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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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증산(甑山) 강일순의 가르침을 모태로 하여 세워진 신흥 종교이다. 신앙의 대상은 상제[1]인 증산 강일순이며, 도주(道主) 조철제를 옥황상제로 받든다. 도전인 박한경은 1996년 사망했으며, 뚜렷한 후계자가 없는 상태로 있다. 일반 대중에는 '도를 아십니까?'라며 다가오는 길거리 포교 방식으로 익히 알려져있다.

개요[편집]

신흥종교인 증산계열의 한 파(派)로 알려져 있다. 태극도(太極道)의 총도전 박한경(朴漢慶)이 태극도로부터 분립하여 서울에 본부를 두고 포교를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경상남도 함안(咸安) 출신의 조철제(趙哲濟)가 1925년 전라북도 정읍(井邑) 구태인에 무극도(无極道)를 창시하였으나, 41년 일제의 '종교단체 해산령'에 의해 여타 종교단체들과 함께 강제 해산되었다.

8ㆍ15광복이 되자 1948년 부산에서 다시 종단을 일으키고, 이름을 태극도(太極道)로 바꾸었다. 1958년 창도주(創道主)인 조철제의 유명으로 박한경이 총도전이 되었다. 그러나 조철제의 아들 영래(永來)와의 사이에 주도권을 놓고 불화가 잦았다. 그러자 박한경은 1968년 4월 지지자들을 이끌고 교단을 나와 상경, 현재의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에 터전을 잡고 대순진리회를 창립하였다.

역사[편집]

1909년 강증산이 화천하자, 1925년 정산(鼎山) 조철제가 무극도를 세웠으며, 해방 후에는 부산 감천에 태극도를 창도했다. 1958년 조철제가 죽자, 유명으로 종통을 이어 받아 총도전(總都典)으로 임명된 우당 박한경이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였다.[2][3]

1996년 1월 박한경이 뚜렷한 후계자를 내세우지 않고 죽자, 교단은 서로 정통성을 내세우며 분파하게 된다. 1999년 7월 16일 박한경의 처남인 경석규와 정대진 측이 여주 도장에서 이유종 세력을 몰아냈다. 이어 중곡 도장으로 밀려난 이유종 측은 이듬해 1월에 여주 도장을 물리적으로 되찾으려 하나 실패한다. 한편 여주 도장 내부에서도 2000년 10월에 폭력 사태가 일어나, 경석규 측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진다. 2000년 8월 17일 경석규, 이유종, 정대진, 윤은도 등이 서로 대순진리회를 대표한다며 법원에서 소송을 벌였으나, 2006년 12월 21일 대법원은 판결에서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4] 이어서, 2010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정재헌, 이순악, 주훈재를 공동으로 법률상 대표자인 임시 종무원장으로 선임했다.[5]

서로 갈등하던 경석규와 이유종은 2010년 사망했으며, 여전히 갈등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6] 이 외에도 박성구를 중심으로 하는 포항 상도방면과 2대 도전을 주장하는 김찬성 중심의 청주 용암 방면 용화대미륵선도 등 다양한 계파가 존재한다.

교리[편집]

교리는 음양합덕(陰陽合德)ㆍ신인조화(神人調化)ㆍ해원상생(解寃相生)ㆍ도통진경(道通眞境)을 종지(宗旨)로 하고, 성(誠)ㆍ경(敬)ㆍ신(信)의 삼법언(三法言)을 수도의 삼요체(三要諦)로, 안심(安心)ㆍ안신(安身)ㆍ경천(敬天)ㆍ수도(修道)를 강령(綱領)으로 삼고 있다. 경전(經典)은 전경(典經)이라 하며, 총 7편 17장 839절로 구성되어 있고 교조(敎祖) 강일순(姜一淳, 甑山)과 도주(道主) 조철제(趙哲濟, 鼎山)의 언행ㆍ행적들을 담아 신도들의 수도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조직 운영[편집]

조직의 운영은 <도헌(道憲)>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도전(都典, 박한경)을 정점으로 의결기관인 중앙종의회(中央宗議會)와 집행기관으로 종무원(宗務院)이 중심이 되어 그 아래 포정원(布正院)ㆍ감사원ㆍ육영사업부 등 몇 개의 집행부서가 있다. 또 종의회의 구성 멤버는 선감(宣監)ㆍ교감(敎監)ㆍ보정(補正) 등 각 부의 고위 교직자로 되어 있다. 이 교단은 ①구호ㆍ자선, ②사회복지, ③교육사업 등을 3개 기본사업으로 책정하고, 70년대 후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전개, 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단법인[편집]

재단법인 '대순진리회'는 해원상생의 대순진리회를 종지로 하고, 인간개조,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 구제창생, 보국안민, 지상천국 건설을 위하여 1987년 12월 8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43-1이다.

주요사업은 대순진리회의 포덕, 교화, 수도 사업 및 이에 부대한 중앙 본부를 비롯한 각 지방회관의 유지 관리, 국민을 위한 구호자선사업 전개, 국가를 위한 사회복지사업 전개, 교역자 양성기관 및 육영사업 유지 경영 등이다.

규모[편집]

박한경의 사후에 갈라져 나온 세력 중에 여주본부도장은 가장 규모가 크며, 중곡도장은 박한경이 처음 지은 도장이다. 대진성도회는 중원대학교를 보유하고 있다.[7]

대진대학교, 대진고등학교, 대진여자고등학교, 분당대진고등학교, 일산대진고등학교, 대진디자인고등학교, 대진정보통신고등학교, 중원대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과 분당 제생병원이 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동두천시고성군에도 제생병원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8]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姜聖上帝). 대순진리회와 뿌리가 같은 증산도에서는 강일순을 옥황상제로 받들고 있다.
  2. 홍종진. "대순진리회는 거듭 태어나야 한다", 《신동아》, 2001년 12월 작성.
  3. 대순진리회 연혁
  4. 편집국. "해원ㆍ상생을 실천하는 민족종단", 《뉴스메이커》, 2008년 12월 15일 작성.
  5. 김훈남 기자. "15년 공석 대순진리회, 임시종무원장 선임", 《머니투데이》, 2010년 8월 9일 작성.
  6. 강훈 기자. "12년간 묶인 예금 4000억… 대순진리회의 고민", 《조선일보》, 2011년 5월 7일 작성.
  7. 안성모 기자. "조용한 시골 마을 흔든 ‘종교와의 전쟁’", 《시사저널》, 2010년 3월 24일 작성.
  8. 최종학기자. "출발선 대기만 17년 동두천제생병원", 《데일리메디》, 2011년 10월 10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

참고 자료[편집]

  •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1998년 편집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