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네덜란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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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네덜란드 전쟁
네덜란드의 미드웨이 기습.
네덜란드의 미드웨이 기습.
날짜 1652~1654년, 1665~1667년, 1672~1674년, 1780~1784년
장소 북해, 영국 해협, 노르웨이, 이탈리아, 네덜란드
이유 네덜란드와 영국의 무역경쟁으로
결과 제1차 전쟁은 웨스트민스터 조약
제2차 전쟁은 브레다 조약
제3~4차 전쟁은 네덜란드의 항복으로 종결
네덜란드의 완패로 세계 강대국 지워권 상실
영국이 승리해 해양강국으로 부상.
교전국
잉글랜드 잉글랜드
Pavillon royal de France.svg 프랑스
Prinsenvlag.svg 네덜란드
덴마크 덴마크-노르웨이
스페인 에스파냐 왕국
틀:나라자료 신성 로마제국
지휘관
뉴욕 공작
로버트 블레이크
장 일 드 에스트레스
마르텐 트롬프
미키엘 드 로이테르
병력
잉글랜드
전선 650여 척
병사 300명
프랑스
전선 60척
네덜란드 공화국
전선 600여 척
해병대원 1,500여 명
병사 50명
덴마크-노르웨이
병사 250여 명
피해 규모
잉글랜드
전선 40척 손실
전선 18척 포획
13,310명 사망
25,000여명 부상
2,000여명 붙잡힘
프랑스
400여명 사망
네덜란드 공화국
전선 56척 손실
전선 20척 포획
10,150명 사망
20,000여명 부상
2,500여 명 붙잡힘
덴마크-노르웨이
8명 사망
민간인 10명 사망

영국-네덜란드 전쟁(영어: Anglo-Dutch Wars, 네덜란드어: Engels-Nederlandse Oorlogen 혹은 Engelse Zeeoorlogen)은 17세기 후반에 있어서의 영국과 네덜란드 양국간의 3차에 걸친 전쟁과 18세기 말엽의 1차례 일어났던 전쟁이다.

제1차 (1652 ~ 1654)[편집]

청교도 혁명 전쟁 중에 잃은 영국의 해운(海運)과 무역을 회복하고자 크롬웰은 1651년 항해조례(航海條例)를 발표하였는데, 이는 영국의 무역·어업으로부터 네덜란드인과 그 선박을 배제하려는 것이 직접적인 목적으로 이로 인하여 양국 해군은 충돌하였다.

이에 네덜란드 해군 제독 마르턴 트롬프는 영국군을 무찌르고 1652년 12월에 던지네스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1653년부터는 우수한 무기를 지닌 영국 해군들이 전투에서 승리해 1653년 여름에 테셀 해전에서 마르텐 트롬프 제독이 전사하고 양측 모두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 1654년 4월 웨스트민스터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이로써 17세기 전반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던 네덜란드가 곧이어 쇠퇴의 길을 걷는 전조(前兆)가 되었다.

제2차 (1665 ~ 1667)[편집]

네덜란드는 재정을 정비하고 해군을 확장하여 무역을 진흥시켰으나, 영국은 1660년의 왕정복고(王政復古) 후 찰스 2세가 항해 조례를 갱신하고, 1664년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뉴네덜란드를 침략하여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하고 이를 뉴욕으로 고쳤다.

다음 해 1665년 3월 영국이 네덜란드에 선전포고하여 2차 전쟁이 개시되었다. 영국은 로스토프트 해전에서 네덜란드 해군을 무찔렀으나, 이후 프랑스가 네덜란드 편을 들어 참전했고 영국의 동맹국 뮌스터 공국도 참전했으나 프랑스에게 패배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1665년 흑사병과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영국이 밀려 1667년 6월에 채텀 전투에서 네덜란드의 데 로이테르가 템스강에 침입하여 하구(河口)를 봉쇄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1667년 7월에 브레다 조약(Treaty of Breda)으로 종결되었다.

브레다 조약의 주요내용은

  1. 양국의 영토는 대략 현상태를 유지한다.
  2. 영국은 뉴암스테르담(오늘의 뉴욕)을 얻고, 네덜란드는 수리남을 확보한다.
  3. 항해조례(航海條例)를 수정하고 1662년 통상조약을 재확인한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간에도 조약이 체결되어, 영국은 아카디아를 프랑스에 양도하고 서인도 제도의 영토를 얻었다.

제3차 (1672 ~ 1674)[편집]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행한 침략전쟁 중의 하나로, 네덜란드의 무역 독점 타파를 목적으로 하였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네덜란드가 프랑스 망명자를 비호(庇護)한 데 있다.

전쟁준비로서 루이 14세는 앞서의 3국 동맹(네덜란드, 영국, 스웨덴)을 타파하고자 1670년에는 영국과 도버 밀약(密約)을 맺고, 1672년에는 에스파냐와 그리고 독일 제후(諸侯)들과 결탁하였다.

1672년 프랑스군은 라인 강을 건너서 네덜란드에 침입하였다. 네덜란드에서는 데비트가 암살되고 오렌지공(公) 윌리엄이 총독이 되어 수문을 열고 홍수전술(洪水戰術)로 항전하였다.

1673년과 1674년 네덜란드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제 레오폴트 1세, 그리고 에스파냐와 동맹을 맺고, 또 영국과도 화해를 함으로써 프랑스에 대해 외교전술로 대항하였다. 전투는 네덜란드와 알사스, 그리고 지중해에서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1678년 네이메헌 화약(和約)으로서 종막을 내렸다.

네이메헌 화약은 프랑스-네덜란드간(1678년 8월 10일), 프랑스-에스파냐간(1678년 9월 17일), 독일 황제-프랑스-스웨덴간(1679년 2월 6일), 네덜란드-스웨덴간(1679년 10월 12일), 프랑스-덴마크간(1679년 9월 2일), 덴마크-스웨덴간(1679년 9월 26일)에 체결된 제 조약의 총칭이다.

이 조약에 의해서 네덜란드는 모든 영토를 회복하고 중립(中立)을 약속하였으며, 에스파냐는 프랑스에 프랑슈콩테와 그 밖의 동북 국경의 몇 개의 도시를 양보하고, 레오폴트 1세는 프랑스에 일부의 영토를 양보하였다.

제4차 전쟁 (1780.12.20~ 1784.5)[편집]

제4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은 영국이 1780년 12월 20일에 네덜란드에 전쟁을 선포하고 1781년에 네덜란드 해안을 봉쇄한 뒤 서인도 제도동인도 제도를 점령해 영국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1781년 8월에 네덜란드는 마지막으로 도거뱅크 해전에서 승리했으나 그 후 함대를 조직하지 못해 1784년 5월에 네덜란드의 항복으로 종결되었다. 이 4차례 전쟁으로 네덜란드의 위신은 떨어지고 세계 강대국 지위를 상실했다. 영국이 해양강국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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