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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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 지수의 급락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세계금융위기의 상징이 되었다.
2007년 영국 브링엄의 노던 록 은행지점에, 은행의 부실 소문을 듣고서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 줄서 있다.

2007–2008년 세계 금융 위기2000년대 후반 미국의 금융 시장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파급 된 대규모의 금융 위기 사태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1929년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다.

졌다

  • 2008년 9월 6일 - 미국 재무부는 주택시장 침체와 모기지 손실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고, 양사에 각각 1000억 달러씩, 총 2000억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두회사는 미국 전체 모기지 채권의 절반을 발행하고 있다.
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했다. 미국 정부는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고 1주일 뒤에 리먼 브러더스를 파산시키기로 결정했다.
  • 2008년 10월 20일 -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에 제출한 답변자료에서, 한국은행은 1970년대 후반부터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투자해 왔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380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중앙정부는 1조 달러 이상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채권은 미국 국채는 아니지만,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이다.
  • 2008년 10월 30일 - 한국은행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달러 상당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1]
  • 현재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보험업체는 중국의 차이나라이프이다.
  • 2008년 11월 23일 - 미국 정부는 씨티그룹에 3000억 달러를 보증하고, 45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씨티그룹은 시가총액 7천억 달러(약 700조원)의 세계 최대 은행이었다.(2008년 10월 31일 현재 대한민국 전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550조 원) 그러나 부동산 모기지 투자 부실로 주가가 급락했다. 2008년 11월 24일, 지난 한주에만 60% 주가가 폭락하였고, 시가총액은 205억 달러로 미국 5위의 은행이 되었다.
  • 2008년 11월 27일 - 미국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이미 7조 달러(1경 500조원)를 넘게 투입했다* 2008년 12월 10일 - 미국 하원은 미국 자동차 빅3인 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해 140억달러(약 19조2100억원)를 지원하는 대신 대통령이 임명하는 관재인(일명 ‘자동차 차르’)이 업계 구조조정을 관할한다는 법률안을 237 대 170으로 통과시켰다. 빅3는 이미 250억 달러를 저리에 대출받았었다.
  • 2008년 12월 11일 - 미국 상원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한 지원 법률안을 찬성 52표, 반대 35표로 부결했다. 제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2008년 11월 28일 - 일본의 국제 금융 전문가 쓰루미 마사요시 호세이대 교수는 한국, 중국, 일본경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08년 12월 12일 - 한국은행중국인민은행과 1800억위안(260억달러 상당)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기존 40억달러에서 300억달러로 확대한 것이다. 또한 한국은행은 일본은행과의 통화 스와프 규모를 기존 130억달러에서 300억달러로 확대하는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08년 12월 13일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이 다른 나라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국, 일본은 세계 외환보유고 1위, 2위 국가이다* 2008년 12월 13일 -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제1회 한중일 서밋 정상회담이 열렸다. 매년 정기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다. 중국과 일본 정상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자유 무역 협정(FTA)을 요구했다.

2009년[편집]

영향[편집]

  • G-20 회의가 장관급에서 정상급으로 확대 개편된 계기가 되었다.

보기[편집]