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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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중국인(在韓 中國人)은 화교(華僑)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생활하고 있는 중국인 혼혈아들을 화교라고 일컸는다. 고향은 대만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 산둥반도이며 이들은 한국에 이민온 지 최소한 2,3세이다. 하지만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보다는 타이완을 더 고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며 타이완에 우호적이다. 10만명에 가깝던 화교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70년대까지 화교 경제 진출을 막기 위해 각종 제한을 걸어 대만,홍콩,미국 등으로 이주해 한때 2만명까지 줄었다가 1990-2000년대 이후 다시 돌아오고 있어 2010년대 귀화자를 포함한 순수 화교 인구는 5만명 정도다. 화교 모계 또는 부계가 1990년부터 결혼을 하여 한국으로 귀화하고 그 화교 혼혈의 자식들까지 합치면 10만명은 족히 넘는다. 한국 화교의 고향은 중화인민공화국 산둥반도이지만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주로 부산, 인천, 서울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출신지는 대부분 중국 대륙 산둥 성이다.

역사[편집]

대부분이 청나라때 임오군란의 핑계로 군인들의 허드랫일을 도우기 위해 청나라에서 강제로 파견된 소작농과 노비 출신들이다. 이들은 조선인들을 약탈하는데 동원되었으며, 1910년 화교들이 조선을 수탈하여 청나라에 송금하는 돈이 1억엔이 넘어, 일제의 화교 송금에 대한 단속이 있었다. 또한 화교들의 약탈에 조선인들은 불만이 높아져, 화교 배척 운동 등 화교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청나라 군인들은 모두 배를 타고 돌아갔지만 이들은 돌아갈 길이 막막하여 인천에 살게 되었다. 생업을 위해 상업에 종사하였고 청나라의 지령을 받아 조선의 약탈을 하였다. 한때 인천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1만명에 달하였다. 이주초기에 이들은 하층민들이 주로 하던 이발사, 요리사, 재단사로 일하였으나, 근래에는 여행가이드가 가장 많고, 한약방, 무역업, 잡화상, 식재료상을 하고 있다.

인구[편집]

2002년 통계 한국 화교 인구
지역 화인 인구
서울 약 8000명
인천 약 3200명
부산, 대구, 대전, 전주 총 8800명
2010년 통계 한국 화교 인구
지역 화인 인구
서울특별시 8769명
경기도 2484명
인천광역시 2839명
부산광역시 1732명
대구광역시 871명
충청남도 647명
전라북도 585명
충청북도 569명
강원도 558명
대전광역시 514명
경상북도 432명
경상남도 358명
광주광역시 334명
제주특별자치도 295명
울산광역시 282명
전라남도 221명

2011년 기준으로 인천의 차이나타운에는 150~200여 가구에 695명의 화교가, 인천에는 약 3천명의 화교가 거주하고 있다.[1]

10만명에 가깝던 화교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부터 70년대까지 화교 경제 진출을 막기 위해 각종 제한을 걸어 대만,홍콩,미국 등으로 이주해 한때 2만명까지 줄었다. 그 이후 1998년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정책이 시행되면서 2001년도에는 22,917명으로 점차 안정적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다시 돌아오고 있어 2010년대 귀화자를 포함한 화교 인구는 5만명 정도이다. 2010년 기준으로 화교 숫자는 21,490명 수준이다. 이중에 13,316명이 영주권비자(F-5)이며 거주비자(F-2)는 6,569명이다. 다만 이들은 자발적인 집계이고 실제 숫자는 현재 화교 3세까지 합산하면 5만명 가량이며 모계가 화교인 혼혈들까지 합하면 10만명 가량이다.

국적 문제[편집]

대한민국[편집]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화인 1세들의 대부분은 중국 대륙에서 대한민국으로 이민왔으며, 당시 중국 대륙은 중화민국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패하여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완으로 옮기고 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한국화인 혼혈아 2세는 물론이고 3세, 4세 또한 모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핏줄은 중국인들이며 대한민국의 국적법이 속인주의(屬人主義)인 관계로 이들은 모두 중화민국 국적이다. 따라서 중국 대륙 출신의 후예인 한국화인들은 중화민국 국적을 가지고 출생지인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으로 3세대가 넘도록 생활한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40년 가까이 영주권 제도가 없었으므로 한국화인들은 그들이 태어난 고향인 대한민국에서 F2 장기 거주 사증을 취득하여 5년마다 갱신하는 불편을 겪으며 생활하다가, 1990년대에 F5 영주 사증 제도가 생기면서 불편을 많이 줄이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를 원하는 사람도 일부 있으나, 까다로운 귀화절차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 많이 간소화 되었다.[2]

중화민국[편집]

한국에서 태어나서 고향이 한국에 있는 한국화인은 중화민국에 호적이 없다. 그러므로 국적상의 조국인 중화민국으로 입국시 별도로 입국 사증이 필요하다. 한국화인은, 중화민국 국민에게 사증을 면제하는 국가에 대부분 사증 없이 입국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중화민국 본국으로부터 받은 여권이 아니므로 그 효력은 크게 제한되기 때문에 호주, 일본 등을 방문하려는 중화민국 국민은 사증이 별도로 필요하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한국인은 대만 방문시 90일간 사증이 면제된다.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화민국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화민국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한국화교는 중국 대륙으로 입국시 여권 대신 중국 대사관에서 화교를 대상으로 발급하는 여행증을 여권 대신 사용한다. 단, 마카오는 사증 없이도 30일간 방문할 수 있다.

한국 거주 화교 여성들의 성매매 문제[편집]

박정희의 화교 규제로 인해 경제 진출이 완전히 막혀 소득이 적어진 중국 화교여성들은 친척들과 자본이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산둥반도에는 국가의 수교가 없어 돌아가지 못하고 무자본으로 대만과 홍콩 등등에 돌아가기 힘들어서 많은 중국 화교 여성들이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남성들에 매춘을 하기 시작했고 기생관광에 여성들로 활약을 하였다. 그 후 시련을 겪은 화교들은 대만과 홍콩 등으로 귀국하였다. 하지만 현재도 화교들은 중국 주점과 마사지샵을 차리고 화교 여성들과 대만 여성들을 고용하여 한국 남성들에게 성매매를 하고 있다.[3][4]

유명한 인물(귀화자도 포함)[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강경표. “중국피 6.25% 한국피 93.75%… 이 아이는 중국인입니까 한국인입니까”. 조선일보. 한때 1만명에 이른 적도 있지만, 현재 차이나타운 화교 인구는 150~200여 가구에 695명, 인천 전역에는 약 3000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2. 귀화 Archived 2007년 3월 31일 - 웨이백 머신,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3. 화교가 없는 나라,이정희 저
  4. http://news.tvchosun.com/mobile/svc/article.amp.html?contid=2012071701254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