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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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당근의 모습.

마르코프차 또는 마르꼬프채(고려말: марков-ча)는 고려인들이 대신에, 채썬 당근으로 담근 김치이다.

명칭[편집]

고려말 "마르코프차(марков-ча)"는 러시아어로 "당근"을 뜻하는 "모르코프(морков)"에 "반찬"을 뜻하는 한국어 "채(菜)"를 붙인 말이다. 러시아어권에서는 흔히 한국식 당근(러시아어: морковь по-корейски 모르코피 포코레이스키[*]) 또는 한국식 당근 샐러드(우즈베크어: Koreyscha sabzili salat 코레이스차 사브질리 살라트)으로 불린다.

역사[편집]

20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베이징 조약으로 인해 청나라에게서 연해주를 받게 되었다. 한편 조선에서는 의 침략으로 전봉준의 난 등 계속 반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흔들린다. 그러자 평안도함경도의 주민들은 마을 단위로 크게 러시아 제국 연해주로 이주를 하게 된다.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는 청나라와 상관도 없는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유럽쪽에서 연해주까지 이주하는 사람은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의 국력이 약해지며 정부가 무너지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반대파 세력, 소비에트 정권이 모스크바러시아 제국의 중심지를 집어 삼키고, 차르를 숭배하는 러시아 제국을 완전히 제거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즉,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탄생한다.

대일본 제국은 이미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으며, 소련연해주대일본 제국에 대한 위험이 더욱 커지고 만다. 이즈음 소련인들은 고려인들과 일본인들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결국은 소련 정부에서는 고려인들을 끈임없이 신경을 써야 했는데, 1922년 이오시프 스탈린소련의 최고 권력자로 즉위하고, 1937년부터 이오시프 스탈린대숙청이 일어나며 대일본 제국에게 충분한 위험이 있는 연해주고려인들을 이오시프 스탈린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다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18만 고려인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다는 실용성 없는 정책의 소문만 돌았다. 그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중앙아시아고려인들을 강제이주시키는데, 이때 고려인들은 화장실과 창문도 없는 화물차에 태워져 1달여간을 이동했다.

정차는 하루에 두번뿐이었고, 이때 고려인들은 철로길에 앉아 볼 일을 해결한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중앙아시아에 모두 흩어졌으며, 화물차를 타고 오는 도중 약 18만여명 중 3만여명이 사망했고, 중앙아시아의 첫 겨울을 보내며 많은 고려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악착같이 농사에 성공해 농사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김치를 담글 재료가 없었다. 고려인들은 대부분 평안도함경도 출신이었는데, 이곳은 주로 무로 김치를 담근다. 덕분에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에서도 농사가 되며 와 같은 뿌리 채소중 와 가장 비슷한 당근으로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고, 느끼한 중앙아시아의 음식과 조합이 잘 맞아 구 소련인들에게도 받아들여져 맛있다는 이유로 소련전역으로 퍼졌고, 구 소련 출신의 사람들은 자기가 알던 당근 김치가 한국에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