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녕 (18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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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녕(李麟寧, 1800년 8월 28일 ~ 1883년 11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 통역관이다. 초명은 일령(馹寧), 자는 공유(公游)이고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태화 이현상의 아들이고, 이기녕 분서 이봉녕의 친동생이다. 다른 이름은 이인녕(李獜寧)이다.

생애[편집]

아버지는 태화 이현상(太華 李顯相)이고, 어머니는 풍양조씨(豊壤趙氏)로 관찰사 조성보의 5대손 조기영(趙基永)의 딸이다. 초명은 일령(馹寧)으로 그의 형 이봉녕이기녕의 사마방목 입격자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일령으로 되어 있다. 1876년(고종 13) 이후에 이름을 개명하였으나 개명 시점은 알 수 없다.

아버지 태화 이현상은 순조 초기의 문신으로 일본에 파견되는 조선 통신사 김이교, 이면구의 제술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맏형 이학녕은 초기에 문중의 족보 편찬에 간여했으나 일찍 죽었고, 둘째 형 이기녕은 78세의 고령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셋째 형 이봉녕은 1826년 동지사의 부사와 1836년에는 동지정사로 청나라를 다녀온 신재식의 수행원이었으며 문인으로도 활동했다. 구한 말의 판사, 검사인 이휘선은 형 봉녕의 손자로, 그의 종손자가 된다. 그밖에 승문원의 관원으로 활동한 이유녕(李裕寧)은 10촌 동생이 된다.

1879년 3월 5일 승문원의 천거로 탈이 생긴 이문학관 이우(李堣) 대신 승문원이문학관에 임명되었다.[1] 3월 27일 탈이 생겨서 체차되었다.[2] 3월 29일 병비로 부사맹(副司猛)에 임명되었다.[3] 다시 승문원 이문학관이 되었다. 1880년(고종 17년) 1월 3일 다시 이문학관(學官)으로 재직 중 나이 80이 넘은 관원들을 가자할 때 통정(通政)에 가자되었다.[4] 1880년 1월 13일호군(副護軍)에 임명되었다.[5] 1883년 통정대부 돈녕부도정이 되었다.

묘소는 광주 언주면 내동(內洞), 현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자좌(子坐)에 부인 양주조씨와 합장되어 있다.

가족 관계[편집]

관련 항목[편집]

각주[편집]

  1. 승정원일기 고종 16년 기묘(1879) 3월 25일(기사)자, 16번째기사, "탈이 있는 이문학관 이우를 개차하고 후임에 유학 이인녕을 차하할 것을 청하는 승문원의 계"
  2. 승정원일기 고종 16년 기묘(1879) 3월 27일(신미)자 13번째기사, 탈이 있는 이문학관 이인녕을 개차하고 후임에 유학 한백영을 차하할 것을 청하는 승문원의 계
  3. 승정원일기 고종 16년 기묘(1879) 3월 29일(계유)자 28번째기사, "병비의 관원 현황"
  4. 靑又日錄, 庚辰(高宗一七年·1880)
  5. 승정원일기 2871책 (탈초본 132책) 고종 17년 1월 3일 신미 17번째기사, "병비의 관원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