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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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래 洪景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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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780년 조선 평안도 룡강군 다미면 |
| 사망 | 1812년 음력 4월 19일 (33세) 조선 평안도 정주군 |
| 사인 | 관군이 쏜 총에 맞아 전사 |
| 국적 | 조선 |
| 직업 | 농민 반란 지도자 |
| 종교 | 유교(성리학) → 도교 |
홍경래(洪景來, 1780년(혹은 1771년) ~ 1812년 음력 4월 19일)은 조선 순조 시대의 평안도 농민 반란군의 지도자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생애 [편집]
평안도 룡강군 다미면(多美面)에서 태어났다. 몰락 양반 출신이라고 전해지지만 거의 평민 수준으로 곤궁하게 살았다. 그는 유교, 병법, 풍수지리 등을 익히고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한 지식인이었다.
1798년 사마시(司馬試)에 실패하고 집을 나가 방랑하면서 거사를 꿈꾸었다.
홍경래의 난 [편집]
1811년 홍경래는 조선 정부에 대항하는 농민군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매우 잘 방어되는 정주를 비롯하여 서북 지방 상당수를 지배했다. 이를 홍경래의 난이라고 한다. 세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때는 청천강 이북을 거의 지배했다.
1812년 음력 4월 19일 관군에게 정주성이 함락될 때 관군의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그의 심복들인 우군칙(禹君則, 1776년 ∼ 1812년)과 홍총각(洪總角, 1785년 ~ 1812년)은 관군에게 체포되어 주살되고 말았다.
바깥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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