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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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의 성지'라 불리는 도쿄도 지요다 구 아키하바라

오타쿠(일본어: オタク、おたく、ヲタク)는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일본어로, 주로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팬들을 의미한다. 접미사로도 쓰이며 열중해 있는 소재 다음에 '~오타' 식으로 종종 사용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오타쿠라는 단어는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가 잡지 망가 부릿코(漫画ブリッコ)에 개재한 에세이에서 유래했다.[1][2] 오타쿠는 경멸적인 의미에서 사용될 수도 있다; 이는 1989년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사회적 선입견 등으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를 띈다. 하지만 그 이후 2013년의 연구 결과, 일본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감소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오타쿠로 정의하고 있다.[3] 대한민국에서는 오덕후라 부르기도 하며[4] 비슷한 표현으로 '~덕', '~덕후'등의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비슷한 의미로 너드, 등이 있으며, 특정 대상에 크게 빠져 있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상통한다.

오타쿠 하위문화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만화, 다큐멘터리, 연구의 주제가 되고 있다. 오타쿠 문화는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받는 개인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학교 문화와 함께 이루어진 사회적 변동으로 발생하였다. 오타쿠 문화의 발생은 오타쿠가 코믹마켓 등으로 결집하기 이전 기동전사 건담 등의 작품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붐과 동시에 일어났다. 오타쿠의 정의는 이후 더 넓어져, 다양한 분야의 오타쿠들도 생겨났다. 2005년, 노무라총합연구소(野村總合研究所)에서는 오타쿠들을 12개 분류로 나누어 각각의 규모와 경제적 파급력을 분석했다. 특정 분야에 집중된 다른 연구들과 함께, 여기에서는 애니메이션, 만화, 아이돌, 자동차, 전자기기 등의 대상을 기준으로 오타쿠를 분류했다. 여기에서 일본 내 오타쿠의 경제적 파급력의 총 규모는 최대 2조 엔 규모로 추산되었다.[5]

어원[편집]

오타쿠라는 단어는 일본어에서 2인칭의 집이나 가족을 의미하는 존칭(お宅)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이 동호인들이 취미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상대를 오타쿠라고 부르면서 변화했다는 설이 있다.[4] 어원과는 다르게 히라가나(おたく)나 가타카나(オタク, 드물게는 ヲタク), 드물게는 로마자로 쓰이는 현대의 속어는 1980년대에 등장했다. 미키모토 하루히코(美樹本晴彦)나 카와모리 쇼지 등의 애니메이터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들을 가리킬 때 존칭으로서의 오타쿠를 사용해 왔다. 1982년에 처음 방송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는 링 밍메이가 오타쿠를 존칭으로 사용했다.[6][7] 오타쿠의 속어화는 에세이 작가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가 1983년 로리콘 잡지 망가 부릿코(漫画ブリッコ)에 개재한 "오타쿠"의 연구(『おたく』の研究)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8]

1989년,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은 오타쿠들이, 매우 부정적으로, 국가적 주목을 받게 만들었다.[9] 여아 4명을 살해한 미야자키는, 피해자들의 영상 및 사진들과 함께 애니메이션과 슬래셔 영화를 포함한 5,763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해에, 정보지 별책 다카라지마(別冊宝島)는 제104권에서 오타쿠를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이 책은 이후 '오타쿠의 책'(おたくの本)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오타쿠라는 단어는 이후 일본에서 빠르게 퍼져 널리 사용되었으나, 1990년대에는 사회 부적응자를 의미하여, 반감이 담긴 경멸적인 어조로 사용되었다.

오타쿠는 이나 너드와 비슷해 보이지만, 2000년대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 팬들이, 더 일반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자신들을 지칭할 때 사용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팬덤 외부에서 팬들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

정의[편집]

현대 일본어 속어로서의 오타쿠는 ""이나 "너드"와 비슷하지만, 그 어떤 특정 분야, 주제, 취미 등의 과도 관련될 수 있다.[9] 오타쿠의 정의는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때에 따라 다르며, 논자에 따라 말의 의미가 일정하지 않다. 세속적으로는 모에, 아키바계라는 키워드와 강하게 묶이는 경우가 많다. 사전적으로는 어떤 취미,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만, 이 그외의 광범위한 지식, 또는 사회성, 사교성은 결여되어 있는 인물로 설명된다. 이와 같이 의미가 모호한 이유는 일단 기준과 의미가 분명하게 정의되지 않은 채로 말이 생겼기 때문이고, 거기에 점점 여러 의미가 덧붙여지고 이로 인해 뜻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오타쿠란 모두 '한 분야에 심취한 사람'을 뜻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매니아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오타쿠와 매니아의 차이점은 분야와 강도의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여행, 카메라, 패션 등을 제외하고 크리에이터가 창조한 것에 열중하는 사람들, 특히 서브컬처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한정해 구분한다.[4]

에티엔 바랑은 자신의 저서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돌》에서 상품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걸을 초월하고 변형시키고 적응시켜 충분히 자기 것으로 만든다고 오타쿠와 단순한 수집가의 차이점을 설명했다.[10] 오타쿠는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와도 비교, 대조된다.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 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히키코모리는 철저하게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것에 비교하여 오타쿠는 자신과 같은 취향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결집한다는 점이 히키코모리와의 차이점이다.

분류[편집]

아키바계는 지명인 아키하바라에서 따 온, 아키하바라의 문화에 친숙한 "아키하바라계"를 의미한다. 부녀자는 남성 간 동성애를 다루는 야오이의 팬들이 자신들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용어이다.[11]

의의[편집]

초창기 시대에는 오타쿠들은 일본의 게임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긍정적인 비판을 많이 하여 일본의 게임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현재는 범위가 더욱 확장되어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계열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서브컬처 분야에 빠져있고 소비 및 재창조(동인활동 등을 통해. 2차 창작활이라고도 한다)하는 모습도 많다. 이 동인동은 주로 코미케라고도 불리는 코믹마켓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일본의 거품경제의 붕괴 시기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만화, 게 관련 일본의 컨텐츠 비즈니스는 오히려 성장을 했고 그 이유로 오타쿠가 컨텐츠 산업의 성장을 위한 기반수요를 창출해 주목받게 되고 대중들이 오타쿠에 활약이 알려져 일본 사회에서의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의 전환 있었으며 최근에는 한 애니메이션에 의해 한 마을에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성지 순례와 현지에서의 마을 부흥 이벤트도 있으며 일본의 서브컬처를 접한 다른 나라의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의 오타쿠도 늘어났다. 그 때문에 아키하바라와 같은 오타쿠들의 성지라 불리는 지역은 외국인의 관광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대중에게 알진 계기는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이였으며 요즘은 성적 지향의 매체(성인 동인지성인용 게임)에 빠진 오타쿠도 많아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

게임 프로듀서 사토 요시노리는 "오타쿠는 취미의 학자다. 끊임없이 관심사에 대해 공부하기 때문에 때로는 나 같은 게임 개발자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단순한 소비를 넘어 2차 창작을 하면서 문화발전을 위한 창의성과 독창성을 만든다. 오타쿠가 특정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해 양적 효과뿐 아니라 콘텐츠 산업의 질적 향상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래상상연구소 홍사종 대는 오타쿠에 대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대중적인 하위문화를 통해 문화산업화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커 돌고 도는 문화의 흐름에서 타문화 소비와 같은 그들의 단면으로 부정적 판단을 하는 것은 과민반응이다."라며 "하지만 전문화(傳文化)를 포장해 자기만의 세에 빠져 세상을 보지 않는 사회적 오타쿠는 전문성에서 전반적 이해로의 문화패러다임이 넘어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회에 소통부재와 갈등촉진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월간 조선 인턴기자 승민함은 월간 조선 2월호에 게재한 〈사회 부적응 변종인가, 新문화의 리더인가〉칼럼에서 오타쿠에 대해 현행 법질서를 흔들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변종적 사회부적응자라는 인식과 새로운 문화의 리더라는 가능성의 경계선 위에서 오타쿠에 대한 논쟁은 거세지고 있다. 결국 오타쿠를 어떻게 대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길 수 밖에 없다."라고 평가했다.[4]

대한민국에서의 오타쿠[편집]

대한민국의 오타쿠 문화는 1980년대 말 PC통신에서 일본의 대중문화를 자발적으로 소개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12] 오타쿠라는 표현은 1990년대 PC통신을 통해 들어왔고, 2005년 디시인사이드 애니메이션 갤러리에서 이를 변형한 표현인 ‘오덕후’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으며, 언론에서 ‘오덕후’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9년 말이다.[13] 정치권 내에서는 2009년 11월 30일, 사회당이 오타쿠의 정치적 주체화를 기치로 하여 당내 위원회인 ‘사회당 덕후위원회’를 결성한 적이 있었으며, 이는 정당 내에 오타쿠를 위해 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서는 세계 최초라고 여겨진다.[14]

오타쿠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 1월 27일 방영된 《화성인 바이러스》를 통해서이다. 해당 방송에서 ‘오덕페이트’라 불리는 남성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의 등장인물 페이트가 그려진 베개를 들고서 해당 캐릭터와의 결혼 의지를 밝히는 등 화제가 되었다.[15][16] 이 방송 이후 대중이 오타쿠에 대해 지니는 인식에는, 어떤 분야에 파고들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기존의 개념에 더하여, 사회성이 결여되고 비상식적인 취향을 지닌 사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덧입혀졌다.[13][17]

2010년대 중반에 들어 몇몇 연예인들이 오타쿠임이 드러나기도 하고, 굳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특정 대상에 조건 없이 몰입하는 모든 사람이 오타쿠로 재정의되면서, 오타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확산되었다.[18]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2015년 11월 오타쿠를 다룬 최초의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이 방송되었으며, 이 방송은 각 분야에 심취하고 전문적 지식을 보유한 오타쿠가 출연하는 내용이다.[13]

2001년, 일본의 문화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에 관해 이론적으로 저술한 저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출간한 것을 비롯해 90년대 말 오타쿠에 관한 심층적 연구가 이뤄진데에 이어 대한민국에서도 2013년 10월 인문학협동조합이 열었던 ‘오덕인문학’을 비롯하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집계[편집]

현재 오타쿠 인구 수를 정확히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디까지 오타쿠로 규정할지 모호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 오타쿠인지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본인이 오타쿠가 맞다고 답하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노무라 증권 계열인 노쿠라종합연구소가 콘텐츠 산업 상품 판매를 조사해 2005년 10월 7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일본 안에 있는 오타쿠는 모두 172만여 명이며, 오타쿠 시장은 약 4100억 엔(약 4조원) 규모라고 한다.[4][19]

연구 · 평론서[편집]

  • 2000년. 오카다 도시오, 《오타쿠 - 21세기 문화의 새로운 지배자들(オタク学入門)》
  • 2001년.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オタクから見た日本社会)》
  • 2002년. 에티엔 바랄, 《오타쿠 - 가상 세계의 아이들(Otaku les Enfants du Virtuel)》
  • 2005년. 사이토 다마키,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 분석 - 은둔형 외톨이 전문의가 파헤치는 '지금 여기'의 사춘기 현상학(博士の奇妙な思春期)》
  • 2007년. 아즈마 히로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ゲーム的リアリズムの誕生―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2)》
  • 2010년. 이진천, 《21세기 신문화의 리더,오타쿠 - 컨텐츠 왕국 일본뒤에는 오타쿠가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おたく』の研究(1) 街には『おたく』がいっぱい 中森明夫 (1983年6月号) (일본어). Burikko.net. 
  2. “Otaku Research #1 "This City is Full of Otaku" by Nakamori Akio (Translated by Matt Alt)”. Néojaponisme. 
  3. Michael Jakusoso (2013년 4월 27일). “自分のことを「オタク」と認識してる人10代は62%、70代は23%” [62% of Teens identify as "otaku", 70's 23%]. Mynavi. 2013년 7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월 31일에 확인함. 
  4. 승민함 (2011년 2월). “사회 부적응 변종인가, 新문화의 리더인가”. 월간 조선. 2011년 2월 15일에 확인함. 
  5. “Otaku Business Gives Japan's Economy a Lift”. Web-Japan.org. 2005년 8월 30일. 2018년 1월 31일에 확인함. 
  6. May 2006 issue of EX Taishuu magazine
  7. オタク市場の研究(오타쿠 시장의 연구), 野村總合研究所(노무라총합연구소), ISBN 978-986-124-768-7
  8. 에티엔 바랑.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문학과지성사. 34쪽. 
  9. Morikawa, Kaichirō (2012년 4월 20일). “おたく/ Otaku / Geek”. Center for Japanese Studies UC Berkeley. 2013년 8월 13일에 확인함. 
  10. 에티엔 바랑. 《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문학과지성사. 68쪽. 
  11. Saitō Tamaki (2007). 《Robot Ghosts and Wired Dream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24쪽. ISBN 978-0-8166-4974-7. 
  12. 서찬휘 (2017). 《키워드 오덕학》. 서울: 생각비행. 30쪽. ISBN 9791187708117. 
  13. 정원식 (2016년 1월 22일). “[커버스토리]떳떳해진 덕후들 “우린 루저 아닌 능력자””. 경향신문. 2017년 7월 2일에 확인함. 
  14. 정용인 (2009년 4월 23일). “[언더그라운드 넷]세계 최초로 '덕후' 정당위원회 결성됐다”. 주간경향. 2017년 7월 2일에 확인함. 
  15. 백민재 (2017년 1월 16일). “日애니 덕후의 빗나간 사랑…오덕페이트 결국 쇠고랑”. 한국경제. 2017년 7월 2일에 확인함. 
  16. 서찬휘 (2017). 《키워드 오덕학》. 서울: 생각비행. 24쪽. ISBN 9791187708117. 
  17. 서찬휘 (2017). 《키워드 오덕학》. 서울: 생각비행. 25쪽. ISBN 9791187708117. 
  18. 서찬휘 (2017). 《키워드 오덕학》. 서울: 생각비행. 34-35쪽. ISBN 9791187708117. 
  19. ““한번 빠지면 돈 펑펑”… 日 ‘오타쿠’ 172만명이 경제 좌우”. 동아일보. 2005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