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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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의 야경

성수대교(聖水大橋)는 서울특별시한강에 위치한 다리이다.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다. 성수대교는 길이 1,161m 너비35m(8차선)이며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준공하였다. 최초로 120m 장 경간으로 건설 되었으며 그 구조상 게르버 트러스교로서 교하공간이 넓어 광활한 한강수면에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교량 양단에 완전한 입체교차시설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구조물의 외관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진 최초의 교량이었다.


목차

[편집] 역사

1979년에 길이 1160m의 캔틸레버식 다리로 완성되었다.

[편집] 제원

폭 =19.4m(4차선), 연장 =1,160m 설계하중 : DB-18(총중량 32.4톤) 준공 : 1979년 10월

[편집] 구조형식

최초로 120m 장경간(長徑間)으로 건설되었으며 그 구조상 게르버트러스교(橋)로서 교하공간(橋下空間)이 넓어 광활한 한강수면에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교량 양단에 완전한 입체교차시설도 갖추고 있다.

  • 게르버(Gerber) 트러스교(5@120+72=672m)
  • 주경간부 양측의 앵커트러스(각36m)와 중앙현수지간(48m)이 핀으로 연결된 구조
  • 용접과 고장력볼트(마찰접합) 접합방식에 의한 시공

[편집] 게르버교 (캔틸레버교)

  • 주요부가 2경간 이상 연결되는 교량(연속교)에서 휨모멘트 M=0 이되는 단면에 힌지를 넣어 정정구조로 만든 다리
  • 연속교로서의 이점을 가지며, 지점침하의 영향이 적고, 계산이나 가설이 간단
  • 활하중이 통과할 때 힌지부에 큰 충격을 주므로 고속도로나 철도용으로는 좋지 않음

[편집] 성수대교 붕괴 사고

[편집] 사고내용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에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 하였다.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두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 16번 버스(당시 88년형 BS105L가 성수대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현재의 145번에 해당)는 붕괴 부분에 걸쳐있다가 차체가 뒤집어지면서 추락하는 바람에 등교하던 무학여중 학생들이 사고를 당하였다. 사고 차량 중 승합차에는 경찰의 날을 맞아 우수 중대로 선정되어 표창을 받기 위해 본대로 가던 의경들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사고 발생후 헌신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조했다.

 파일:사고현장1.jpg  파일:사고현장2.jpg 파일:사고현장3.jpg

[편집] 붕괴내용

교량 부재의 모든 부분에 미세 균열을 갖고 있지만 용접부의 초기 균열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성장할 정도로 다른 부분들 보다 큰 형태로 존재(균열 발생)한다. 교량 부재의 위치마다 각기 다른 하중상태를 겪는데 이는 교량 자체의 하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량 통과로 인해 교량의 가장 상판에서 발생한 반복응력이 아래로 전파된다. 이러한 다양한 반복하중 상태 속에서 결국 가장 큰 초기균열을 갖고 있던 용접부에서 균열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곳의 균열은 계속되는 반복하중 속에 점점 진전하여 교량부재의 주요부분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성장하는 동안 교량 부재의 유효단면적은 점점 감소하게 되고, 어느 순간 큰 하중이 작용하거나 어떠한 경위로 증폭된 응력은 유효단면적이 가장 작은 부분에서 파괴된다.

  • 제10번과 11번 교각 사이의 상부트러스 48m가 붕괴
  • 중앙부 트러스의 북단에 있는 3개의 핀연결 수직재중 동측 수직재가 먼저 파단
  • 이에 따라 피로균열로 약화되어 있던 중앙 및 서측 수직재가 순차적으로 파단

[편집] 피해사항

등교 길의 학생들을 포함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던 대참사였다.이 사고는 해외에도 크게 보도되어 건설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을 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도 크게 실추되었다.

[편집] 사고 원인

  • 기술적 원인
    • 설계상 신공법 교량을 완벽하게 소화하기에는 그 당시 수준으로는 무리가 따름, 시공 및 확인검사도 어려움
    • 교량의 상부구조가 수직재와 핀 플레이트 용접의 시공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채 설계됨
    • 제작당시(77년4월)특수교량을 일반교량건설과 같이 실적위주로 2년 6개월간의 무리한 준공기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실화됨
  • 제도적 원인
    • 정부의 표준품셈 및 설계작용 자재단가가 현실과 맞지 않아 발생하는 실행공사비 부족으로 자재가 조잡, 저질자재 사용이 불가피
    • 시공당시 정부기준 노임과 시중노임과의 현실화율이 64.1%~67.6%에 불과 (노임 부족분은 자재로 보충)
    • 하도급의 부당한 관행과 비리로 실행원가에 못미쳐 부실시공 성행
    • 대부분의 공사감독자나 관계자가 순환 감독제 위주의 인사제도로 공사착공부터 준공시까지 공사 전과정을 맡지 못함(책임의식 결여)
    • 유지관리 전담기구는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못함
  • 시공적 원인
    • 핀플레이트와 수직재 플렌지 사이의 용접은 x형 맞대기 용접으로 설계되었으나, 모재 전단면에 걸쳐 용입되지 않은 상태였다.
    • 용입깊이 조사결과 수직재플렌지 두께가 18mm인데 반해 미 용입 길이가 최대 16mm까지 발생한 부재도 있었다.
    • 방사선투과 탐상 시험 결과 11개소 중 110개소 결함, 1개소 무결함 110개소 결함 중 용입부족 90개소, 균열 등 기타 20개소 등으로 조사되었다.
  • 유지관리 측면
    • 유지관리 부실이 피로손상을 진해되게 방치한 결과가 되었고 순간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다.
    • 과적 중차량이 급증하고 설계하중이 증가되었는데도 정밀안전진단을 하지 않는 등 실제적인 유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 설계하중이상의 과하중이 구조물에 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인식부족과 과적 차량의 단속 소흘로 불량하게 제작된 부재 단면의 균열을 더욱 가속화
    • 경직된 유지 관리 예산 운용체계와 부족한 예산때문에 근본적인 유지관리가 어려웠다.
    • 유지관리를 위한 제규정이나 구조물의 가동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과학적 유지 방법, 점검지침이 없었음
  • 사회 환경적 원인
    • 지나친 실적위주의 전시 행정적 건설공사에 치중하여 시설물 사후관리에 있어 안전의식과 기술적 논리가 소외되었음
    • 질보다는 양적인 책임이 우선했으며 『적당주의』와 『빨리빨리』가 우선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관련 기술개발이나 전문인력 양성보다는 눈앞의 가시적 평가를 우선하였음
    • 정치적으로 선거공약 남발과 공사의 난이도 등 제반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당시의 건설풍토가 화근임
    • 중동 건설붐과 국내에서의 동시 다발적 주요 기반시설 확충으로 기술인력의 부족현상 심화

사고 당일 오후 7시에 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되었고, 우명규 시장을 거쳐 11월 3일 최병렬시장으로 부임했다.

붕괴 이후 토목학계는 무너지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시민들의 정서를 감안해 새로 건설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새로 건설하기 시작해, 1997년 7월 3일에 완성되어 차량통행이 재개되었다.

파일:추모현장1.jpg 파일:추모현장2.jpg

[편집] 조치사항

  • 서울시 대책본부 설치(성수대교 사고대책 본부 설치)
    • 조직 : 서울시장을 본부장으로 8개반 편성 후 활동 시작
  • 구조활동
    • 경찰 : 교통통제
    • 소방대, 119 구조대, 소방대원 : 구급차 출동 및 사상자 구난
    • 특전사, 해난구조대 : 잠수요원 출동 시체 인양
    • 군․경․관의 함동 구조시 지휘체계혼선으로 문제점 발생
    • 33개 병원, 교회에 사상자․부상자 수송
  • 교통정리
    • 교통량 분산 검토후 우회도로 안내판 설치
    • 교통신호주기 조정
    • 버스노선조정
  • 성수대교 붕괴 이후 관계자들의 대처안

정부 : 당시 개원 중이던 국회가 일체 중지되었고, 서울 시장이 경질되었으며,24일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전국TV를 통해 발표하고 국민에게 사과하였다.

(주)동아건설 : 10월 23일 전국 일간지,신문광고에 사과문을 개재하였고, 26일 동아건설의 최원석 회장은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1500억원을 들여 성수대교를 새로이 건설하여 국가에 헌납, 또 16개의 한강 다리들의 정기적인 안전점검을 위한 100억원 기금을 희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편집] 성수대교 복구공사

성수대교 복구공사는 1995. 4. 20 시민교통 불편 최소화를 위하여 우선 남․북 직결교량 4차로를 착수하여 1997. 8. 14 완공시켰으며, 새로이 복구한 교량은 종전 교량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구조적으로는 대폭 성능이 향상된 1등급의 새교량이다. 하지만 강남․북의 올림픽대로, 강변북로와의 연결램프가 단절되어 성수대교 이용차량의 불편과 진출입 차량이 영동대교로 집중되어 정체현상이 극심하고 이용교통량에 비하여 교량용량 부족으로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여 교량폭을 4차로에서 8차로로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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