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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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프랑수아 카밀 페리(Jules François Camille Ferry, 1832년 4월 5일 ~ 1893년 3월 17일)는 프랑스의 정치가이다.
제3공화정 초기에 두 차례(1880~81, 1883~85)의 총리를 역임하였고 가톨릭 예수회가 좌우하던 교육제도를 개혁해 세계 최초로 의무교육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는 국방 정부에 참가하였다. 그는 공화당의 중심 인물로서, 1880년 ~ 1883년 수상이 되었다. 그는 계속 식민지 정책을 밀고 나갔지만 통킹에서 권력을 잃고 물러났으며 광신도의 손에 암살 당했다. 그는 1880년 프랑스에서 사회적 증오와 지탄의 대상이었던 예수회의 해산령을 내리고 예수회를 추방했다.[1]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 득표율 | 2차 득표수 | 결과 | 당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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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선거 | 프랑스의 대통령 | 5대 | 기회주의적 공화주의 | ![]() ![]() ![]() ![]() |
212표 | ![]() |
11표 | 3위 | 낙선 |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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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몽 파리<<예수회의비밀역사>>P126,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쥘 페리>에도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