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
| 제품 분야 | 청량 음료 |
|---|---|
| 보유자 | 펩시코 |
| 국가 | 미국 |
| 시작 | 1898년 |
| 웹사이트 | http://www.pepsiworld.com |
펩시(영어: Pepsi)는 펩시코가 제조하는 콜라로, 펩시코의 주력 상품이다. 2023년 펩시는 코카콜라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 있는 청량음료 브랜드가 되었다.[1][2][3]
역사
[편집]

펩시는 1890년대 초, 약사인 칼렙 브래드햄(Caleb Bradham)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뉴 번이라는 곳에서 "브래드의 음료수(Brad's drink)"라는 이름으로 처음 판매를 시작하였다. 1898년 8월 28일에 "브래드의 음료수"는 "펩시 콜라(Pepsi-Cola)"로 이름을 바꾸고, 1903년 6월 16일에는 정식으로 브랜드화되었다. 펩시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펩시코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펩시라는 이름의 2가지 유래는 아래와 같다.
- 칼렙 브래드햄(Caleb Bradham)은 "펩 콜라(Pep Cola)"를 인수하여 펩시콜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 펩시는 pepse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소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탄산수, 설탕, 바닐라, 방향유, 콜라나무 등의 열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제조방법에 효소인 펩신이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4][5]
200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웰빙 트렌드 속에서 탄산음료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다. 비만과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로 판매량은 9년 연속 감소하고 있으며, 다이어트 콜라조차도 매년 7%씩 판매가 줄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에볼바' 생명공학 연구팀과 협력해 설탕을 대체할 '스테비아'를 이용한 천연 감미료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6]
글로벌
[편집]전 세계 20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는 진출하지 않았으며 쿠바·이란·러시아 시장에서는 철수한 상태이다.
- 1898년:
미국 - 1906년:
캐나다 - 1907년:
멕시코 - 1940년:
베네수엘라 - 1942년:
과테말라 - 1943년:
콜롬비아 - 1944년:
푸에르토리코 - 1946년:
필리핀 - 1947년:
파나마 - 194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쿠바 - 1949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우루과이 - 1950년:
온두라스 - 1952년:
이집트 - 1953년:
브라질,
페루,
태국 - 1954년:
이란 - 1955년:
스페인 - 1956년:
엘살바도르,
시리아 - 1957년:
프랑스,
니카라과,
사우디아라비아 - 1958년:
요르단 - 1959년: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영국,
독일,
쿠웨이트 - 1960년:
나이지리아,
홍콩,
아이티,
네덜란드,
벨기에,
파라과이,
쿠바 - 1961년:
일본 - 1962년: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코스타리카 - 1963년:
이탈리아,
덴마크,
핀란드 - 1964년:
중화민국 - 1965년:
루마니아[7],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몰타,
카메룬,
튀르키예,
볼리비아 - 1966년:
그리스 - 1967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 1968년:
아이슬란드,
키프로스,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불가리아 - 1969년:
모로코,
대한민국 - 1970년:
바레인 - 1972년:
소련,
폴란드,
이란,
튀니지 - 1973년:
체코 - 1974년:
헝가리 - 1975년:
카타르,
예멘 - 1976년:
아랍에미리트 - 1979년:
알제리 - 1980년:
오만 - 1981년:
중화인민공화국 - 1984년:
짐바브웨 - 1986년:
네팔 - 1988년:
인도 - 1989년:
스리랑카 - 1991년:
슬로베니아 - 1992년: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 1993년:
방글라데시,
벨라루스,
슬로바키아 - 1994년:
베트남,
카자흐스탄,
알바니아,
북마케도니아 - 1995년:
조지아,
아르메니아,
몰도바 - 1996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 1997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998년:
키르기스스탄 - 1999년:
가나 - 2002년:
몽골 - 2005년:
리비아 - 2007년:
캄보디아 - 2008년:
모리셔스 - 2009년:
라오스 - 2010년:
케냐 - 2012년:
,
이란
시리아 - 2013년:
미얀마 - 2014년:
수단,
탄자니아 - 2015년:
우간다 - 2016년: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 2017년:
에티오피아 - 2019년:
세네갈 - 2022년:
러시아 - 2025년:
인도네시아
브랜드 상징
[편집]펩시 글로브(Pepsi Globe)는 구 모양의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 등 디자인의 이름을 딴 펩시(Pepsi)의 로고다.[8][9]
마케팅
[편집]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20년 5월) |
- 콜라 전쟁
1970년대부터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경쟁이 심화되었다. 펩시콜라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콜라 맛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이가 바로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다. 자칫하면 브랜드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던 테스트였으나 펩시콜라는 소비자들이 코카콜라의 콜라보다 펩시콜라의 콜라의 맛을 더 선호한다는 결과를 나서 마케팅은 성공하였다. 그 결과로 잠시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보다 판매량이 높아졌다.
- 펩시맨
펩시맨(일본어: ペプシマン)은 일본 펩시 콜라의 디비전 마스코트다. 펩시맨의 특징이라면 얼굴에 눈, 코, 귀 등이 없고 오로지 입만 달려 있다는 점이다. 펩시맨은 3가지 다른 종류의 옷을 입고 나오는데 각각 현재 스타일의 펩시를 보여 준다. 1996년에는 세가 새턴의 파이터즈 아케이드 게임인 파이팅 바이퍼즈에서 펩시와의 라이선스를 받아 숨겨진 캐릭터와 주변에 펩시 로고와 함께 등장한 적 있었다. 1997년에 대한민국에서 '정철인'이라는 사람에 의해 펩시맨이라는 이름으로 도스용 게임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1999년에 펩시맨이라는 이름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의 비디오 게임도 등장하였다.
후원
[편집]- 2002년 펩시트위스트배 KPGA 투어 3차리그
- 펩시(PEPSI)배 5차 서든어택 마스터리그
- 펩시콜라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July
- 펩시콜라 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August
- One World Tegether At Home(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온라인 콘서트)
논란과 사건
[편집]- 1992년 필리핀에서 펩시코는 상품 교환 이벤트의 일환으로, 펩시, 세븐업, 미린다 병의 병뚜껑 뒷면에 세 자리 숫자를 인쇄하여 배포하는 판촉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공장의 컴퓨터 시스템에 전산 오류가 발생하여, ‘349’라는 숫자가 인쇄된 펩시 콜라 병뚜껑이 약 80만 개 이상 생산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해당 병뚜껑을 보유한 소비자들은 이를 정식 당첨으로 인식하고, 사전에 공지된 바에 따라 1인당 100만 필리핀 페소의 당첨금 지급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펩시코 측은 해당 사태가 오류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며, 대규모 당첨금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일부 소비자들에게는 위로금 명목으로 500페소가 지급되었으나, 이는 오히려 대중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 사태로까지 번졌다. 수많은 시민들이 펩시코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고, 해당 사건은 이후 펩시 넘버 피버(349 사태)로 불리며 기업 판촉 역사상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 1996년 미국에서 펩시코는 자사의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펩시 스터프(Pepsi Stuff)라는 판촉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해당 광고에서는 소비자들이 펩시 제품 구매를 통해 포인트를 적립하고, 이를 다양한 경품과 교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광고 말미에는 7백만 포인트로 맥도널 더글러스 AV-8B 해리어 II 전투기를 받을 수 있다는 장면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유머적 요소로 삽입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대학생 존 레너드는 실제로 해당 전투기를 수령하기 위해 15포인트에 해당하는 펩시 제품 구매 실적과 함께, 나머지 포인트를 금전으로 환산한 700,008.50달러의 수표를 동봉하여 펩시코 본사에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펩시코는 광고가 명백한 과장 광고이자 농담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하며, 해당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절하였다. 이에 반발한 레너드는 펩시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며, 이 사건은 이후 레너드 대 펩시코 사건(Leonard v. PepsiCo, Inc.)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펩시코의 손을 들어주며, 일반적인 시청자가 해당 광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였다. 본 사건은 미국 광고 역사상 상징적인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기업 광고의 표현 방식과 소비자 해석 간의 법적 경계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관련 브랜드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眞露(진노),청량음료계에 진출 펩시콜라 商標權(상표권)물려받아”. 경향신문. 1974년 12월 27일. 2019년 2월 24일에 확인함.
- ↑ “6월부터「펩시」本格生産(본격생산)”. 매일경제. 1975년 1월 24일. 2019년 2월 24일에 확인함.
- ↑ “펩시콜라 生産(생산)포기”. 매일경제. 1975년 5월 27일. 2019년 2월 24일에 확인함.
- ↑ Mike Gange, "Pop Culture Paraphernalia" 보관됨 2005-12-28 - 웨이백 머신, "펩시콜라 콜렉티블즈 백과사전 "
- ↑ "펩시콜라"의 역사[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Mary Bellis, about.com
- ↑ 코카콜라·펩시…생명공학과 다급히 손잡는 이유는 - 매일경제
- ↑ 첫 동구권
- ↑ “Most Powerful Logo Survey”. 2019년 7월 24일에 확인함.
- ↑ (디자인힐 -Pepsi Logo History & Its Evolution Over 100 Years)https://www.designhill.com/design-blog/evolution-pepsi-logo-design-hundred-years/
참고 문헌
[편집]- Beverage World Magazine, January 1998, "Celebrating a Century of Refreshment: Pepsi - The First 100 Years"
- Stoddard, Bob. Pepsi Cola - 100 Years (1997), General Publishing Group, Los Angeles, CA, USA
- "History & Milestones" (1996), Pepsi pack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