 11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성공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두시즌에, 크루이프는 어느 트로피도 들어올리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팀을 떠났다.

비록 그는 바르셀로나를 떠났으나, 그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클럽에 큰 영향을 주었고, 성인 클럽 역시 영향을 받아 현재까지 윙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2008년 2월 20일 아약스의 기술 이사가 되었는데, 감독 마르코 판 바스턴과의 의견차가 심해 그 해 3월 7일 자리를 떠났다.

2009년 11월 카탈루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3]

그는 담배 애호가이기도 하였는데, 1991년에는 혈관 이식 수술을 받았고 담배를 끊어야만 하였다. 그 후 그는 카탈루냐 보건부의 금연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하였다.[4]

수상 경력

선수

감독

개인

명언

  • "이탈리아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확실히 그들에게 질 수도 있다." ("Italianen kunnen niet van ons winnen, maar we kunnen wel van ze verliezen.")
  • "공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 ("Zonder de bal kun je niet winnen.")
  • "스피드라는 것은 종종 통찰력에 혼동을 가져온다. 내가 나머지 사람들보다 먼저 뛰기 시작하면 내가 빠른 것처럼 보인다." ("Snelheid wordt vaak verward met inzicht. Als ik eerder ga lopen dan de rest, lijk ik sneller.")
  • "나는 실수를 하기 전까지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Voordat ik een fout maak, maak ik die fout niet.")
  • "모든 불리함에는 각각의 유리함이 있다." ("Elk nadeel heeft z'n voordeel.")
  •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편보다 한 골을 더 넣어야 한다." ("Om te winnen moet je 1 goal meer scoren dan je tegenstander")
  • 요한 크루이프의 가장 유명한 명언: "찬스라는 것은 논리적(logical)이다." ("Toeval is logisch.")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는 패스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 "에르난 크레스포는 2인자로 썩기엔 너무나 아까운 재원이다. 특히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밑에서 2인자이기엔 더더욱 그렇다. 만약 내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감독이였더라면 1998년 FIFA 월드컵때 이미 에르난 크레스포를 주전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아르헨티나는 우승했을 것이다. 에르난 크레스포는 1인자를 능가하는 2인자였다."
  • "우리도 월드컵을 개최하자!"

주석

바깥 고리

틀:UEFA 창립 50주년 기념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