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초 카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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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Calcio Catania SpA | |||
|---|---|---|---|---|
| 별칭 | Rossazzurri ("Red and light-blues"), Gli Elefanti ("코끼리들"), Etnei ("에트나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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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연도 | 1908년(Educazione Fisica Pro Patria) 1946년(Club Calcio Catan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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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 구장 | 스타디오 안젤로 마시미노 | |||
| 수용 인원 | 23,420 | |||
| 구단주 | 안토니노 풀비렌티 | |||
| 감독 | 로란도 마란 | |||
| 리그 | 세리에 A | |||
| 2012-13 | 8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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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초 카타니아(이탈리아어: Calcio Catania SpA)는 1908년에 창단된 카타니아에 위치한 안젤로 마시미노 경기장을 근거로 하는 이탈리아의 축구 클럽이다. 카타니아는 대부분 세리에 B에서 있었으며 이탈리아 프로 축구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 A에는 5번을 승격하였다. 최근에는 세리에 A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축구단은 세리에 A에서 평범한 성공을 거뒀으며 리그 최고 성적은 1960년대에 이룬 8위다. 아주 예전 카타니아는 코파 델레 알피 결승전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목차 |
역사 [편집]
카타니아 현에 축구가 들어온 기원은 시칠리아 섬으로 축구 경기를 가져온 영국 화물선의 노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초기의 카타니아 팀은 영국 선박에서 일하는 카타니아 선원들로 이루어져 FC 메시나를 상대로 산 라이네리 디 메시나에서 경기를 벌인 로얄 요트 카타니아로 거슬러 올라간다.[1]
하지만 선원들의 팀은 그저 취미였을뿐이고 카타니아의 첫 프로팀은 1908년 6월 19일에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가에타노 벤티밀리아 와 프란체스코 스투르초 달도브란도가 AS 에두카치오네 피시카 프로 파트리아 라는 명칭으로 설립했다. 초기에 팀은 항상 카타니아 항구를 방문한 선박의 선원(특히 외국 선박)들과 주로 경기를 하였다. 그들의 첫 경기는 이탈리아의 군함 레지나 마르게리타와의 경기였지만 1-1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경기에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은 아살로, 지스몬도, 비안키, 메시나, 슬라이테르, 카카모, 스텔라리오, 빈닌그, 코쿠차, 벤티밀리아 와 파팔라르도이다. 그리고 2년만에 팀명을 US 카타네세로 바꿨다.[2]
당시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축구가 더욱 조직화되었고 북부 지역 클럽들은 초기 이탈리아 풋볼 챔피언십에 참가한 반면에 카타니아를 비롯해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클럽들은 립톤, 산트 아가타 와 아고르다드 쿱스 같은 리그에서 뛰었다. US 카타네세는 세계대전으로부터 살아남았고 종전후에 지역 리그인 코파 페데랄레 시칠리아나에서 뛰었다. 7 시즌뒤인 1927년에 팀은 캄피오나토 카타네세에 참가하여 1928–29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클럽은 보다 상위 리그 승격 자격을 얻어었고 클럽 명칭을 처음에는 소치에타 스포르티바 카타니아 라고 바꿨다. 카타니아의 첫 세리에 B 데뷔 시즌인 1934-35 시즌에서 4위를 차지했고 해당시즌 우승팀은 제노아다.[3]
이 기간에 카타니아는 강등당하기 이전에 세리에 B에서 3 시즌을 보냈다. 세리에 C로 강등 이후에 1938–39 시즌에 시칠리아 지역 라이벌인 시라쿠사와 메시나보다 높은 순위로 리그를 끝내며 우승을 차지했다(시라쿠사 2위 메시나 3위). 세리에 B로 돌아왔지만 리그에서 단 3승만을 거두며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클럽은 2차 세계대전으로 조기에 리그를 마감한 1942-43 시즌에 명칭을 간단히 ACF 카타니아(Associazione Calcio Fascista Catania)로 바꿨다.
재탄생 [편집]
2차 대전후, 지역 리그인 캄피오나토 시칠리아노가 정비되었다. US 카타네세는 복귀했고 시즌 말쯤에 엘레판테 카타니아(Elefante Catania)라는 이름의 지역 클럽과 통합하였다.[4] 이렇게 통합된 클럽은 카타나세라는 이름은 유지하였고 세리에 C 1945-46 시즌에 참가하였으나 하위권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같은 시즌에 같은 리그에서 뛴 비르투스 카타니아라는 클럽은 8위를 기록했다.[5]
시즌이 끝나고 카타네세와 비르투스 통합하여 클럽 클럽 칼초 카타니아(Club Calcio Catania)를 만들었고 첫 회장은 카타네세의 회장이였던 산티 만가나로-파사니시다. 카타니아는 세리에 C에서 3 시즌을 보내고 1948-49 시즌에 세리에 B 승격을 위해 고피, 메소라, 아르데시 와 프레보스티 등과 같은 스타들과 함께 레지나와 힘겨운 사투를 벌여 승리를 거뒀다.
황금기 [편집]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를 카타니아의 황금기라고 여겨진다. 그 기간에 두 차례에 걸쳐 세리에 A 승격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 승격은 세리에 B에서 왔었다. 세리에 B 1953-54 시즌 카타니아는 칼리아리와 프로 파트리아를 꺽고 리그의 챔피언이 되었다. 그들의 첫 세리에 A 무대에서 12위를 거두며 마감하였지만 우디네세와 같이 재정 스캔들로 인하여 강제로 강등을 당하였다.
30년대에 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카르멜로 디 벨라의 지휘아래에 1959-60 시즌에 세리에 B로부터 승격권을 얻어냈다. 그들의 승격을 위한 레이스는 시즌 마지막날에 3위로 끝나 긴박한 상태였다. 카타니아는 그들의 마지막경기에서 브레시아에게 4:2로 져버렸고 승격을 확실히 하기 위해선 파르마가 트리에스티나로부터 좋은 결과를 걷을 필요가 있었다. 그 좋은 결과는 실현되었고 카타니아는 이리하여 한번 더 승격을 하게되었다.
1960-61 시즌에 카타니아가 세리에 A로 돌아오고 6년간을 잔류하였다. 그들의 첫 복귀 시즌은 새롭게 승격한 팀이 전통적 강호인 라치오와 나폴리보다 높은 순위인 8위로 마감하며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 시즌에는 몇 주목할만한 승리를 거뒀는데 그것은 나폴리와 볼로냐에게 더블을 거두고 삼프도리아를 상대로 홈에서 3:0 승리를 거둔것뿐만아니라 가장 주목할만한 승리는 시칠리아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4:3 승리와 시즌 마지막날 인테르나치오날레를 상대로 카스텔라치 와 칼바네세의 두 골로 승리를 거두었다. 인테르의 상처를 소금으로 비빈 이 승리는 유벤투스와 타이틀 경쟁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4년후인 1965년에도 역시 리그에서 8위를 거두었다. 이때는 로마와 시칠리아의 더비 라이벌인 메시나보다도 높은 순위였다. 여러 클럽들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선수들도 이기간에 뛰었다(미드필더로는 알바로 비아지니, 시네지뉴, 윙어로는 카를로 파킨, 잔카를로 다노바). 그리고 이탈리아 축구계의 거인들인 유벤투스(2:0), 피오렌티나(2:0), 라치오(1:0)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70년대와 80년대의 뒤섞인 행운들 [편집]
현재 선수 명단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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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편집]
- ↑ ClubCalcioCatania.it (이탈리아어). 20 June 2007에 확인.
- ↑ RSSSF.com (영어). 20 June 2007에 확인.
- ↑ ClubCalcioCatania.it (이탈리아어). 20 June 2007에 확인.
- ↑ ClubCalcioCatania.it. 20 June 2007에 확인.
- ↑ ClubCalcioCatania.it (이탈리아어). 20 June 2007에 확인.
- ↑ Prima Squadra (이탈리아어). 《Catania Calcio》. 24 August 2011에 확인.
바깥 고리 [편집]
|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 |
- 칼초 카타니아 -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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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3 시즌 | |
| 과거 참가 구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