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만도 백작 헤르베르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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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1세(Herbert I of Vermandois, 848년/850년 - 907년)은 프랑크 왕국서프랑크 왕국의 귀족으로 베르망두아백작, 상리스페로네, 생 퀘틴의 영주를 지냈다. 베르망두아백작 피핀의 아들이다. 서프랑크의 왕 로베르 1세의 장인이다. 또한 카페 왕조도 그의 후손들로, 카페 왕조의 시조가 되는 위그 카페 역시 그의 진외증손자가 된다.

생애[편집]

헤르베르트의 정확한 생년은 전하지 않으나 848년생 설, 850년생 설, 840년생 설 등이 있다. 아버지는 베르망두아백작 피핀이다. 아버지 베르망두아백작 피핀카롤링거 왕조의 후손이었으나 할아버지 베른하르트의 서자였고, 할아버지 베른하르트818년 루트비히 경건왕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장님이 된 뒤에 죽었으므로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했다.

베르망두아백작 피핀의 아들로, 서프랑크의 왕 카를 2세의 봉신이었다. 877년베른하르트로부터 베르망두아의 백작령을 상속받았고, 893년 후계자 없이 사망한 상리스페로네, 생 퀘틴의 영주인 형 피핀의 뒤를 이어 상리스페로네, 생 퀘틴의 영주가 되었다. 또한 뮈우(Meaux) 백작 테오데베르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뮈우의 백작직도 겸하게 되었다.

모라비아 출신 베르타와 결혼했다. 그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자신의 영지 내에 많은 성당수도원을 세웠다. 또한 그는 독일니벨룽겐에도 그의 영지가 있었다. 그는 니벨룽겐을 비롯한 이탈리아 밀라노, 파나마 등 일부의 영지를 상속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개인 사병을 양성하는데 이는 후에 그의 사위 로베르 1세가 바이킹을 물리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890년 헤르베르트는 군사를 이끌로 노르망디 해변에 나타난 바이킹 족을 격퇴하였다.

한편 그의 형 피핀 2세의 딸 포파는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 족 수령 롤로와 결혼하였다.

그의 딸 베아트릭스앙주네우스트리아백작 강인왕 로베르(로베르 르 포르)의 아들 로베르 1세에게 시집갔다. 884년 서프랑크 루이 3세샤를로망이 후사 없이 사망하고 새 왕을 선출할 때, 그의 집안 사람들이 샤를 3세 단순왕을 지지하지 않고 모두 외드를 지지하는 원인이 되었다.[1] 907년에 사망하였다.

가계[편집]

사위 로베르 1세와 외손녀사위 라울노르만 족 격퇴에 공을 세워 귀족들로부터 서프랑크의 왕에 추대되었다. 외손녀인 아델레는 다시 그의 아들이자 삼촌인 헤르베르트 2세와 결혼했다.

기타[편집]

일설에는 니벨룽겐의 테오도리히가 그의 어머니쪽 할아버지이며 그에 의해서 니벨룽겐의 영지도 일부 상속받았다고 한다.

주석[편집]

  1. 외드는 헤르베르트의 사위 로베르 1세의 형이다.

관련 항목[편집]

전 임
테오데베르트
백작
896년 - 902년
후 임
헤르베르트 2세
전 임
피핀 2세
베르망두아 백작
896년 - 907년
후 임
헤르베르트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