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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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 房, 龐, 邦)씨는 중국한국의 성씨이다.

본뜰 방 方[편집]

방(方)씨는 중국 하남성 낙양현에서 계출된 성씨이며, 주나라 때 대부 방숙(方叔)의 후예이다. 중국 염제 신농씨의 10세손인 유망황제(楡罔皇帝)가 첫째 아들 방뢰(方雷)에게 중국 하남성 낙양현을 사패지로 주고, 방산지방(方山地方)에 봉하면서 그 곳의 지명을 따서 방씨(方氏) 성을 득성하였다.

온양 방씨의 시조 방지(方智)는 방뢰의 134세손이며, 중국 산동(山東) 출신이다. 669년(당 고종 총장2, 신라 문무왕 9) 방지는 당(唐)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로서 나당동맹(羅唐同盟)의 문화사절(文化使節)로 신라에 동래(東來)하여 설총(薛聰)과 함께 '구경(九經)'의 <회통(會統)>을 국역하였고, 장씨(張氏)와 혼인하여 가유현(嘉猷縣: 현 경북 상주시)에 정착하였다.

방지의 6세손 방운(方雲)이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를 정벌하여 고려 개국공신이 되었고, 고려 창업에서부터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6대에 걸쳐 60여년 간 공을 세워 중무장군(中武將軍)과 대장군(大將軍)을 거쳐 좌승지(左承旨), 지성사(知省事) 등을 역임한 후 좌복야(左僕射)에 올랐다. 방운은 993년(고려 성종 12년) 거란이 침입했을 때 공훈을 세워 온수군(溫水君: 현재의 충청남도 아산시)에 봉해지고 온양(溫陽), 신창(新昌), 아산(牙山)의 3읍을 식읍(食邑)으로 하사 받으면서 온양을 관향으로 하였다.

고려시대 온양 방씨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 목종 때 도첨의 정승(都僉議政丞)을 지낸 방중탁(仲鐸)과 고려 현종 때 중랑장(中郞將)으로 강감찬 장군의 휘하에서 무공을 떨쳐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진 방휴(方休)가 유명했으며, 휴의 증손 방유(方裕)는 고려 숙종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추밀원 직학사(樞密院直學士)를 거쳐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방재(方宰)가 대호군(大護軍)을 지내고, 증손 방희진(方曦進)이 대제학(大提學)에 오르면서 자손 대대로 가문을 빛냈다.

방(方)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4명, 무과 급제자 113명, 생원·진사시 28명 등 인구 대비 많은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인물로는 1489년(조선 성종 20년) 문과에 급제하고 대사헌, 성균관동지사, 이조·병조참판, 경상도·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방유령(方有寧)이 있다.[1] 조선 중기의 문신 방호의(方好義)는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2] 조선 선조 21년 무과에 급제한 방덕룡(方德龍)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이순신노량해전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여 형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3] 이순신 장군의 처가도 방(方)씨였으며, 이순신은 보성군수를 지낸 장인 방진(方震)으로부터 병학을 익혀 무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선조 때 방씨 부인을 정경부인으로 봉하면서 내린 이순신처 방씨 고신교지는 대한민국 보물 제1564-8호이다. 조선 순조홍경래의 난을 진압하고 서정군(西征軍)의 좌초관(左哨官)으로 정주성(定州城) 함락에 공을 세우고 병조참판에 추증된 방우정(方禹鼎) 장군이 쓴「서정일기(西征日記)」는 역사적인 사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4]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사상 혁명의 선구자로서 짧은 일생을 나라를 위해 바쳤다.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신문」을 인쇄하여 돌리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었고, 아동문학가로도 활동하였다. 이 밖에 방한민, 방기전, 방순희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근현대 인물로는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방준경, 방순원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한 방응모, 방우영, 방일영, 방상훈 등이 있다. 학계의 주요 인물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방영주 교수, KAIST 방효충 교수 등이 있다. 체육계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방수현 선수가 있고, 연예인 중에서는 걸스데이의 방민아가 있다.

2000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25,472가구, 81,71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58위이다. 본관은 온양을 비롯하여 상주(尙州), 군위(軍威), 신창(新昌), 개성(開城), 강화(江華) 등 26본이 문헌에 전해지나 1780년경 이후 대종인 온양 방씨로 단일화되고 있다.

방(方, Fāng)성은 중국 백가성(百家姓) 제56위이다. 역사상 인물로는 중국 명나라 때의 학사인 방효유(方孝孺)[5]와 과학자 방이지(方以智),[6] 청나라 때의 학자 방동수(方東樹)[7]가 유명하다. 한국 방씨의 시조 방지는 당(唐)나라 때 사람인 방군강(方君講)의 둘째 아들이다. 중국의 「방씨원류역사연구회」, 방씨전족통보이사회(方氏全族統譜理事會)와 한국의 온양방씨중앙종친회는 인적·물적 교류를 해오고 있다.

방 방 房[편집]

방(房, Fáng)성은 중국 백가성(百家姓) 제170위이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요임금의 아들 단주가 방읍의 후로 봉해진 이유로 성을 삼았다고 하고, 이후에는 북위 선비족이 사용하는 성씨이다.

당 태종 때 재상인 방현령의 둘째 아들 방준(房俊)이 고구려 보장왕당나라 8학사 중 한 사람으로 고구려에 들어와 당성(唐城:지금의 남양)에 정착하여 살게 되면서 한국 방(房)씨의 기원이 되었다.

남양 방씨의 시조 방계홍(房季弘)은 고려시대에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보국공(三重大匡輔國公)에 올랐다. 방계홍의 아들 방의강(房儀康)은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서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를 지냈으며, 손자 방진유(房珍儒)는 추밀원부사겸예부상서(樞密院府使兼禮部尙書)를 역임하였다. 대광(大匡)을 역임한 손자 방정유(房貞儒)는 수원 방씨(水原房氏)의 시조가 되어 분파되었다. 본관은 남양(南陽)·수원(水原)·천령(川寧)·포천(抱川)·서산(瑞山) 등 약 20본이 문헌에 전하지만, 모두가 대종인 남양 방씨의 분파 세거지(世居地)이다.

방(房)씨는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9명을 배출하였다. 역사상 인물로는 방귀온(貴溫), 방원진(元震) 등이 있다. 방귀온은 조선 중종 때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을 지내고,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가 기묘사화 때 유배되었다. 방원진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정묘호란 때 소모사(召募使)로 활약하였으며, 병자호란 때도 의병을 일으켰다.[8]

방(房)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11,033가구, 35,366명으로 조사되었다. 대표적인 현대 인물로는 제4대 고용노동부 장관방하남(房河男)이 있고, 연예인으로는 고은아(방효진), 엠블랙 미르 (가수)(방철용) 등이 있다. 중화권 영화 배우 성룡의 본명이 방사룡(房仕龍, 팡 스룽)이다.

클 방 龐[편집]

방(龐)씨는 크게 주나라 희성 계열과 고대 전욱 고양의 영성 계열이 있고 기타 소수민족들이 사용하는 성씨라고 한다. 방(庞, Páng)성은 중국 백가성(百家姓) 제120위이다.

개성 방씨의 시조 방두현(龐斗賢)은 원나라 6시랑 8학사의 한 사람으로서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개성에 봉분되면서 개성을 본관으로 삼는다. 조선 영조 49년(1773년)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로 무과에 급제한 방양혁(龐陽赫)이 있다.

방(龐)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314가구, 1,080명으로 조사됐다.

나라 방 邦[편집]

방(邦)씨는 상나라 자성 계열이라고 하며, 기타 다양한 소수 민족이 사용하는 성씨라고 한다.

역사상 인물로는 무안(務安)을 본관으로 하는 방준상(邦俊相)이 조선 영조 26년(1750년)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로 무과에 급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라는 관직을 지낸 방필원(邦弼元)이며, 형은 방유언(邦有彦)이다. 또한 기독교 장로회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사람인 방기창(邦基昌, 1851년 ~ 1911년)이 있다.

방(邦)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481가구, 1,547명으로 조사됐다. 본관은 광주 괴산 무안 수다 영흥 예천 철원 파주 풍기 해주 등 10본이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