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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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효(金克孝, 1542년 9월 16일 ~ 1618년 2월 3일)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희민(希閔)이며 호(號)는 사미옹(四味翁), 본관은 (신)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지낸 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된 김생해(金生海)와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의 셋째 아들이었다.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 서윤공파(庶尹公派)의 파조(派祖)이다. 직계후손(直系後孫)으로 문과급제자(文科及第者)가 120여명에 이르고 대제학(大提學)이 6명 왕비(王妃)를 3명 배출 하였으니 장동 김씨(壯洞 金氏)의 대표적인 선조로 손꼽힌다. 광해군의 왕비 문성군부인의 이모부이기도 하다.

생애[편집]

아버지는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지낸 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追贈)된 김생해(金生海)와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의 네 아들 중 셋째 아들로 중종 37년(1542)임인 9월16일 출생하였다.

명종(明宗) 19년(1564) 23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여 선조 37년 갑진(1604) 4월 22일 제용감정(濟用監正)이 되었고 돈녕부 도정(都正),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使) 등을 지냈다. 광해군 10년(1618) 무오 2월 3일 77세로 세상을 떠난 뒤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배위는 임당 정유길(鄭惟吉)의 딸인 정경부인 동래정씨로 1542년(임인년) 11월 24일 태어나 1621년(신유년) 11월 8일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다. 후손으로는 우의정 김상용, 장단부사 김상관, 진사 광능참봉 김상건, 좌의정 김상헌, 경주부윤 김상복 5형제가 있다.

  • 신 안동 김씨가 권력의 기반을 잡은 것은 광해조 때 도정을 지낸 김극효(金克孝)가 좌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임당 정유길(鄭惟吉)의 사위가 되면서였다. 광해군의 장인(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인 유자신(柳自新)또한 정유길의 사위이므로 유자신 김극효은 동서간이 되며, 정유길은 광해군의 처외조부이고 김극효는 광해군의 처이모부가 된다. 또한 광해군의 처남이기도 한 유자신의 아들 희분 희발형제와 김극효의 아들 상용 상헌형제는 이종사촌간이 되므로 이로써 서서히 권력의 터를 다지게 되었다.

가계[편집]

  • 할아버지 : 평양서윤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김번(金璠)
    • 아버지 : 신천군수 증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 김생해(金生海)
      • 형님 : 삼가현감 증영상 김대효(金大孝)
      • 형님 : 군기시정 증이조판서 김원효(金元孝)
      • 부인 : 동래정씨
        • 장남 : 우의정 선원 김상용(金尙容)
          • 손자 : 증좌승지 김광형(金光炯)
          • 손자 : 돈녕부도정 김광환(金光煥)
          • 손자 : 이조참판 부제학 김광현(金光炫)
        • 차남 : 장단부사 김상관(金尙寬)
          • 손자 : 동지중추부사 증 의정부영의정 김광찬(金光燦) - 김상헌의 양자로 감
          • 손자 : 동부승지 증영의정 김광혁(金光爀)
        • 삼남 : 진사 광능참봉 김상건(金尙謇)
        • 사남 : 좌의정 청음 김상헌(金尙憲) - 김대효의 양자로 감
        • 오남 : 경주부윤 김상복(金尙宓)

기타[편집]

  • 광해군의 비 문성군부인의 이모부로, 가까운 외척이었지만 광해군 폐출 후 그의 후손들은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