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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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 1954년 8월 15일 ~ 1989년 2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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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페데리코 차베스(45대)
후임: 안드레스 로드리게스(4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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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
| 출생일 | 1912년 11월 3일 |
| 출생지 | |
| 사망일 | 2006년 8월 16일 (93세) |
| 사망지 | |
| 정당 | 콜로라도당 |
| 배우자 | 엘리히아 모라 데 스트로에스네르 |
| 자녀 | 구스타보, 그라시엘라, 우고 알프레도 |
| 부모 | 우고 스트로에스네르, 에리베르타 마티아우다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마티아우다(스페인어: Alfredo Stroessner Matiauda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마티아우다[*]1912년 11월 3일 ~ 2006년 8월 16일)는 파라과이의 정치인이다.
일생[편집]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그의 집안 성씨는 원래 Strößner 또는 Strössner로 표기했었다), 육군에 들어가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워 1951년 육군총사령관이 되었다. 1954년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페데리코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하고 콜로라도 당의 대통령 후보로 단독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빈민층과 농민을 회유하면서 동시에 부유층의 이익을 옹호하였으며, 경제개발과 반공정책을 추진하였다. 집권 초기에는 경제개발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물가도 안정되어 많은 지지를 받았다. 브라질 국경에 있는 대규모 댐 건설 사업에 참여하여 전력난을 해소하는 성과를 오렸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푸에르토프레시덴테스트로에스네르라는 도시까지 건설하였다.
그러나 장기집권이 계속되면서 반대자에 대한 가혹한 인권탄압과 권력기반 유지를 위한 막대한 비용 지출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게 되었다. 헌법을 개정하여 장기집권을 실현하여 연속으로 여러 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며, 1988년 8번째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9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으며, 브라질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파라과이를 무려 35년간이나 철권 통치한 그는 외국 언론에 의해 세계 10대 독재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망명 후 법정에서 살인죄로 기소되었으나, 파라과이로의 소환은 실현되지 못한 채 2006년 브라질에서 사망하였다.[1] 사망 후 파라과이에서는 그의 유해 송환을 거부하여 그는 브라질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주석[편집]
| 전 임 토마스 로메로 |
1954년 ~ 1989년 | 후 임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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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헨시오 예그로스 ·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 풀헨시오 예그로스 ·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 마누엘 안토니오 오르티스 · 후안 호세 메디나 · 마리아노 로케 알론소 · 카를로스 안토니오 로페스 ·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 시릴로 안토니오 리바롤라 · 시릴로 안토니오 리바롤라 · 후안 바우티스타 힐 · 칸디도 바레이로 · 베르나르디노 카바예로 · 파트리시오 에스코바르 · 후안 구알베르토 곤살레스 · 후안 바우티스타 에구스키사 · 에밀리오 아세발 · 후안 안토니오 에스쿠라 · 베니그노 페레이라 · 마누엘 곤드라 · 에두아르도 샤에레르 · 마누엘 프랑코 · 마누엘 곤드라 · 엘리히오 아얄라 · 호세 파트리시오 구히아리 · 에우세비오 아얄라 · 펠릭스 파이바 · 호세 펠릭스 에스티가리비아 · 이히니오 모리니고 · 후안 나탈리시오 곤살레스 · 펠리페 몰라스 로페스 · 페데리코 차베스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후안 카를로스 와스모시 · 라울 쿠바스 그라우 · 루이스 앙헬 곤살레스 마치 · 니카노르 두아르테 · 페르난도 루고 · 페데리코 프랑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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