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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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년 1월 6일 - 1890년 12월 26일)은 독일 출신의 사업가 및 고고학자로 트로이아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편집] 생애
슐리만은 원래 사업가 출신이었다. 자신이 쓴 책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리스 신화 속의트로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고 고고학자를 꿈꾸었으나 집안의 어려운 형편때문에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견습사원, 선원, 노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184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간 이후 인디고 장사를 시작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다. 1858년부터는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 사업을 정리하고 선사고고학 연구에 매진하였다. 이를 위한 훈련의 일환으로 세계여행을 시작하여, 튀니스, 스리랑카, 캘커타, 마드라스, 델리, 히말라야 산맥, 도쿄, 멕시코시티, 서울 등지를 도는 2년간의 여행을 한다.
1868년부터 그리스 일대를 탐사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관련된 유적들을 탐구하였고, 1870~1873년에 걸친 발굴로 트로이 유적을 찾아냈다. 이후에도 세 차례나 더 트로이 일대를 발굴하여 여러 층에 걸친 트로이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슐리만은 제2층에 해당하는 유적을 트로이 전쟁의 유적으로 판단하였다.[1] 1876년에는 '황금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미케네 고분을 발굴하여 고대 그리스 이전의 문명인 에게 해 문명의 계통을 밝혀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 귀 수술을 받은 후, 충분히 쉬지 않고 배 여행을 계속하다 악화되어 1890년 12월 25일 사망하였다.[2]
슐리만의 트로이·미케네 발굴은 신화로 여겨졌던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내용을 고고학적으로 실증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고고학계에서는 슐리만을 그리스 선사고고학(先史考古學)의 시조라고 평한다. 슐리만은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하여 유물의 가치를 따지지 않고 모두 발굴·수집하였으며 고고학 발굴의 방법을 구축한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발굴된 유물들을 무단으로 밀반출하여 오스만 제국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하는 등 제국주의적 약탈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또한 슐리만은 어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하여 모국어인 독일어 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를 독학으로 익혔으며 유창한 수준으로 구사하였다. 특히 트로이 발굴을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어를 독학으로 익히기도 한다. 전문학자가 아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조력자를 찾아서는 데도 망설이지 않았으며 끈기를 가지고 트로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를 멈추지 않는 추진력을 가졌다.
[편집] 주석
- ↑ 실제 트로이 전쟁 때의 유적은 2층이 아닌 제7층이었다. 두산백과사전 트로이 항목
-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슐리만 항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