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미에르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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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

뤼미에르 형제프랑스의 발명가 형제 오귀스트 마리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프랑스어: Auguste Marie Louis Nicholas Lumière, 1862년 10월 19일 - 1954년 4월 10일)와 루이 장 뤼미에르(프랑스어: Louis Jean Lumière, 1864년 10월 5일 - 1948년 6월 6일)를 가리킨다. 기계 제작자인 동시에 제작・흥행・배급 등 현재의 영화제작 보급형태의 선구적 역할을 한 영화의 시조이다.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하여 이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Sortie des Usines Lumière à Lyon)» ,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 등이 있다.

생애[편집]

뤼미에르 형제는 프랑스브장송에서 태어났다. 1870년리옹으로 이사해서 형제는 리옹에서 가장 큰 기술 학교인 라 마르티니에르(La Martiniere)에 다녔다. 형제의 아버지인 샤를 앙투안 뤼미에르(1840년-1911년)가 운영하는 사진 회사에서 루이는 기술자로, 오귀스트는 경영자로 일했다. 루이는 고정 사진 인화에 몇 가지 발명을 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건판 기법(dry-plate process)으로 이것은 움직이는 이미지를 나타내는 데 큰 발전이었다.

형제가 활동 사진을 만든 것은 아버지가 은퇴한 1892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필름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기법들로 특허를 많이 얻었다. 특히 필름 퍼포레이션(perforation, 원래 에밀 레이노가 고안한 것으로 필름 양 가장자리 또는 한쪽에 뚫어진 연속된 작은 구멍을 일컫는다.)은 필름을 카메라와 프로젝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1895년 2월 13일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하여 특허를 받았으며, 이를 이용해서 처음으로 찍은 것은 그해 3월 19일로 기록되어 있다.

실업가로서의 수완과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부족했던 형제는 실사영화(實寫映畵)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흥행이 벽에 부딪치자 2년 뒤 영화에서 손을 떼고 평생을 컬러 사진 및 입체 사진 연구에 몰두하였다.

세계 최초의 영화[편집]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영화사인 고몽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 이때 상영된 세계 최초의 영화는 <<열차의 도착>> 이라는 3분의 짧은 내용의 작품이였다. 이 영화는 아무런 스토리도 없이 단순히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19세기 후반의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를 본 카페의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고, 스크린에서 열차가 올 때, 진짜로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여 '으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고 한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화는 다음해인 1896년베를린, 런던 등 유럽 주요 도시에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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