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 더 칠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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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전 세계의 빈곤아동을 돕는 국제 기구이다. 1919년 영국에서 설립됐으며 교육과 보건, 경제적 지원을 통해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를 주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28개국 이상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국가 간 전쟁이나 재난 등일 경우에도 응급구호팀을 파견한다.

오늘날에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세계 최대의 비영리기구로서 120여 개국 이상에서 국제세이브더칠드런연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7년 스위스제네바에서 설립됐다가 1997년 본부를 런던으로 옮겼다.

역사[편집]

처음 역사[편집]

세이브더칠드런은 1919년 에글렌타인 젭 여사와 그녀의 동생 도로시가 설립하였다. 그들의 당시 목표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원래는 기아위원회의 일부였으나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기아 문제에 관여하면서 아동 기금을 출범하고 전쟁 기간 동안 식량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였다. 1년 뒤 스웨덴에서도 Rädda Barnen(똑같은 의미의 뜻)이라는 단체가 출범하면서 함께 자매 기구로서 활동하게 됐고 이러한 연합체는 여러 국가에도 영향을 끼쳐 국제 아동보호 협회(International Save the Children Union)를 1920년 제네바에 설립한다.

당시 세이브더칠드런이 내세운 어린이 복지 모금 방식은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어서 영국역사 최초로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실어 모금운동을 진행하였다. 오래 되지는 못했지만 서유럽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그리스-터키전쟁(1919-1922)과 1921년 러시아 대기근 때에도 모금행사를 진행했다.

어린이 인권운동[편집]

1920년대 중반에 와서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자선기관으로 발전하기 위한 문제에 봉착했다. 전쟁이 끝나면서 기금 모금에 절대적 타격이 온 것이다. 이에 젭 여사는 어린이들의 권리에 대해 인식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발표문을 국제연맹에 제출, 1924년 정식 채택됐으며 이후 1989년 국제연합이 젭 여사의 초안문을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일부로 공표함에 따라 전 세계의 어린이들의 인권을 위한 초석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발표문이 선언문으로 격상되면서 기구 전체의 운영에도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1929년 그녀가 죽고 유럽 내부의 정치적 양상이 격화됨에 따라 잠시 동안의 침체기를 겪는다. 1936년에는 에티오피아간호학교를 설립하고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 어린이 인권을 위한 협의회를 열기도 했다. 같은 해에는 경제 대공황에 따른 어린이 실직 문제와 실태에 대해 고발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가 끝나갈 무렵 유럽 전역은 극도의 긴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보수진보간의 이념대립인 스페인 내전의 희생양이 된 어린이들을 구출하고 나치유대인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난온 유대인 피난민들을 보호하는 것도 그들의 과제가 되었다. 때문에 전쟁 중의 어린이 권익 보호에 대한 협약 추진이 구상되기도 했지만 2차 세계 대전으로 송두리째 사라지고 말았다.

1950년대에는 한국 전쟁, 헝가리 혁명, 아프리카아시아, 서아시아 등을 비롯한 전 대륙에서 전쟁, 기아 등 재난이 발생함에 따라 구호 문제에 심각성이 커졌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대영 제국의 몰락이 하나의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나이지리아 내전 등으로 더욱 활동 범위가 넓어졌으며 참혹한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서방 세계에 사상 최초로 텔레비전 전파를 타게 함으로써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20년대처럼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러한 노력을 통해 기금 모금에 탄력을 받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됐다.

주석[편집]

관련 영상[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