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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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
(東萊鄕校)
대한민국 부산광역시기념물
종목기념물 제61호
(2013년 5월 8일 지정)
면적건물 11개동/보호구역 6,195m2
시대조선시대
소유(재)부산광역시향교재단
위치
동래향교 (대한민국)
동래향교
주소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좌표 북위 35° 12′ 27″ 동경 129° 5′ 2″ / 북위 35.20750° 동경 129.08389°  / 35.20750; 129.08389좌표: 북위 35° 12′ 27″ 동경 129° 5′ 2″ / 북위 35.20750° 동경 129.08389°  / 35.20750; 129.08389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동래향교(東萊鄕校)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향교이다. 2013년 5월 8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다.

연혁[편집]

처음 세워진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조선 초 유교 교육 진흥책의 일환으로 지방에 향교를 세울 것을 장려하는 태조의 교서를 받들어, 와성(臥城)[1]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8년(1605년)에 중건하였다.

숙종 31년(1705년)에 관노산(官奴山) 아래로 옮겼다가 영조 21년(1745년)에 읍성 동문 밖으로 다시 이건하였다. 정조 9년(1785년)에 지곡동(池谷洞)[2]으로 이전하였으며, 순조 12년(1812년)에 최종적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졌다.

국가에서 토지와 서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70인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향교 자체의 교육기능은 사라지고 대신 동인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학기능을 이어가고 있으며, 평생교육원을 인가받아 한문전문 교육기관으로 역할하고 있다.

1951년(신사) 12월 동래향교가 피난온 심산 김창숙과 함께 전국유림대회를 개최하여, 성균관대학을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문제와, 동 · 서무에 봉안되어 있던 중국 학자 72현을 매안(埋安하고 우리 학자 18현을 대성전으로 이안할 것을 제안하여 결의하였다.[3] 이때부터 전국 향교의 대성전에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해동 18현(海東十八賢)의 위패를 대성전에 봉안하였는데, 동래향교 대성전도 이에 따랐다. 2005년 전국 최초로 여성의 대성전 출입 및 여성 장의 선임을 허용하였고, 동시에 대성전을 상시 개방하였다. 음력 2월과 8월의 초정일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이때 성균관을 제외한 전국향교중 유일하게 문묘제례악이 함께 연주된다.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1985년에 향교의 고문서를 정리하던 도중에 《동래향청고왕록》과 《동래향교고왕록》이 발견되었는데, 조선 후기 동래 지역의 향반(鄕班)들의 동향 연구나 대일(對日) 수출 공작미(公作米) 연구의 기본 사료이자 1784년 동래향교 이건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1급 사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두 자료 모두 필사본으로서 유일한 자료이므로 서지학적으로도 귀중한 가치가 있으며 부산(동래)의 지방사, 지역사 연구와 지방교육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도 유용하다.

2013년 이 향교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4]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건물[편집]

문묘와 명륜당을 직선상에 배치하는 일반적인 향교 배치와는 달리 동서로 구분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좌측의 반화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명륜당이 있고, 그 좌우 뜰에 동서 양재가 있으며, 우측의 외삼문을 들어서면 다시 내삼문이 있고, 이를 지나 대성전과 동서 양무에 이르게 된다.

대성전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향교를 중건할 당시 동래부사 홍준(洪遵)이 건립하였다. 1611년(광해군 3)에 조존성(趙存性)과 1685년에 유지발(柳之發)이 중수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2010년 해체복원한 바 있다. 2013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
명륜당
2013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반화루(攀化樓)
현종 6년(1665년)에 동래부사 안진(安鎭)이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門樓)로서,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동·서 무(廡)
인조 19년(1641년) 동래부사 정호노(鄭好怒), 1672년에 이하(李夏)가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동·서 재(齋)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동재 쪽에는 역대 동래부사들이 세운 흥학비(興學碑)들이 모여 있다.
외삼문(外三門) · 내삼문(內三門)
효종 7년(1656년)에 동래부사 한진기(韓震琦)가 건립한 것으로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며,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문밖 길가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서있다.
좌우 협문(夾門)

보관 문적[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이다.
  2. 지금의 내성초등학교 자리이다.
  3. 동래향교지. 신사년유림대회록.
  4. 성균관과 향교의 으뜸 지위.

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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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향교지 : 대성전 상량문p445, 2009,동래향교]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