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가야연맹은 구야국을 중심으로 42년부터 400년까지 형성된 연합 집단이다. 209년포상팔국이 쳐들어 오자 신라에 도움을 청하고 물계자 장군의 공으로 물리쳤다. 하지만 400년 가야 연맹이 신라를 침공했다가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은 광개토왕의 고구려의 역습으로 패망하여 해체되고 후기 가야연맹- 대가야가 반파국을 중심으로 5세기 후반에 형성되었는데, 안라국은 대가야의 남부 중심세력으로 자리잡았다.대가야가 신라에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자 남가야는 대가야를 무시하고 안라국을 중심으로 자구책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때 안라국은 백제·신라·왜의 사신을 초청하여 회의를 열었지만 통합의 움직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신라국은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켜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되어 제 1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안라국은 540년에 가야의 중심세력이 되어 외교적으로 신라·백제와 접촉하면서 안전을 요구하였으나 백제 때문에 실패하였다. 이에 안라국은 고구려와 밀통하여 548년에 고구려·백제간의 독산성전투를 유발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고구려가 패함으로써 안라국을 비롯한 가야지역은 다시 백제의 세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뒤 신라가 550년대에 한강유역 전투에서 한강유역 분할을 조건으로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물리친다. 신라는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물리침과 동시에 한강유역 분할이라는 백제와의 약속을 깬후 백제군을 몰아내고 한강유역을 강제 점령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가야지역에 대한 병합에 착수하자, 안라국은 559년에 신라에 항복하여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안라국의 경제는 남강연안의 평야지대를 기반으로 풍부한 농업생산력이 1차 기반이 되었다. 가야연맹의 중심이자 당시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허브였던 구야국의 배후에서 가야내륙의 교역을 중계하기도 하고 마산 진동일대를 영역하에 넣고 중국이나 일본등으로 직접 교역을 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공업은 군북일대에 직접 철광과 동광(銅鑛)을 운영하면서 제철산업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