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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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회네스
Hoeness BMK.jpg
개인 정보
국적 독일 독일
출생 1952년 1월 5일(1952-01-05) (62세)

서독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울름

1.81m
포지션 미드필더 / 공격수
클럽 정보
현 소속팀 독일 FC 바이에른 뮌헨 (회장)
청소년 클럽
1959–1965
1965–1970
VfB 울름
SSV 울름 1846
클럽1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70–1979
1978–1979
FC 바이에른 뮌헨
1. FC 뉘른베르크 (임대)
239 (86)
011 0(0)
국가대표팀
1968–1970
1969–1972
1971–1973
1972–1976
서독 서독 청소년 대표
서독 서독 아마추어
서독 서독 U-23
서독 서독
017 0(5)
022 0(3)
002 0(1)
035 0(5)

1성인 클럽 출장수와 골은 정규 리그 기록만 세며,
기준입니다.
2국가대표팀의 출장수와 골은
기준입니다.

울리히 "울리" 회네스 (Ulrich “Uli” Hoeneß, 1952년 1월 5일, 울름 ~) 은 은퇴한 독일축구 선수로, 선수시절 공격수로 활약하였다.[1]

그는 선수 시절, 주로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였으며, 이후에 그는 제너럴 디렉터와 회장직을 거쳤다.[2][3]

회네스는 FIFA 월드컵에 한 차례, UEFA 유로에 두 차례 참가하였고, 두 대회를 각각 1번씩 우승하였다.

클럽 경력[편집]

회네스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울름 출신으로, 그는 TSG 울름 1846의 아마추어 팀에서 좌측 공격수로 활약하다가 나중에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이 된 우도 라텍에 의해 18세의 나이로 발굴되었다. 회네스는 그 이후 즉시 인상을 남겼는데, 바이에른 뮌헨의 첫 시즌에 31경기 출장하여 6골을 득점하였고, 뮌헨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뒤를 이어 준우승을 하였고, DFB-포칼 우승을 하였다.

그는 8년 반동안 바이에른 선수의 신분으로 보낸 뒤, 회네스는 이 기간에 8기의 트로피를 따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8개의 트로피 중 3개는 유러피언 컵 3연패 타이틀이었다. 1973-74 시즌 후반, 뮌헨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재경기를 펼쳤을 때, 그는 효과적인 역공을 이용하며 가장 훌륭한 활약을 펼쳐 2골을 득점하였고, 뮌헨의 4-0 승리를 견인하였다. 그러나, 1974-75 시즌의 리즈 유나이티드 FC와의 유러피언 컵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뒤, 회복에 실패하였다.

1978년 말, 회네스는 바이에른 뮌헨과 같은 주에 속한 1. FC 뉘른베르크로 임대되어, 기량 회복을 노렸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불과 27세의 은퇴하기에는 젊은 나이에 축구화를 벗었다. 그는 분데스리가 경기에 250경기 출장하여 86골을 득점하였다.

회네스는 은퇴 직후, 바이에른 뮌헨의 제너럴 디렉터가 되었고, 이후 바이에른은 계속적인 성공을 거두며, 인터컨티넨탈컵,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컵 등을 우승하고, 15차례 분데스리가 우승과, 7차례 DFB-포칼 우승을 하였다. (그가 도착하기 전, 바이에른 뮌헨이 얻은 메이저 타이틀 갯수는 7개에 불과했다.)

그가 보드진에 든 이후, 바이에른 뮌헨은 강력하게 발전하였다: 매출액은 거의 20배 이상 증가하였고 소시오 수는 10배 이상 증가하여 100,000명을 돌파하였고, 바이에른은 2번째로 소시오가 많은 클럽으로 기록되었다. 2000년에서 2005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은 최첨단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를 €340M에 준공하였으며, 이 경기장은 2006년 FIFA 월드컵의 경기장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회네스는 서독 국가대표로 35경기에 출전하였다. 그는 1972년 3월 29일, 2-0으로 승리한 헝가리와의 친선전에서 데뷔하였고, 쐐기골을 득점하였다.

회네스는 UEFA 유로 19721974년 FIFA 월드컵의 스쿼드에 포함된 6명의 뮌헨 선수들 중 한명이었다. 후자의 네덜란드와의 결승에서, 그는 요한 크라위프에 파울을 하여 페널티킥을 내줬지만, 서독은 그 후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에서 개최된 UEFA 유로 1976에도 참여하였지만, 체코슬라비아와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크로스바를 맞추며 실축하였다.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회네스는 1972년까지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하였고 그에 따라, 1972년 하계 올림픽 축구팀에도 참여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미래에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 될 오트마어 히츠펠트를 비롯한 선수들과 뛰었다. 서독은 동독에게 2-3으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회네스는 이 경기에서만 득점하였다. 또한, 이 경기는 분단된 두 독일간의 첫 역사적인 경기였다.

수상[편집]

클럽[편집]

FC 바이에른 뮌헨

국가대표팀[편집]

사생활[편집]

  • 울리 회네스는 정육점 주인 아들로, 회네스 또한 뉘른베르크에 있는 소시지 공장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 그의 남동생 디터 또한 성공적인 분데스리가의 축구 선수였다. 그도 형처럼 공격수였으며, 198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였고, 서독은 준우승을 거두었다.[4]
  • 1982년, 회네스는 경비행기 추락사고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비행기 뒷쪽에서 잠을 자다가, 경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비행기 사고 1시간 후, 숲 관리자는 충격에 빠져 돌아다니는 회네스를 발견하였다. 숲 관리자는, 그를 그 자리에서 알아보았고, 회네스는 "춥다" 라고밖에 말하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회네스는 이 사고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 사건을 "기적적인" 생존 사건으로, 이 사건 이후 그는 더욱 열정적인 인물이 되었고, 게르트 뮐러를 비롯한 곤경에 빠진 다른 바이에른 선수들을 도왔다.[5]

주석[편집]

  1. "Hoeneß, Uli"
  2. "Bayern president takes swipe at Klinsmann", 2011년 10월 20일.
  3. "Bayern Munich president Uli Hoeness rules out January transfers", 2011년 11월 30일.
  4. "Dieter mit Uli im Steinbruch", 2009년 4월 6일.
  5. 울리히 헤세-리히텐베르거 (Ulrich Hesse-Lichtenberger) 의 글, Tor!: The Story of German Football.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