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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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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하장수(河長水)
군주 대한제국 태황제(1897~1907)
대한제국 효황제(1907~1910)

이름
별명 초휘 한수(漢水)
자 여안(汝安)
호 송파(松波)
신상정보
출생일 1864년 3월 17일
사망일 1912년 8월 11일
사망지 사천조동
국적 조선 조선
대한제국의 기 대한제국
본관 진양
부모 하재흥(河再興)
모 강진민씨(江津旻氏)
배우자 김백림(金伯林)
자녀 하재세(河在世)
직업 유학자, 서예가, 사회운동가
종교 유교(성리학)
1909년작 하장수 선생의 수결

하장수(河長水, 1864년 3월 17일~1912년 8월 11일)는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며 대한제국사회운동가이다. 본관은 진양이며 초휘는 한수(漢水), 자는 여안(汝安), 호는 송파(松波)이다. 아버지는 유학자 하재흥(河再興)이며 조부는 훈도, 교수를 지낸 유학자 하용우(河龍佑) 선생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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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장수는 사천조동을 대표하는 명망 있는 유학자 가문의 출신으로 당시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리 국제 정세에 밝아 청나라와 서구 열강과 왜국에 관한 동향 등을 알고 ‘조선이 하루속히 군관민이 일체화된 ‘군병체제’를 갖추어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개화파 이론가들과 개화사상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이었다.

진양하씨사천조동 문중의 구전에 의하면 하장수 선생이 ‘군병체제’에 대해 여러 차례 조정에 상소하였으나, 번번이 무시되자, '조선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라는 말을 일상에서 늘 되뇌었다고 한다. 그는 지역 유림의 회합 때마다, 이를 전파하였으나 큰 호응이 없자, 거시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한정된 전파에 그쳤다. 그러나 당시 그의 명망은 사천을 중심으로 경상도 전역의 유림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하장수는 평소에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출사에 뜻을 두지 말고 농사와 더불어 학문에만 정진하라'는 윗대 선대로부터 내려온 유훈을 실천하는 지극히 유교 도리에 충실한 유학자였다. 학문의 출중함과 폭넓은 식견을 겸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향시대과에 뜻을 두지 않았던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다.[1] 이는 순조 철종대를 전후하여 세도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가문들의 폭정에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선대 조상의 의지를 받든 발로였을 것이다. 이는 진양하씨 사직공파의 파조인 문효공파 영의정 하연 선생이 수양대군에 의해 계유정난이 일어나기 전, 평소의 의지와 뜻을 말하고 죽음 직전에 ‘세월이 심상치 않으니 관직에 연연하지 말고 사직하여 향리로 내려와 세류에 휩쓸리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 가문의 전통처럼 내려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연 선생의 직계 후손 중에는 일부 출사하여 당상관 이상의 관직에 오른 이들이 적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후손들은 사대부임에도 불구하고 종복들과 함께 직접 농사짓기와 더불어 학문에만 정진했다. 특히 하장수의 경우, 그의 출중한 학문과 폭넓은 식견을 쉽게 엿 볼 수 있는 것은 사천에 전임된 수령들마다 그의 가택에 수시로 방문하거나, 초청을 받아 격의 없이 시국을 논하고 자문에 응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한편, 하장수는 1876년 일제와의 불평등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급기야 1905년 11월에 을사오적의 한사람인 박제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얼마나 비분강개하였으면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연이어 1907년 7월에 대한제국군이 해산되고 1910년 8월에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강제로 병합되자, 분을 참지 못하여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이후 병을 얻은 그는 1912년 경술국치를 당한 그 달 8월, 48세의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는 평소에 ‘왜국을 경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한다. 가풍에 따라 공명심과 부명을 늘 경계하였으며, 뛰어난 필력을 가진 서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문집은 물론 문집의 간행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밀양박씨 문중과 정혼한 장남 하재세가 성년이 되자, 1909년 양가 혼인을 위해 사성단자와 함께 보낸 서신이 115년 만에 사천조동 문중 본가에서 발견[2]되어 이로써 서예가로서 그의 뛰어난 필력이 확인되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촌부 유학자 하장수는 한정된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당시 개화파 인사들과 교류조차 없었으나, 개화파 사상가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이고도 실제적인 국가 현안 비상 타계 정책인 ‘군병체제'를 제시한 것은 그 어떤 개화사상가들도 이에 비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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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선조인 하연 선생

직계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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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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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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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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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晉陽河氏大同譜(乾隆丙子譜,1756년)
  • 晉陽河氏大同譜(乾隆壬辰譜,1772년)
  • 晉陽河氏大同譜(乾隆乙酉譜,1789년)
  • 晉陽河氏大同譜(道光戊子譜,1828년)
  • 晉陽河氏大同譜(咸豐丁巳譜,1857년)
  • 晉陽河氏大同譜(戊午譜,1858년)
  • 晉陽河氏大同譜(庚辰譜,1880년)
  • 晉陽河氏大同譜(庚子譜,1900년)
  • 晉陽河氏大同譜(甲寅譜,1914년)
  • 晉陽河氏大同譜(丁巳譜,1917년)
  • 晉陽河氏大同譜(甲子譜,1924년)
  • 晉陽河氏大同譜(戊辰譜,1928년)
  • 晉陽河氏大同譜(壬辰譜,1952년)
  • 晉陽河氏大同譜(乙未譜,1955년)
  • 晉陽河氏大同譜(丁酉譜,1957년)
  • 晉陽河氏大同譜(庚子譜,1960년)
  • 晉陽河氏大同譜(乙酉譜,1969년)
  • 晉陽河氏大同譜(甲子譜,1984년)
  • 晉陽河氏大同譜(庚辰譜,2000년, 인제대학교 족보도서관 전자판)
  • 河承武의 晉陽河氏 家門人物硏究(2015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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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적으로 당시 중앙정치를 독점한 세도정치 가문들에 의해 매관매직이 일상이었으며 과거시험조차 조작되고 대리시험이 빈번했다. 특히,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세도가문의 출신이 아니거나, 연줄이 없으면 장원급제 또는 급제의 실력이라도 낙방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2. 하장수 선생의 자부이자 하재세 선생의 부인인 박연순 여사가 시집을 올때 부친인 박태서 선생으로부터 시아버지가 보낸 서신을 받아 와서 가지고 있다가 세상을 떠날때 며느리인 강숙순 여사에게 전달되어 보관하고 있던 차에 2024년인 115년만에 진양하씨 사천조동 문중 본가에서 발견된 것이다.
  3. '하승무 교수 국회의장 공로장 수상' 무등일보”. 2024년 4월 23일에 확인함. 
  4. 고신대 동문뉴스. 202년 04월 22일[1]
  5. 베리타스알파. 202년 04월 23일[2]
  6. 더코리아. 202년 04월 23일[3]
  7. CRSNews. 202년 05월 11일[4]
  8. K채널. 202년 04월 23일[5]
  9. 톡톡뉴스. 202년 04월 23일[6]
  10. 무등일보. 202년 04월 23일[7]
  11. 전남매일. 202년 04월 23일[8]
  12. 아시아경제. 2020년 11월 26일[9]
  13. 한국대학신문. 11월 26일[10]
  14. 위키트리 11월 26[11]
  15. 전남일보. 11월 26일[12]
  16. 광주매일신문. 11월 26일[13]
  17. 뉴스핌. 11월 26일[14]
  18. 남도일보. 11월 26일[15]
  19. 국제뉴스. 2020년 11월 25일[16]
  20. 열린통신뉴스. 2020년 11월 26일[17]
  21. 잡포스트. 2020년 11월 25일[18]
  22. 시사매거진. 11월 25일[19]
  23. 앤디앤뉴스. 2020년 11월 24일[20]
  24. 미디어리퍼블릭, 2020년 11월 25일[21]
  25. 교육신문[22]
  26. 하승무 동문 제10회 '자랑스런대한국민大賞'에 선정 [23]
  27. 하승무 교수 무공수훈자회 유공표창 받아, 경북하나굿뉴스[24]
  28. 매일종교신문. 2020년 3월 19일[25]
  29. 2018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부산광역시청[26]
  30. 고신대학교 선교목회대학원 하승무 동문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선정[27]
  31. 국제신문. 2018년 10월 4일[28]
  32. 톡톡뉴스. 2018년 9월 18일[29]
  33. 매일종교신문. 2018 9월 17일[30]
  34. 부산시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 수상자 선정,공정뉴스[31]
  35. 하승무 동문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선정 [32]
  36. 고신대 하승무 동문, 제34회 '자랑스러운 시민상'에 선정,코람데오닷컴[33]
  37. 자랑스런부산시민상 선정, 노컷뉴스[34]
  38. ‘한국신학교육자상에 하승무 시인’. 연합뉴스. 2018년 1월 18
  39. 종교매일신문. 2018년 1월 18일[35]
  40. 한겨레신문. 2018년 1월 18일[36]
  41. 매일경제신문[37] Archived 2021년 9월 25일 - 웨이백 머신
  42. 국제신문. 2017년 9월 13일[38]
  43. 브릿지경제. 2017년 10 12일[39]
  44. 국제뉴스. 2017년 10월 12일[40]
  45. 코나스뉴스. 2017년 9월 6일[41]
  46. 국제신문. 2017년 9월 13일[42]
  47. 국제뉴스. 2017년 10월 12일[43]
  48. 브릿지경제. 2017년 10 12일[44]
  49. 서울신문. 2017년 9월 7일[45]
  50. 코나스뉴스. 2017년 9월 6일[46]
  51. 브릿지경제[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