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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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야(古寧伽倻)는 6가야 중 유일하게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가야 소국이다. 유물이나 유적이 없어서 사회, 경제, 문화, 정치 등에 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일부 기록을 바탕으로 위치만 추정될 뿐이다.

고령가야의 실체[편집]

고령가야는 실제 가야 소국과는 무관할 뿐더러, 고령가야가 있었다는 옛 함창군(현재의 상주시 함창읍, 공검면, 이안면) 지역은 원래부터 신라의 영역(진한사벌국지역)에 속했다. 신라 첨해왕 대에 사벌국을 정벌하여 사벌주를 설치하면서 함창읍 일대에 고동람군(古冬攬郡) 또는 고릉군(古陵郡)을 설치하였고, 이 고동람군이 757년 경덕왕 16년의 행정개편으로 고령군(古寧郡[1])으로 개명하면서 "고령"으로 불리었으므로, 고령가야라는 이름 자체가 가야와는 무관하다.

신라 말기에 신라의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고령(古寧) 지역의 호족세력이 그 명분으로 가야를 참칭했고, 그 후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 5가야의 명칭을 변경하면서 "고령가야(古寧伽倻)"라는 이름이 부여되어 옛 가야소국 중에 하나인 양 와전되었다. 즉, 고령가야라는 나라 이름이 생겨난 것은 가야 시대로부터 한참 후대인 고려 초의 일이었던 셈이다. 다만, 가야 패망 이후 충주 일대에서 활약한 우륵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다수의 가야인들이 가야에서 북쪽 지역으로 이주당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함창 일대의 호족세력들이 이주한 가야인의 후예일 가능성은 있다.

고령가야(古寧伽倻)가 있었다는 상주시 일대에서는 가야와 관련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온 적이 없고 문헌상으로도 고령가야가 실제로 가야 시대에 함창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보니, 이병도는 고령가야를 지금의 거창군으로, 진주시는 가야시대에 자타국(子他國)이라는 가야소국의 영역이었다. 자타국은 후에 백제가 점령해 거타성(居陀城)이 되어 백제의 경상도 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다가 신라에 흡수된 후 강주가 되었다.

각주[편집]

  1.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과는 한자가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