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시 (오사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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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 시
사카이 시의 위치
한자 표기 堺市
가나 표기 さかいし
나라 일본 일본
지방 긴키 지방
도도부현 오사카 부
분류코드 27140-3
면적 149.99 km²
인구 837,853명
(2009년 10월 1일)
다이센 고분

사카이 시(일본어: 堺市, 계시)는 일본 오사카 부 중남부에 있는 이다. 중세 시대 이래로 일본의 가장 크고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다.

2005년 2월 1일, 인접했던 미나미카와치 군(南河內郡) 미하라 정(美原町)을 편입함으로써 인구가 정령지정도시 승격의 요건인 80만명을 넘었으며, 2006년 4월 1일에 15번째의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어 7개의 구가 설치되었다. 한편, 인접한 다카이시 시(高石市), 오사카사야마 시(大阪狭山市)와의 통합이 거론되었으나, 두 시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사카이 시는 5세기 때 만들어진 열쇠 구멍 모양의 고분으로 유명하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다이센 고분으로 닌토쿠 천황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한 때 가타나(사무라이 검)으로 알려졌고 현재 양질의 식칼로 유명하며 이것의 생산이 도시의 주요 산업이다.

지리[편집]

오사카 부 중앙부를 흐르는 야마토 강의 하구에 위치해 있다. 야마토 강을 사이에 두고 오사카 시의 남쪽에 위치하며, 북동쪽은 마쓰바라 시, 동쪽은 하비키노 시, 돈다바야시 시, 남동쪽은 오사카사야마 시, 가와치나가노 시, 남서쪽은 이즈미 시, 서쪽은 다카이시 시에 접하고 있다.

역사[편집]

무로마치 시대 이후 발달하였으며, 야마토 국과 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상인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승려 잇큐 소준, 선교사 프란시스 하비에르 등 종교인들이 거주하거나 방문하기도 하였다. 센고쿠 시대 이후 유럽인과의 소통이 잦아지면서, 사카이는 화기의 제조 기지가 되었으며, 화기를 얻기 위해 사카이를 자주 방문하던 오다 노부나가는 사카이로부터 자치권을 빼앗으려 하였다. 사카이의 시민들은 그의 명령을 거절하고 노부나가의 군대에 필사적인 저항을 하였으나, 끝내 사카이를 점령한 노부나가는 사카이를 불태웠다. 하지만, 사카이는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치 하에 다시 번영하는 도시가 되었다.

일본 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센노 리큐도 원래 사카이의 상인이었다. 다도와 선종 불교의 밀접한 관계와 시민들의 부유함 덕분에 사카이는 일본 다도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에도 시대의 사카이는 여전히 중요한 항구였으나,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 정책 때문에 오직 국내의 항구로만 한정되었다. 막부 말기에 서양인들은 다시 사카이에 상륙했으나 일본인들과 외국인들 사이의 상호간의 무지 때문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뒤플렉스 호의 프랑스 선원들과 사카이 시민들이 충돌했다. 프랑스인 몇 명이 사망했고 일본인 책임자들은 할복할 것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을 사카이 사건(堺事件)으로 부른다.

근대 이후에는 오사카 시 근교의 주택도시, 산업도시로서 발전해 왔으며, 특히 1960년대 이후에는 오사카 만(大阪湾) 연안에 신일본 제철(新日本製鐵) 사카이 제철소가 입지했고, 또 교외에는 센보쿠(泉北) 뉴타운이 개발됨으로써 오사카 부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행정구[편집]

사카이 시청

교통[편집]

철도[편집]

도로[편집]

자매 도시[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