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야 티모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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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야 티모셴코
Юлія Володимирівна Тимошенко
율리아 티모셴코
율리아 티모셴코
우크라이나제18, 19대 총리
임기 2007년 12월 18일~2010년 3월 3일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임: 빅토르 야누코비치(제17대)
후임: 미콜라 아자로우(제20대)

신상정보
출생일 1960년 11월 27일(1960-11-27)(63세)
출생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기 우크라이나 SSR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정당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
종교 우크라이나 정교회(Ukrainian Orthodox)

율리야 볼로디미리우나 티모셴코(우크라이나어: Юлія Володимирівна Тимошенко, Yulia Volodymyrivna Tymoshenko, IPA: ['julijɑ ʋɔlɔ'dɪmɪriʋnɑ tɪmɔ'ʃɛnkɔ], 결혼 이전의 성: 흐리햔(우크라이나어: Григян), 1960년 11월 27일 ~ )는 우크라이나의 여성 정치인이다. 2004년 오렌지 혁명 때의 주요 인물이며, 전 우크라이나총리이다.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 동부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라트비아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지역 공장에서 직원으로 일하다가, 페레스트로이카 열풍 속에 1989년 비디오 대여점을 차렸다. 소련 붕괴 후 대여점은 대형 체인으로 키워 내며 사업 수완을 발휘했고, 그 후 에너지 관련 기업을 경영하였다. 1995년 ~ 1997년 국영인 연합에너지시스템 사장을 지내며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와 석유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에너지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1999년 부총리를 맡아 빅토르 유셴코 밑에서 에너지 민영화 작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기존 정치 세력과의 알력이 깊어지면서 2001년 1월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은 그를 해임했으며, 곧 공문서 위조와 탈세 혐의로 기소되었다. 같은 해 유셴코와 함께 쿠치마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2002년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을 창당하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다시 당선되었으며, 국민의 인기가 높았다. 2004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은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낙선했다는 발표가 있자, 부정선거에 불복하여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는 오렌지 혁명으로 불리며, 결국 유셴코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티모셴코는 그 공로로 2005년 1월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권력층 간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그 해 9월 유셴코 대통령은 내각을 해산시켜 티모셴코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 그는 에너지 회사 사장 재직 시절 러시아 고위 관리에게 뇌물을 건낸 혐의로 러시아 검찰의 수배를 받기도 했다.

2006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은 더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2007년 총선에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총리가 이끄는 지역당에 근소하게 패했으나, 다른 당과 연정을 구성, 2007년 12월 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다. 2008년 말, 세계 금융 위기, 러시아와의 에너지 분쟁, 남오세티아 전쟁과 관련된 그루지야 문제 등으로 다시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측과의 대립이 격화되어 연정이 붕괴되었으나, 총리직에서 해임되지는 않았다.

2009년 7월에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이명박 대통령을 접견하였다.[1]

티모셴코 총리는 화려한 외모와 뛰어난 능력으로 인기가 높지만, 최근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정치·경제적 불안으로 총리 자리를 위협받기도 했다. 2010년 1월 17일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결과는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패하여 당선되지는 못했다. 2010년 2월 7일에 결선 투표에 다시 참여했으나, 또 한번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패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하였다. 잠시 빅토르 야누코비치 밑에서 총리를 하였으나, 얼마 후에 사임하였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근소한 차로 복권하면서 오렌지 혁명 이후 그녀의 정권에 대한 겨냥 수사가 전방위로 이뤄진 가운데 러시아와의 가스 배관 계약 시 대통령의 직권을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국익을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7년형이 인도됐다.[2] 더군다나 복역 이후에도 3년 동안 공직 출마 및 취임 자체를 불가능하게 한 판결이 내려졌다.[3] 유럽연합은 이미 판결이 이뤄지기 전부터 유죄 선고 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검증 및 반발을 예고한 상태여서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반발도 거세질 조짐이 일고 있다.[4] 2014년 2월 22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시위대에 의해 축출됨에 따라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224/61149495/1 돌아온 잔다르크, 도주한 대통령... 우크라이나 두동강 위기]

같이 보기

주석


바깥 고리

전임
미콜라 아자로프
우크라이나의 총리
2005년 1월 24일 ~ 2005년 9월 8일
후임
유리 예하누로우
전임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의 총리
2007년 12월 19일 ~ 2010년 3월 3일
후임
올락산더 투치노프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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