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제2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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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불가리아 제국은 1185년 ~ 1396년 동안 불가리아에 존속했던 왕조이다. 수도는 터르노보에 있었다. 앞에 있었던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 합쳐 불가리아 제국이라고도 한다.
목차 |
국명[편집]
제 2차 불가리아 제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 시대적으로도 멀리 떨어져있고, 민족적 특성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은 튀르크계 유목민인 불가르인이 지배했으나 이들은 점점 다수였던 슬라브인과 동화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차르 보리스 1세가 크리스트 교로 개종한 이후 그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1차 제국의 멸망 후 2차 제국이 들어설 때까지 160여 년간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는데 이 시기 동안 '불가리아'란 이름은 남았지만 슬라브화가 계속되어 튀르크적 특성이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역사[편집]
등장[편집]
1차 불가리아 제국은 1018년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리우스 2세에게 멸망하였고, 불가리아는 비잔틴의 속주가 되었다. 1041년, 1072년, 1080년에 연달아 봉기가 일어났으나 이 봉기는 모두 진압되었다.
1180년 비잔티움 제국이 혼란에 빠졌고, 1185년 페타르와 아센 형제가 봉기를 일으켰다. 결국 1187년 황제 이사키우스 앙겔루스는 불가리아의 독립을 인정해야 했다. 그 후 아센과 페타르는 공동 통치를 하며 영토 회복에 나섰고 이반 아센 1세의 치하때 이미 트라키아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1186년 보야르 이반코가 아센 1세를 암살했고, 이어 페타르까지 살해당했다. 결국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인질로 잡혀가 있던 아센과 페터르의 막내동생 칼로얀이 불가리아의 차르가 되었다.
전성기[편집]
칼로얀(1197~1207)[편집]
칼로얀은 왕위에 오른뒤 영토 확장에 힘썼다. 그는 로마 교황에게 자신의 왕위 계승을 인정받았고, 루마니아 방면으로 진출하여 영토를 크게 넓혔다. 1204년 라틴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키고 불가리아를 공격해오자 그는 오히려 반격을 가해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라틴군을 괴멸시켰다. 그 뒤 칼로얀은 라틴 제국군과 계속 전쟁을 벌였으나 1207년 쿠만족에게 암살당했다. 칼로얀의 여동생의 아들인 보릴이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1218년 아센 1세의 아들인 이반 아센 2세에게 축출당하였다.
이반 아센 2세(1218~1241)[편집]
이반 아센 2세는 스스로 '모든 그리스인, 불가리아인, 왈라키아인의 황제'라고 칭하는 등 활발한 정복활동을 펼쳤고, 귀족 세력을 제압하고 뛰어난 행정 능력을 발휘하여 국내 질서를 안정시켰다. 그는 왈라키아 인들을 복속시켰고, 칼로얀에 이어 라틴 제국과 니케아, 에피루스의 싸움에 개입하여 1230년 클로코트니챠 전투에서 에피루스의 전제군주 테오도루스 두카스를 격파하고 포로로 잡는 성과를 올렸다. 그 후 혼인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고 라틴 제국과 니케아 제국의 다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나 1237년 니케아와의 화의 이후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불가리아는 발칸 내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유지하였다.
1241년 이반 아센 2세의 사망 후 몽골 제국이 동유럽을 침공해 러시아를 정복하고 폴란드와 헝가리를 혼란에 빠트렸다. 바로 그 해 오고타이가 죽은 것을 안 바투가 물러가 불가리아는 침공을 면하였지만 아센 2세의 뒤를 이은 아들 차르 칼리만 1세는 미성년이었고 섭정들은 무능하였다. 1246년 칼리만이 죽고 더 어린 미하일 아센 1세가 즉위하자 불가리아는 귀족들의 다툼으로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쇠퇴와 멸망[편집]
이바일로의 농민반란(1256~1280)[편집]
1256년 미하일 아센 1세가 죽자 귀족들은 왕위쟁탈전으로 내분에 휩싸여 1257년에 3명의 차르가 바뀌는 등 엄청난 혼란에 빠졌고, 여기에 외침까지 시달리면서 농민들은 전쟁과 약탈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새로 왕위에 즉위한 콘스탄틴 티흐는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킵차크 칸국에게 원병을 요청했고, 여기서 당시 칸인 베르케의 종손인 노가이 칸이 군사 2만 명을 이끌고 트라키아를 유린해 비잔티움 제국을 공포에 떨게 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였던 미카일 8세 팔라이올로구스는 자신의 딸을 노가이와 결혼시켜 화친을 맺어야 했다.
그러던 중 불가리아에서는 드디어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해 1277년 이바일로가 이끈 농민 반란이 일어났다. 이바일로는 단기간에 농민들을 규합해 터르노보를 점령했고, 티흐는 진압에 실패하고 살해당했다. 이바일로가 세운 허수아비 차르인 티흐의 아들 미하일 아센 2세도 곧 폐위당했으며, 이바일로는 터르노보에서 불가리아의 차르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미카일 팔라이올로구스는 이바일로의 반란이 제국 내에 미칠 것을 염려하여 개입할 것을 결정했고, 몽골의 노가이도 비잔틴의 요청으로 개입했다. 그리고 농민을 위한 개혁을 두려워 한 귀족들까지 대항하자 농민 군대는 중과부적으로 패배했고, 결국 이바일로는 암살당했다.
몽골의 침략(1280~1300)[편집]
이바일로가 죽은뒤 귀족들간의 분쟁이 일어났다가 노가이에 의하여 쿠만족(폴로브치족) 계통인 게오르기 테르테르가 즉위하였다. 게오르기의 통치기에 불가리아는 킵차크 칸국의 보호국 처지로 전락했고, 국내에서는 봉건 영주들이 토지를 독점하여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게오르기는 또 다른 귀족 스밀레치에게 제위를 찬탈당하였으나, 스밀레치의 치세 역시 몽골에게 종속된 상태였다.
1298년 스밀레치가 죽은뒤 스밀레치의 아들 이반은 게오르기 테르테르의 아들인 토도르 스베토슬라프에게 축출당했다. 한편 킵차크 칸국에서도 토흐타가 정변을 일으켜 노가이와의 싸움끝에 그를 죽였다. 노가이의 아들 차카는 불가리아로 도망쳤으나 토흐타의 앙갚음을 두려워한 스베토슬라프에게 살해당했다.
중흥과 벨부즈드 전투(1300~1331)[편집]
스베토슬라프는 몽골군을 격퇴하고 분열된 불가리아를 다시 통일하여 무너져가는 제국의 중흥기를 열었다. 뒤를 이어 1323년 미하일 3세 시스만이 새로이 즉위하였는데, 그는 이반 아센 2세의 외손녀의 아들인 시스만의 아들이었다. 그는 비잔티움 제국의 침공과 새로이 성장하는 세르비아.헝가리의 팽창을 막으려했다. 그러나 1330년 세르비아의 스테판 3세 데챤스키와의 벨부즈드 전투에서 대패하여 미하일 시스만은 전사하고 마케도니아는 분할당하였으며, 데찬스키는 미하일의 아들 이반 스테판을 꼭두각시로 내세웠다.
그러나 1331년 데챤스키의 아들 스테판 두샨이 왕위를 찬탈하고 불가리아에서도 궁정혁명이 일어나 미하일 시스만의 조카 이반 알렉산더르가 즉위하여 정세는 급변하였다. 두샨과 알렉산더르는 발칸 반도에 남슬라브 제국을 건설하려는 같은 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화친하였다.
이반 알렉산더르와 멸망(1331~1422)[편집]
이반 알렉산더르는 무려 40년간 불가리아를 통치하였는데, 그의 통치기는 과도기였다. 불가리아는 벨부즈드 전투 이후 분열되었고, 봉건 질서는 붕괴하여 귀족들의 할거상태에 빠졌다. 이반 알렉산더르는 이러한 혼란기를 잘 극복해내었다. 또 두 강적 비잔티움 제국과 세르비아가 격렬히 싸우는 동안 불가리아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동쪽에서 가장 큰 적인 오스만 제국이 진출하고 있었고 비잔티움 제국이 마르마라 해에 고립된 뒤 바로 불가리아가 침입을 받아 귀족세력은 분열하였다. 이반 알렉산더르는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두 아들인 이반 시스만과 이반 스트라치미르에게 국가를 터노보와 비딘 왕국으로 분할 상속하였다. 그러나 1372년 둘 다 터키에게 항복해 가신이 되었고, 1393년 터르노보 왕국이 멸망하고 1396년 비딘 왕국도 멸망해 불가리아는 멸망하였다. 이반 스트라치미르의 아들 콘스탄틴은 세르비아로 망명해 1422년 죽기전까지 항쟁하였다.
제도[편집]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은 기본적으로 비잔틴 제국의 대토지소유제(프로노이아제)에 기반을 둔 봉건 사회였다. 초기에는 자영농민층이 많았으나 점점 귀족들의 힘이 세져가면서 농노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발생한 것이 이바일로 농민 반란이다. 이바일로가 실패한뒤 귀족들의 착취는 더욱 심해졌다. 그 뒤 오스만 제국의 침입과 농민들의 불만 가중으로 불가리아의 봉건 질서는 붕괴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혼란 이후 불가리아는 멸망했다.
역대 군주[편집]
아센 왕조[편집]
- 페터르 2세 (1185년~1197년)
- 이반 아센 1세 (1185년~1196년)
- 칼로얀 (1197년~1207년)
- 보릴 (1207년~1218년)
- 이반 아센 2세 (1218년~1241년)
- 칼리만 1세 (1241년~1246년)
- 미하일 아센 1세 (1246년~1256년)
- 칼리만 2세 (1256년)
- 미초 아센 (1256년~1257년)
- 콘스탄틴 1세(티흐) (1257년~1277년)
- 미하일 아센 2세 (1277년~1279년)
- 이반 아센 3세 (1279년~1280년)
- 이바일로 (1277년~12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