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공주공산성에서 넘어옴)
이동: 둘러보기, 찾기
공주 공산성(公州公山城)
대한민국사적
Korea-Gongju-Gongsanseong-01.jpg
지정번호 사적 제12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제작시기 삼국시대
면적 371,621.3㎡
공산성 정문

공산성(公山城)은 사적 제12호로, 충청남도 공주시에 소재하고 있다.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곽으로 백제의 문주왕 원년(475) 한강유역의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후 삼근왕·동성왕·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옮길 때까지 웅진시대의 도성이었으며 그 후 신라·고려·조선 시대에도 행정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산성의 북쪽에는 금강이 흐르고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는 천연의 요새로서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곽의 길이는 2,660m이며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포곡형으로 원래 백제 시대에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시대 대부분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성내 유적은 임류각·추정왕궁지·연지·쌍수정·쌍수정사적비·명국삼장비·공북루·진남루·동문루·금서루·영은사·광북루 등 각 시대별로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편집] 백제 의자왕의 항복

나당연합군이 사비를 위협하자 의자왕은 공산성으로 왕자를 데리고 들어와서 항전하였으나,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이곳에서 항복을 하였다.

[편집] 조선 인조의 파천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공주로 파천을 하였다. 이괄은 서울에 입성하여 경복궁 옛터에서 선조의 열 번째 아들 흥안군 제(興安君 瑅)를 왕으로 세웠다. 공산성 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있는 쌍수정에 머물러 금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서울에서 반란에 대한 소식을 기다렸다. 인조는 6일동안 공주에서 난을 피해있어야 했다.

[편집] 참고자료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 도구
이름공간

변수
행위
둘러보기
인쇄/내보내기
도구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