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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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순(姜一淳, 1871년 음력 9월 19일 ~ 1909년 음력 6월 24일)은 증산교의 교조이다. 본관은 진주(晉州)로 흔히 알려진 증산(甑山)은 그의 이며, 는 사옥(士玉)이다.

증산교 계열 종단에서는 그를 상제(上帝, 증산상제, 옥황상제, 구천상제 등), (증산)천사(天師), 선생님 등으로 부른다.

목차

[편집] 생애

[편집] 출생

아버지 강문회1846년생으로, 원래 강한중(姜漢重)의 큰 아들이었으나 그 백부이자 집안의 장남이었던 강두중(姜斗重)이 자식이 없었으므로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 권양덕1850년생으로, 안동이 본관이다. 천성이 선하고 남의 흉을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1870년권양덕이 그 본가에 근친할 때에 강문회가 큰 불덩이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으므로, 이를 태몽으로 알고 처가로 가 잉태하였다고 한다. 이후 권양덕 또한 같은 태몽을 꾸었고, 열석 달 뒤인 1871년 음력 9월 19일전라북도 고부군(현재 정읍시)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편집] 어린 시절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가난하여 외가와 진외가로 자주 옮겨다녔다고 하며, 그 집 또한 초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다른 면모를 보였다고 하며, 여섯 살 되던 1876년에 풍물굿을 보고 혜각이 열린 뒤로는 이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아버지였던 강문회가 가세가 어려움에도 천자문을 가르치고자 옆 마을의 훈장을 들이자 하늘 천(天)과 땅 지(地)만을 한 번 읽고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훈장이 이유를 묻자 “하늘 천 자에 하늘 이치를 알았고, 땅 지 자에 땅 이치를 알았으면 되었지 더 배울 것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일곱 살 때에는 “멀리 뛰려 하니 땅이 꺼질까 두렵고, 크게 소리치려 하니 하늘이 놀랄까 두렵구나.”(遠步恐地坼 大呼恐天驚)라는 시를 지었다고도 한다.

이후 열다섯살 무렵에 글 읽기를 중단하고 유랑을 하였다고 한다.

[편집] 혼인과 유랑

한두 해 가량의 유랑을 마치고 돌아와 를 짓고는 스물한 살이 되는 1891년하동 정씨였던 정치순과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순은 집안을 돌보지 않았던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에도 딸 하나 이외에는 깊은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봉준이 일찍부터 그와 교분이 있었으므로, 1894년에 찾아와 거사를 하는데 도움을 청하였으나 강증산은 “때가 아니니 나서지 말라.”며 “성사도 안 되고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을 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도 일대를 유랑하며 관군에 쫓기던 동학군 몇 명을 구하기도 하고, 동학군에 가담한 사람에게 들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스물일곱 살 되는 1897년에 다시 전국 유랑을 시작하여 3년간의 유랑을 끝낸 1900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편집] 도통과 천지공사

[편집] 운명

1909년 수부 고판례에게 종통을 전하고 보름 동안 금식하여 스스로 명을 거둔다.

명을 거둔 원인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어떤 설은 강증산의 사인이 독살이라고 하며 다른 설은 위암, 주독, 고문의 후유증 등을 들기도 한다. 그가 죽은 뒤 보천교를 비롯한 여러 교파가 난립하여 지금은 증산도, 대순진리회, 태극도, 태을도, 음양쌍도태 등으로 남아있다.

[편집] 참고 자료

  •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증산도 도전》, 2003년.
  • 이상호, 《대순전경》,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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