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아 전쟁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트로이 전쟁에서 넘어옴)

트로이아 전쟁

〈불타는 트로이〉, Johann Georg Trautmann의 18세기 유화
날짜기원전 12세기
  • 전통적 비정: 기원전 1194년–1184년
  • 현대의 비정: 기원전 1260년–1180년
장소
결과 아카이아의 승리
교전국
아카이아 트로이아
에티오피아
아마존
지휘관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이도메네우스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네스토르
프리아모스 
헥토르 
파리스 
데이포보스 
아이네이아스
피해 규모
정확하지 않음 대부분 전사, 포로, 망명

트로이아 전쟁( - 戰爭, 그리스어: Τρωικός Πόλεμος, 문화어: 트로야 전쟁, 영어: Trojan War)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이다. 파리스가 그리스의 공주 헬레네를 납치해 시작되었다.

트로이아의 성벽은 강해서 그리스 병사들이 뚫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트로이아는 성공적으로 방어를 했으나, 지진에 의해 성 내부는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고, 그리스 연합군은 그 틈을 타서 공격해 트로이아 왕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헬레네는 다시 그리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트로이아가 정복될 무렵 망명한 트로이아인들도 적지 않았는데 아이네이아스가 대표적인 예였다.

이 이야기는 발굴 이전까지 신화로만 여겨졌으나, 1871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아의 발굴에 성공하면서 실제 있었던 전쟁임이 밝혀졌다.

원인[편집]

그리스측 주장[편집]

이 전쟁의 유래는 ‘퀴프리아’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제우스는 너무 증가한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질서의 여신 테미스와 머리를 맞대었고, 결국 큰 전쟁을 일으켜 인류의 거의 대부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결의를 다졌다.

올림푸스에서는 인간의 아들 펠레우스티탄 족의 딸 테티스의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 만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난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καλλίστῃ)’에게 바치라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불화의 사과)를 신들의 자리에 보냈다. 이 제물을 놓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격렬한 대립을 벌였고 제우스는 이 사과가 누구에 적합한 지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겼다. (파리스의 심판)

세 여신은 모두 가장 아름다운 옷차림을 하고 파리스 앞에 섰다. 헤라는 세계를 지배할 힘을, 아테나는 어떠한 전쟁도 승리를 할 수 있는 힘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젊었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제쳐두고, 사랑을 선택하였고 아프로디테의 권유에 의해 스파르타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빼앗아 갔다. 파리스의 여동생이자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 만이 이 사건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아폴론의 저주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넬라오스는 형인 뮤케나이의 왕 아가멤논에 그 사건을 말하였고, 또한 오디세우스와 함께 트로이로 가서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파리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에,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는 헬레네 반환과 트로이를 징벌하기 위해 원정군을 조직했다.

이 전쟁으로 신들도 편이 갈라져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그리스를 편들었고, 아폴론, 아르테미스, 아레스, 아프로디테트로이를 편들게 되었다.

페르시아측 주장[편집]

페르시아측에서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페르시아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서 지중해를 건너간 여성들은 사실 납치혼의 피해자들이었고 신화속 파리스가 헬레나를 트로이로 데려간 것도 그 납치혼의 보복이었다는 주장이다.

전설속의 여신 이오는 사실 포이니케 사람들이 헬라스의 아르고스에서 이오를 납치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헬라스측도 이에 보복해 포이니케의 영토인 튀로스에서 공주 에우로페를 납치했다고 한다. 그 뒤 그리스인들이 메데이아 공주를 납치하는등 보복 납치혼으로 신경전을 일삼다가, 일리온(트로이)의 왕자 알렉산드로스(파리스)가 보복 목적으로 라케다이몬(스파르타)에서 헬레나를 납치했고 이것이 악화되어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장이다.[1]

신화와 트로이아 목마[편집]

신화에서는 트로이아의 멸망이 목마 때문이라 되어 있다. 10년째 트로이아와 지지부지 싸우던 그리스측이 묘안을 내어 목마를 두고 철수하는 척 하였다. 트로이아측은 이 목마를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생각하여 성 안에 들였으나, 그날 밤 목마 안에서 오디세우스를 선두로 그리스 특공대가 나왔고, 그리스 군사들은 밤에 다시 성밖에 와서 숨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를 선두로 하는 특공대는 성문을 열고 그리스 본군을 들여보냈다. 그리스 본군은 트로이아 왕을 죽이고 도시를 불태워 버렸다.

해석[편집]

전쟁사학자인 정토웅 육군사관학교 교수는 트로이아 전쟁을 그리스와 트로이아간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분쟁으로 해석하였다. 지중해 무역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그리스와 트로이아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고, 이러한 역사를 호메로스일리아스오디세이아에서 자신의 신화적인 세계관으로 설명한 것이다.[2]

각주[편집]

  1. 헤로도토스. 《역사》. 천병희 번역. ISBN 97889912902661권 1~4장 
  2. 《한 권으로 보는 전쟁사 101장면》/정토웅 지음/가람기획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