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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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진(房元震, 1577년 ~ 1649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성(子省), 호는 만오(晩悟)이다. 부인은 현감 정대민(鄭大民)의 딸이다.[1]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대박(梁大撲)과 함께 의병으로 활동했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1605년(선조 38년) 28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2]

조부인 방응현(房應賢)이 세운 사계정사(沙溪精舍)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리자 1609년에 다시 재건한 후 그 모습을 그림으로 제작하여 《사계정사도(沙溪精舍圖)》(견본채색화, 55.5×88cm)를 남겼다.[3]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이 되었고, 1624년 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4]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였다.[5]

1636년 병자호란 때도 의병을 일으켜 여산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저서[편집]

  • 《만오실기(晩悟實記)》
  • 한글 시조 《애련곡》

가족 관계[편집]

  • 고조부 : 호조좌랑(戶曹佐郞) 방귀화(房貴和)
    • 증조부 : 방한걸(房漢傑)
      • 조부 : 방응현(房應賢, 1524년 ∼ 1589년)
      • 조모 : 해주 오씨(海州吳氏, 1524년 ~ 1598년), 오경인(吳景戭)의 딸
        • 부 : 방덕화(房德驊)
      • 외조부 : 진대수(陳大壽)
        • 모 : 진대수(陳大壽)의 딸
        • 처부 : 현감 정대민(鄭大民)
          • 부인 : 하동 정씨(河東鄭氏), 정대민(鄭大民)의 딸
            • 장남 : 진사(進士) 방명욱(房明煜)
            • 며느리 : 양사제(梁士悌)의 딸
            • 차남 : 생원 방명소(房明熽)
            • 며느리 : 청송 심씨(靑松沈氏), 심기원(沈沂源)의 딸
            • 장녀 : 남양 방씨
            • 장녀 사위 : 이창(李悵)
            • 차녀 사위 : 김강(金茳)
          • 남동생 :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 방원익(房元益)
          • 여동생 : 남양 방씨
          • 매제 : 김경연(金慶衍)
          • 이복 동생 : 방원점(房元漸)
          • 이복 동생 : 방원정(房元井)
            • 조카 : 방명엽(房明燁)
            • 조카 : 방명흡(房明灼)
            • 조카 : 방명식(房明烒)
            • 조카 : 방명섭(房明燮)
          • 이복 여동생 : 사인(士人) 임게(林垍)에게 출가

각주[편집]

  1. 정온(鄭蘊), 《국조인물고》 권55
  2. 『만력33년을사증광사마방목(萬曆三十三年乙巳增廣司馬榜目)』
  3. 사계정사 - 두산백과
  4. 《인조실록》 4권, 2년(1624 갑자 / 명 천계(天啓) 4년) 2월 26일(경술) 3번째기사
  5. 조경남(趙慶南), 《속잡록(續雜錄)》 2 정묘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