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만 해군 기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관타나모 기지의 위치 만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관타나모 기지의 위치가 표시된 쿠바의 지도

관타나모 만 해군 기지(Guantanamo Bay Naval Base)는 쿠바 남동쪽 끝부분에 위치한 관타나모 만에 위치한 미국의 해군기지이다. 미해군이 점유한 지 1세기가 지났으며, 미국의 해외기지 중에서도 오래된 곳이다. 또한,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미국과 정식외교관계가 없는(잠재적 적대국가의) 국가내부에 있는 유일한 미군기지이기도 하다.

역사[편집]

미국은 아바나항에 정박해 있던 미군함 메인호의 폭발사건을 빌미로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한다. 하지만 미 의회도서관 2009년 8월 자료에는 1973년 미해군이 자체 조사한 내용에 메인호는 내부폭발에 따른 침몰이라고 되어있다.[1] 이렇게 시작된 1898년 미서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 괌,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을 점령하게 된다. 이 전쟁의 결과로 쿠바는 파리조약에 의해 독립을 이루지만, 곧바로 미군의 군정 하에 들어가게 되고 쿠바의 내정간섭을 위한 플래트 수정안을 통해 관타나모만 기지를 미국에 영구임대하기로 조약을 맺는다. 그러나 쿠바 혁명에 의해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관타나모 기지는 분쟁의 씨가 되었다.

카스트로는 관타나모 만 미해군기지를 주권침해행위로 보고 미군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쿠바혁명 이전의 협정에 따라 미국은 매년 기지 임대료로 2000달러(당시 기준)에 해당하는 금화를 지불하게 되어 있어 해마다 쿠바 정부에 임대료를 내고 있으나, 쿠바정부는 항의표시로 수납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쿠바 혁명 이전에 계속, 그리고 이후에 한번 금화를 받았기 때문에 미국은 정당한 조약이라 주장하고 있다. 냉전시기에는 일촉즉발의 지대로 기지주변에는 DMZ같이 무수한 지뢰밭으로 뒤덮혔었으나 클린턴 대통령의 주도로 현재는 모션 센서등으로 바뀌어 있다. 또한 탈쿠바 난민이나 아이티 난민등의 수용소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근래에는 9.11 테러 이후 부시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테러용의자를 법원의 동의없이 체포, 구금할 수 있는 수용소가 이 기지내에 설치되어 인권의 사각지대로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2] 결국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관토나모 만 해군 기지에 위치한 수용소를 폐쇄하라는 행정 명령을 발령했다.[3][4]

문화에 나타난 관타나모 기지[편집]

  • 마이클 무어식코에 나온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가 관타나모 기지에서 9.11 테러 때 구조요원으로 활동하다가 부상을 당한 사람들의 치료를 요구하지만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2009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논란의 중심 관타나모 수용소를 가다'라는 제목으로 관타나모 수용소와 관타나모 도시모습. 수감실에 갇혀있는 수감자 모습등을 공개했다.

주석[편집]

  1. "관타나모, 적반하장의 미국지배 110년".
  2. 이정은. ""관타나모서 고문 횡행" 美고위관리 잇단 증언", 《동아일보》, 2009년 1월 15일 작성. 2009년 1월 15일 확인.
  3. "오바마, 관타나모 교도소 폐쇄 명령에 서명", 《mbn》, 2009년 1월 23일 작성. 2009년 1월 23일 확인.
  4. 김진일. "오바마,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명령", 《mbn》, 2009년 1월 23일 작성. 2009년 1월 23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