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코터르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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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코터르노보 역사 지구
시 문장
벨리코터르노보 (불가리아)
벨리코터르노보의 위치

벨리코터르노보(불가리아어: Велико Търново, "대(大)터르노보"라는 뜻)는 불가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벨리코터르노보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68,197명(2011년 2월 기준), 높이는 325m이다. 얀트라 강과 접하며 과거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기 때문에 관광 자원이 많다.

과거에는 터르노보(Търново)라고 불렀지만 1965년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기념하기 위해 "큰", "위대한"이라는 뜻을 가진 불가리아어 형용사인 "벨리코"(Велико)를 붙여주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이 되었다.

역사[편집]

불가리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 가운데 한 곳이며 기원전 3000년부터 사람이 살았다.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불가리아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가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발전했고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가 된 이래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로 여겨졌다. 14세기 비잔틴 제국이 쇠퇴하면서부터 발칸 반도와 슬라브계 정교회의 중심지로 여겨졌으며 한때는 제3의 로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년 동안 마을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었지만 1393년 오스만 제국이 3개월 동안에 걸친 포위를 뚫고 요새를 함락하면서 마을의 발전도 멈추게 된다. 또한 오스만 제국이 불가리아 제국을 정복하면서 불가리아에 있던 마을과 교회, 수도원 대부분이 화재로 인해 사라졌다. 1598년과 1686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무장 봉기(중세 시대에는 불가리아어로 터르노브그라드(Търновград),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터키어로 트르노바(Tırnova)라고 불렀음)가 일어났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만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19세기에 일어난 불가리아 민족 부흥 운동은 불가리아 민족 의식의 고취와 강력한 저항 운동으로 이어졌다. 불가리아인의 독립 국가 건설과 불가리아 정교회 재건에 대한 열망은 1875년과 1876년 봉기로 이어졌으며 특히 1876년 4월 23일에 일어난 4월 봉기는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 지배 종식과 러시아-튀르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1877년 7월 7일 러시아의 장군 요시프 블라디미로비치 구르코(Иосиф Владимирович Гурко)가 터르노보를 해방시켰고 480년 동안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 지배도 막을 내리게 된다. 1878년 베를린 조약에 따라 승인된 불가리아 공국다뉴브 강발칸 산맥에 걸쳐 있는 터르노보를 수도로 삼았다.

1879년 4월 17일 최초의 불가리아 의회가 이 곳에서 소집되었으며 불가리아 최초의 헌법을 제정했다. 이 헌법은 불가리아의 수도를 소피아로 이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소피아는 지금도 불가리아의 수도로 남아 있다.

1908년 10월 5일 페르디난드 1세가 이 곳에서 불가리아의 완전 독립을 선언했다.

사진[편집]

자매 도시[편집]

벨리코터르노보에는 다음과 같은 자매 도시, 우호 도시가 있다:[1]

주석[편집]

  1. Велико Търново събира побратимените градове. infotourism.net (2006년 11월 17일). 2008년 4월 16일에 확인.

외부 연결[편집]

좌표: 북위 43° 05′ 동경 25° 39′  / 북위 43.083° 동경 25.650° / 43.083; 25.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