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가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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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유학중 4집을 낸 뒤 활동을 중단했으며,<ref>{{뉴스 인용
| 제목 = 아이비, "양파 테이프, 늘어질때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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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 마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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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자 = 200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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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일자 = 201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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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가수 양파, 이모부 매니저와 법정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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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 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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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7일 (목) 08:23 판

양파
기본 정보
본명이은진
출생1979년 3월 17일(1979-03-17)(45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별여성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활동 시기1996년 ~ 현재
소속사코어콘텐츠미디어
관련 활동가수 작사
웹사이트양파 트위터
양파 공식 아하바
공식 웹사이트

양파(본명: 이은진 李銀瑨[출처 필요], 1979년 3월 17일 ~ )는 대한민국가수이다.

활동

  • 1996년 12월 《Yangpa》로 데뷔하여 82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이 판매량은 이소라 1집 - 110만장에 이어 앨범 판매 역대 솔로 여가수 2위의 기록이다.[1] 고등학생의 어리고 평범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표곡인 《애송이의 사랑》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단기간에 최고의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했다.
  • 1998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던 중 급성위경련이 발발해 시험 도중 포기했다,[2][3] 재수를 고민하던 중 유학으로 향후 진로를 돌렸고
  • 1999년 유학 전, 2집 발표 후 1년 4개월만인 6월 3집 《개구리 연못 속의...날다》를 발표하였다. 3집의 노래들은 이전 양파의 작품들과는 달리 성숙미를 강조하였다. 신재홍이 수록된 12곡을 프로듀스했으며 이승환, 김현철, 조규찬, 조규환 등이 곡을 만들어 주거나 듀엣으로 참여했다.[4] 1999년 3집은 49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5]1999년 9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市 버클리 음악 대학 퓨전음악에 입학하였다.
  • 2001년 유학중 4집을 낸 뒤 활동을 중단했으며,[6][2] 2003년 귀국 그녀의 이모부이자 매니저인 서모씨와의 전속계약 위반을 이유로 음악활동에 제동이 걸린다. 양파는 서모씨와 데뷔시절인 1997년 2월 "3년동안 총 5개의 음반을 발표할 것"을 내용으로 한 계약을 맺었는데, 양파측에서는 2001년까지 5개의 음반을 발매하면서 채무를 이행했다고 주장했으나 매니저 측은 1999년 발표한 3.5집은 정식 음반으로 볼 수 없다면서 음반을 추가로 내놓지 않으면 계약 종료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양파는 2005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7]

이듬해 2006년 승소하였고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2007년 5월 5집 《the windows of my soul》을 발표, 수록된 〈사랑..그게 뭔데〉와 〈그대를 알고〉가 히트했다.[8]

음반

정규 음반

  • 1996년 12월 1집 애송이의 사랑
  • 1998년 1월 2집 Neverland
  • 1999년 6월 3집 개구리 연못 속의 날다
  • 2001년 3월 4집 Perfume
  • 2007년 5월 5집 the windows of my soul

Best 음반

  • 1999년 12월 3.5집(Best Album) A Letter from Berklee [9]
  • 2003년 11월 The Best Album - 피안화

EP 음반

  • 2011년 3월 EP Elegy Nouveau - 스페셜

싱글 음반

참여 음반

작사

기타

  • 2000년 8월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박찬호 선발 등판 전 미국 및 캐나다 국가를 부른 바 있다.[10]
  • 양파라는 예명은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라 데뷔 당시 소속사 사장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본인은 예명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았고 본명에서 따 온 '이은'을 새로운 예명으로 쓸 생각도 했으나, 팬들이 양파를 더 친숙하게 느끼는 만큼 애칭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밝혔다.[11]

학력

수상

  • 2007년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 - Song Of The Month
  • 2007년 제22회 골든디스크상 - 디스크부문 본상

주석

  1. “돌아온 양파 "욕심 대신 사심 담았어요"”. 한국아이닷컴. 
  2. “5집 앨범 발표 양파 “애송이의 성장통 고스란히 담았죠””. 동아일보. 
  3. “여고생가수 '양파' 수능시험중 쓰러져 입원”. 조선일보. 2010년 8월 22일에 확인함. 
  4. “신곡 `아디오'로 컴백, 여인으로 돌아와”. 조선일보. 2010년 8월 22일에 확인함. 
  5. “99년 대중음악 결산, 움츠렸던 음반시장 여가수 덕에 떴다”. 조선일보. 2010년 8월 22일에 확인함. 
  6. “아이비, "양파 테이프, 늘어질때까지 들었다"”. 마이데일리. 
  7. “가수 양파, 이모부 매니저와 법정다툼”. 스타뉴스. 
  8. “양파, 美서 귀국..올해 컴백하나?”. 머니투데이. 
  9. 실제 음반에는 'A Letter from Berkeley'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는 버클리 음대UC 버클리의 영문명칭을 혼동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A Letter from Berklee'가 정확한 표기이다.
  10. “가수 양파 다저스타디움서 미국가 불러”. 경향신문. 
  11. “6년만에 돌아온 양파 "너무 떨렸어요"…온·오프라인 1위 등극”. 매일경제.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