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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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정상회담(二千年南北頂上會談)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김정일평양에서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진행한 회담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었고 회담 결과로 마지막날 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됐다.[1] 미국의 AP통신은 2000년 12월 25일 '2000년 세계 10대 뉴스'를 발표하였는데 이 남북정상회담은 5위를 차지하였다.[2]

개요[편집]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북한의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남북 당국간 회담이 지속됐으며, 북한은 일본,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 김정일의 조기 서울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 정세의 급변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 김대중은 이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와 생애 전반에 대한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발표 전에 현대그룹에서 북한에 4억 5천만 달러를 송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2003년 대북송금특검이 도입돼 수사를 했다.[3]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에 의한 특검팀 수사결과 "현대그룹이 북한에 송금한 돈의 액수는 총 5억 달러이며 이 중 5000만 달러는 현물로 보내졌다"고 발표하고 "5억 달러 중에는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정책 자금 1억 달러가 포함돼 있다"라고 밝혔다.

현대 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2000년 6월 9일 북한의 대성은행의 계좌 (중국 마카오 지점) 으로 송금되었으며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이 조달한 2억 5000 만 달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김정일 비밀계좌로 송금되었다고 진술된 기록이 공개되었다.

김정일은 정권유지에 대한 압박감에 미국을 의식했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미국을 두려워한 김정일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의 편지를 받고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평양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전해준 서한을 받고 빌 클린턴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고 하며, 올브라이트가 방북할 때 아리랑 공연 등의 잔치를 벌였다.[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기협. 통일 과업의 출발점으로서 2000년 정상회담. 프레시안. 2015년 2월 5일.
  2. 남북정상회담 세계 10대뉴스 5위. 한국일보. 2000년 12월 26일.
  3. <대북송금특검 및 정몽헌회장자살사건> 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위원회, 2005년 09월 10일 출간, 2012년 05월 24일 확인
  4. 프랑스 방송 제작 <긴급입수 김정일, 금지된 과거> KBS 2011년 3월 4일 방송

참고 자료[편집]

  • <긴급입수 김정일, 금지된 과거> KBS 2011년 3월 4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