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취려(金就礪, 1171년 ~ 1234년)는 고려중기의 무신, 장군으로, 고려의 서북면을 침략한 거란족을 격퇴하였으며 관직은 판병부사 시중에 이르렀다. 시호는 위열(威烈), 본관은 언양(彦陽)이다.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낸 김부(金富)의 아들이다.
목차 |
[편집] 생애
음관으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후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將軍)이 되었다. 1216년(고종 3)에 거란 왕자 금산(金山)·금시(金始)가 대요수국왕(大遼收國王)이라 칭하고 몽골군에게 쫓기어 고려의 서북면으로 쳐들어왔는데, 이들 거란족은 서북면에서 행패를 부리고 약탈을 자행하였다.
김취려는 이철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서북면으로 가 거란족과 교전하여 무찌르고 1218년의 재침도 김취려가 평정하였다. 또한 한순(韓恂) 등이 의주(義州)에서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는 등, 공로가 많아 판병부사 시중까지 되었다.
[편집] 가족 관계
- 아버지 : 김부(金富)
[편집] 평가
성미가 곧고 청백하여 군기를 엄정히 하고 부하를 골고루 아끼었으며 싸움에서는 기발한 계교를 많이 꾸며서 큰 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