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에바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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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에바디'''([[1947년]] [[6월 21일]] ~ , {{llang|fa|شیرین عبادی}})는 [[이란]]의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2003년 12월 10일에, 에바디는 첫 이란인, 첫 무슬림 여성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시린 에바디'''([[1947년]] [[6월 21일]] ~ , {{llang|fa|شیرین عبادی}})는 [[이란]]의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2003년 12월 10일에, 에바디는 첫 이란인, 첫 무슬림 여성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초기 삶 ==
시린 에바디는 [[1947년]] [[6월 21일]] 이란 [[하마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의 공증인 장이자 상거래법 교수인 모하메드 알리 에바디이다. 가족들은 1948년 테헤란으로 이사했다.

[[1965년]] 테헤란 대학교의 법학과에 입학하고, 1969년에 졸업한 후 바로 사법 고시에 응시했다. 그는 여섯달 동안의 인턴기간이 지난 1970년 3월에 법관직을 시작했다. 그동안 그녀는 테헤란 대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1971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 그녀는 입법부를 주관하는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1979년 [[이란 혁명]] 후,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여성이 판사가 되는 것을 엄금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녀가 전에 관리했던 부서에서 비서직으로 계급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녀와 다른 여성 판사들은 저항했으며 약간 더 높은 "법 전문가" 직으로 배당되었다. 그녀는 결국 상황은 변하지 않은 채로 조기 [[퇴직]]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녀의 퇴직요구가 반복적으로 거절됨에 따라, 이미 법률 [[사무실]] 허가가 났음에도 1993년까지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남는 시간을 책을 쓰거나 그녀를 널리 알리게 했던 이란의 [[정기 간행물]]에 많은 기사를 쓰며 보냈다.

== 이란 정부의 탄압 ==
=== 노벨상 압수 사건 ===
2009년 11월, 이란 당국이 보관되어있던 노벨상을 압수한 사태가 발생했다.<ref name = "prize">{{뉴스 인용|제목=이란, 에바디 노벨 평화상 메달 몰수|url=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091127003344&ctg1=07&ctg2=00&subctg1=07&subctg2=00&cid=01010407000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강갑수|쪽=|작성일자=2009-11-27|확인일자=2009-11-27}}</ref>12월 10일, 노벨상 시상식에서 스웨덴과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에바디에게 압류되었던 노벨상이 돌아갔지만, 그녀에게 닥친 상황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에바디, 노벨평화상 메달-상장 돌려받아|url=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c%8b%9c%eb%a6%b0%20%ec%97%90%eb%b0%94%eb%94%94&contents_id=AKR20091211005300009|출판사=연합뉴스|저자=|쪽=|작성일자=2009-12-11|확인일자=2009-12-11}}</ref>

=== 가족의 체포 ===
2009년 12월 28일에 이란의 웹사이트 《자라스》는 에바디의 자매인 누신 에바디가 이란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ref>{{뉴스 인용|제목=노벨평화상 시린 에바디 가족… 이란 정부에 의해 체포 |url=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12/29/200912290757.asp|출판사=헤럴드경제|저자=양춘병|쪽=|작성일자=2009-12-29|확인일자=2009-12-30}}</ref> 이는 이란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제압하기 위하여 대대적으로 펼쳐진 야당 인사의 검거 도중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ref>{{뉴스 인용|제목=이란 검거 선풍… 노벨평화상 에바디 여동생도 잡혀|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2871641&cp=du|출판사=쿠키뉴스|저자=손영옥|쪽=|작성일자=2010-1-5|확인일자=2010-5-24}}</ref>


== 대한민국 방문 ==
== 대한민국 방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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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47년 태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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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이란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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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이란의 노벨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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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테헤란 출신]]
[[분류:이슬람 여성주의자]]
[[분류:이슬람 여성주의자]]

2015년 5월 29일 (금) 14:53 판

시린 에바디
시린 에바디
출생1947년 6월 21일(1947-06-21)(76세)
이란의 기 이란, 하마단
성별여성
국적이란
학력테헤란 대학교
직업변호사
자녀2명

시린 에바디(1947년 6월 21일 ~ , 페르시아어: شیرین عبادی)는 이란의 변호사이자 인권 운동가이다. 2003년 12월 10일에, 에바디는 첫 이란인, 첫 무슬림 여성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방문

2006년 6월에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 참석차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1] 이 후 2009년 8월 7일 아시아기자협회 초청[2]으로 재방문하였으며, 8월 8일 이슬람 교도로서는 최초로 국내교회에서 강연을 하였다.[3]8월 12일 백담사 만해 마을에서 《2009 만해 평화상》을 수상했으며,[3]이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차를 빌었었으며,[4] 8월 13일에 출국하였다.

기타

수상

  • 2001년 《라프토상》
  • 2003년 《노벨 평화상》
  • 2009년 《제13회 만해대상 평화상》

관련서적

  • 2007년 《히잡을 벗고 나는 평화를 선택했다》(원문 제목:Iran awakening : a memoir of revolution and hope),시린 에바디와 아자데 모아베니 공저

참고

  1. 안관옥. “노벨평화상 수상자 15일 빛고을에 모인다”. 한겨레. 2010년 5월 24일에 확인함. 
  2. 구정은. ““이란, 차별·검열없는 나라 될때까지 투쟁””. 경향신문. 2010년 5월 24일에 확인함. 
  3. 서은영. “이슬람의 편린들 그 베일을 벗기다”. 서울경제. 2010년 5월 24일에 확인함. 
  4.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prize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텍스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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